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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7.14 번역서 읽기
  2. 2014.06.21 붉은 봉투
  3. 2014.05.24 brilliant series
  4. 2014.05.15 아이들
  5. 2014.05.04 pretty woman
  6. 2014.04.23 지워지지 않는 기억
  7. 2014.04.17 봄의 교향악 1
  8. 2014.04.12 만원의 행복 1
  9. 2014.03.31 ebony & ivory
  10. 2014.03.15 휴식

번역서 읽기

2014. 7. 14. 22:39 from music, film & literature


책을 읽다보면 전체중에 마음에 가장 와닿는 구절이 있게 마련이다.

'잘못 알고 행복해하기 보다, 제대로 알고 불행해하는 편이 낫다'

간만에 하루안에 읽은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나요?(Aimez-vous Brahms?)'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구절이다. 왜인지는 사실 나도 모르겠다. 아마도 최근 장기화되는 몇개의 복잡한 상황들에 대해 좋은 쪽으로 해석을 내리고 싶어하는 나의 무의식적인 바램 때문일수도 있겠다.

근데 분위기 좀 내 보겠다고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을 - 작품에서 언급되는 곡은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 틀어놓고여서인지 중간중간 쉽사리 읽혀지지 않는 곳들이 많았다.

물론 내용이 쏙쏙 들어오지 않는 첫번째 이유는 머리 나쁜 나의 집중력 부족.
한데 또다른 이유를 들자면 바로 '번역'의 문제다. 이 두번째 이유는 최근 몇개의 번역서들을 읽으며 새삼 든 생각이다.
심지어는 몇달 전 기존의 번역본인 김화영교수 번역의 '이방인'을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라고 비웃으며 새로운 번역의 '이방인'이 나오기까지 했을 정도니, 내 판단이 아주 잘못된 건 아닌 듯하다.
사실 이방인이나 어린왕자를 원서와 비교해 보면 권위있는 역자의 번역도 정말 매끄럽지 못하구나 하는 대목들이 참 많다.
외국어가 어렵기도 하지만 우리말이 어렵기도 하다.
예를들어 'sky'는 '하늘'로 번역하면 되지만,
'man'이란 단어의 경우 상황에 따라서 '남자, 사람, 인간, 놈, 녀석, 사내, 분, 자, 관, 새끼...'에서 가장 맞는 걸 선택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완벽한 의미전달을 못하기도 한다.

길지 않은 소설이었지만 사강이 24세의 젊은 나이에 쓴 이 작품은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또하나의 단상을 제공해 주었다.

진정한, 안주할 수 있는 사랑이 존재하는 건가?


프루스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자신의 필명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인 'Sagan'을 선택한 저자. 두번의 이혼을 하고 알콜중독 코카인 등 일탈을 겪은 그녀의 삶을 미리 투영한 것같은 작품을 오늘 다시 접해보니,
대학때 공부했던 것과는 또다른 느낌이 파고들어 왔다.

'잃어버린 시간..'도 읽어봐야겠다.
단, 음악은 소리를 아주 작게 틀어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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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붉은 봉투

2014. 6. 21. 15:26 from story of others


중국인들은 성공을 불러오고 태양을 상징한다 하여 유난히 붉은색을 좋아한다.
자금성, 국기, 의상, 지갑 등 중국과 관련된 붉은색들의 예는 수도없이 많지만, 나에게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중국의 붉은색은 장이모우 감독, 공리 주연의 '붉은 수수밭'을 단연 꼽을 수 있다.

엄마가 입원해 있다보니 가까운 친척들이 병문안을 가끔 오는데, 지난 주말에는 충주 사는 막내삼촌-결혼은 했지만 그는 우리에게 영원한 삼촌이다-이 찾아왔다.
나랑 나이가 여덟살밖에 차이 안나는 꼬마삼촌.
엄마는 삼촌 얘기를 할 때면 빼놓지 않는 레퍼터리가 있고 그날도 삼촌이 가고 나자 병원침대에 누워 기어이 오십년 전의 이야기를 읊어주었다.
엄마가 시집왔을때 7형제중 막내인 삼촌은 초등 1학년 여덟살. 까까머리에 키는 조그만해가지고 보였나 하면 없어지고 또 언제 나타났는지 장난을 쳐대기 일쑤였으며, 잔치집, 초상집이 있는 날이면 귀신같이 주워듣고 방문, 식사를 해결하곤 했다 한다. 할아버지에겐 막내아들이란 귀염덩어리였던 이 개구장이에게 갓시집온 둘째형수는 전혀 어려운 존재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엄마 얘기로는 시댁인 금산에 가면 일은 정말 많이 했는데, 배가 고파도 할머니가 밥을 챙겨주지도 않았음은 물론 밥을 먹을 시간도 주지 않았다 한다.
하지만 그러던 할머니가 며느리가 첫애를 임신하고 -그 첫애는 바로 길신현이다- 가자 닭을 한마리 잡아 삶아 부엌 한켠에 상위에 밥과 함께 차려주시더란다.
그런데 할머니가 나간 사이를 틈타 언제 나타났는지 문제의 막내도련님이 쪼르륵 들어와 닭을 얌냠 후루룩 해치우고 포르륵 사라져버렸다 한다. 허허.
고기 익는 냄새를 맡으며 기다리던 이 악동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간만에 시어머니에게 받은 엄마가 먹을 백숙을, 아니 그녀의 뱃속에서 이제 막 태동을 시작한 귀한 아기의 피와 살이 될 보양식을 홀라당 도둑질해 간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재밌고 우스울 수 있겠지만, 당시 엄마로선 삼촌이 얼마나 얄미웠을까.
그러니 그 일을 평생 못잊을 수밖에.

축구. 테니스. 씨름. 명절 고스톱에 이르기까지 삼촌은 잘하는 게 많았다. 딱한가지 못했던 건 공부. 아니 안 한 게 맞을 것이다.
성적상 고등학교 진학이 힘들자 우리 아버지는 당신이 재직하던 고등학교에 스무살 어린 막내동생을 편법으로 입학시키셨다. 3년간 나름 노력해 충남대학교를 졸업한 삼촌은 제대후 자리잡은 수자원공사를 지금까지 착실히 다니고 있다.
얼굴도 마음씨도 참한 -그래서 난 이 숙모가 젤로 맘에 든다 -아가씨를 만나서인지, 결혼 이후 삼촌은 몰라보게 성격이 달라진다. 말도 움직임도 차분해지고 또 칠형제 중에서 홀로된 노모를 제일 살뜰하게 챙기는 아들이 되었다. 어쩌면 숨어있던 본성이었을수도.

지금이야 덜해졌지만 십여년 전만 해도 다섯명의 작은 아버지들은 죄다 엄마를 못마땅해 했다.
특유의 성깔로 할머니를 막 대하고 자식들은 끔찍하게 생각하면서 남편에게는 그 십분의 일도 신경을 쓰지 않는 형수다보니 내가 생각해도 정이 갈 리 없다. 막내삼촌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하간 지난 토요일 엄마에게 와보니 막내삼촌이 문안을 와 있었고 '형수님 빨리 나으시라'고 몇번을 얘기한 뒤, '신현이 너 봤으니 이제 나는 가야겠다'며 병원을 나섰다.
서울에 일이 있어 올라온 거냐 물어보니 아침에 충주에서 출발해 왔고 이제 터미널 가서 충주로 갈 거라 했다. 오롯이 엄마 문안차 서울에 온 삼촌이 너무 고마웠다. 담배도 한대 필 겸 1층까지 배웅을 나갔더니, 할아버지도 폐암으로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 형제들도 대부분 폐상태가 안좋으니 너도 담배는 절대 피지 마라 한다. 본인도 작년에사 끊어놓구서는..

다시 병실로 올라왔는데 엄마가 환자복 주머니에서 삼촌이 줬다면서 봉투를 꺼내주길래 보니, 오만원짜리 네장이 들어있는 연한 붉은색 봉투였다.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봉투를 붉은색으로 고른 이유는 엄마까 빨리 낫기를 바라는 삼촌의 세심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단체로 산행을 갔던 작년 10월 21일 경기도 어느 병원에 아들들의 강제로 입원해 지금까지 침상 생활을 이어왔으니 엄마도 얼마나 힘들까.
이제 다음주 퇴원을 앞두고 있으니,
삼촌의 바램처럼, 또 웃통을 벗고 우뚝서 붉은 고량주에 대차게 소변을 갈겨내리던 붉은수수밭의 남자주인공처럼, 엄마도 하루빨리 일어나 훌훌 털고 가족들과 함께 성큼성큼 걸어다니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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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brilliant series

2014. 5. 24. 11:08 from music, film & literature

말러의 곡은 장엄함 속에 화려함을 잔뜩 품고 있다.
시리즈 이름처럼 소리에서 빛이 나는 것같다.
5번 교향곡에서만큼은 트럼펫 솔로에게 연주비를 세배는 줘야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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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아이들

2014. 5. 15. 12:43 from story of others


한시간 뒤에 무슨 상황이 올지도 모르고
기울어진 공간에 재밌어 하며 친구들과 장난을 치던 아이들.
정말 순진함 자체인 그 아이들.
물이 밀려들어 올때 얼마나 무서웠을까.
자꾸 자꾸 가슴에서 눈물이 난다.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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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pretty woman

2014. 5. 4. 08:07 from story of my life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보니 동생들은 물론 조카들도 자주 보게된다.
엊그제도 막내동생이 일곱살 딸 연우를 데리고 왔다.
어릴적부터 하는 짓이 제 오빠랑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귀여워, 이름에서 'ㄴ' 받침만 빼면 되는 '여우'같다는 얘기도 많이 들은 아가씨.

병실이 심심했던지 아이스크림이 먹고싶다 조르기에 점수 좀 따고싶어 고사리 손 붙잡고 일층 편의점으로 내려가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욘석 왈 '아, 큰큰아빠랑 처음으로 아이스크림 사러 가니까 정말 좋다!' 하였다. 아오, 이 아가씨 귀염모드 발동이네. 이윽고 내가 '어, 연우야 정말?' 했더니 '응? 큰큰아빠는 그럼 내가 큰큰아빠 좋아하는 게 싫어? 내가 좋아하는게 싫으냐구'하며 또박또박 한 술 더 뜬다. 점입가경.
조카가 고른 천원짜리 돼지바 덕에 조카딸이랑 세계단 이상을 한방에 가까워졌다. 볼에 뽀뽀도 받고.
귀여운 아가씨. 자꾸자꾸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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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내가 거슬러올라가 볼 수 있는 가장 오래전의 기억은 바닷가에서의 일이다.

가족들과 함께 간 북평(지금은 동해시)항 가까이의 해수욕장에서였는데,

엄마가 물로 한참을 들어가더니 '신현아!' 하고 부른 뒤 바닷물 속으로 쑥하고 자취를 감췄다.

물론 엄마는 장난삼아 그리 했겠지만, 당시 세살쯤 되었던 나는 엄마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공포로 다가왔다.

몇번을 물속으로 사라졌는데,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엄마가 없어졌네, 어떡하지?'하는 생각만 계속 하고 있었다.

 

50여년을 가까이 산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상당히 많지만

그중 으뜸은 큰애와의 첫만남이다.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갓난아이의 눈망울을 바라보며

'얘만큼은 구김살 없이 자라도록 해줘야지'하고 생각을 했다.

 

지난 월요일, 처음으로 내한하는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공연을 다녀왔다.

이 오케스트라의 경우 어릴적 엄마 손에 이끌려 이대 강당까지 와서 공연을 본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와 더불어 스위스 오케스트라의 양대산맥이란 평을 받고 있다.

레퍼터리는 베토벤 프로메테우스 서곡과 바이올린 협주곡, 그리고 브람스 교향곡 4번.

이번 공연에 꼭 가고싶었던 이유는 모험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 이름있는 지휘자들의 인정과 찬사를 받은 '기돈 크레머'의 베토벤 바이올린 콘체르토 연주를 들어보고 싶었기 때문.

 

팀파니의 다섯번째 울림을 관악기들이 받아 이어나가는 1악장의 아련한 멜로디가 시작되었다.

25분이 넘는 이 1악장은 원래 3분 이상이 지나고 나서야 협연자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

그런데 1악장 초반 대목부터 기돈 크레머는 파격을 선택했다.

다름아닌 제1바이올린군이 이끌어가게 되있는 부분에서 함께 활을 긋기 시작한 것.

뭐 이정도야 그럴 수도 있으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악장 후반부의 카덴짜 솔로가 시작되면서, 나는 내가 곡을 헷갈리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아니고, 협연자가 다른곡을 연주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멜로디를 약간 변형한 정도가 아닌 완전히 다른곡이었으며, 피날레 부분만 원래의 악보로 복귀하며 마무리 되었다.

3악장 역시 짧게나마 이같은 변형이 진행되었다.

 

나로서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새로운 시도라는 느낌보다는 불편하고 또 불안한 마음이 연주 내내 자리잡고 있었다.

'아니, 베토벤을 이렇게 바꿔도 되는 건가?' 하는.

 

기돈 크레머는 연주 스타일이 여느 바이올리니스트들과 비교시,

활을 누르는 것이 아닌 활로 현을 당기는 듯한 주법이 특이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음이 굵직함보다는 날카롭고 그윽하기보다는 현란함을 발산하고 있었다.

이것이 그가 지닌 특성이자 카라얀을 비롯한 음악가들의 인정을 받은 대목일 것이다.

따라서 전문가가 아닌 나는 그의 연주 자체에 대해서 가타부타 평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 주자가 그날 협연한 쮜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성향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오케스트라의 경우 나이든 단원들을 많이 보유하여 모범생같은 음색을 내고 있었는데,

전통적이면서도 반듯한 향을 풍기는 터라,

기돈 크레머같은 기교가 강하고 날렵한 연주자와는 어울리지 않는 매치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뮤지컬 맘마미아를 보고 나오면서 '아바 노래들을 퇴색시켜버린 것같아 실망이네' 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어 인터미션에 머리 좀 식히려고 바깥으로 나오는데, 아는 얼굴의 여자 한분이 얼굴과 말투에 불편한 기색을 잔뜩 담은 채 빠른 걸음으로 콘서트홀 중앙 유리문을 나오고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작년 가을 클라라 주미강 협연으로 진행된 같은 곡을 지휘하는 동생 정명훈의 공연을 언니 정명화와 함께 보러와 인터미션때 인사도 나누고 사진도 웃으면서 함께 찍어 주었던 그녀.

그녀는 런던심포니와의 협연 음반으로 내가 모든 바이올린협주곡 중에 베토벤곡을 가장 좋아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반가운 마음에 또 오늘 연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어 뛰어가 '선생님, 안녕하세요?'하였는데,

순간 나를 또렷이 보더니 - 사실 난 그녀를 잘 알지만, 그녀는 나를 전혀 모른다 - '안녕하지 못해요!' 하면서 또각또각 주차장쪽으로 사라졌다.

연주가 마음에 안 든 정도가 아니고, 같은 곡을 수행한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모멸감을 느낀 것 같다는 추측까지 들었다.

 

2부가 시작되 스위스 호반의 물결같은 브람스 1악장이 넘실거리며 흘러나오는 데도,

1부의 껄끄러운 기억이 지워지지 않아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잊어버려야지 하고 새로운 곡에 귀기울이려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1868년에 브람스곡 연주를 시작으로 창단된 이 오케스트라는, 초창기에 브람스가 지휘를 직접 맡아 더 유명해졌다 한다.

78세의 노장 데이빗 짐먼의 지휘봉 아래 톤할레 오케스트라는 브람스를 단아하고 깔끔하게 소화해냈다.

이들의 브람스 연주를 맛으로 표현하자면, 계피를 많이 첨가한 여름날 수정과 같다고나 할까?

150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지닌 오케스트라에서만 가능한 정제됨과 수려함이 흠뻑 베어있었다.

 

열시반이경임에도 완연한 봄기운으로 차유리를 내리고 집으로 달려오면서도, 줄곧 기돈 크레머의 연주에 대해 곱씹어보게 되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이틀이 지난 지금도 자꾸만 협주곡을 들을 때의 껄끄러웠던 감정이 자꾸만 되살아난다.

 

지난 기억에 얽매여 있으면 안되는데..

떨쳐버려야지 평온해지고 새로운 것들을 편히 받아들일 수 있는데..

 

지우고 싶은, 아니 지워야 하는 기억을 지우고 살 수 있을까?

기억이 지워지면 맘이 가벼워질까?

아니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굳이 지우려 해야하는 걸까?

 

살아가는데 있어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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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봄의 교향악

2014. 4. 17. 13:14 from music, film & literature

 

음악에 계절이 있을까만은..

 

매년 4월초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교향악 축제'는 봄을 맞아 국내 수준급 오케스트라들이 클래식의 향연을 펼치는 장이다.

요엘 레비 지휘가 궁금해 첫날 KBS교향악단 연주에 다녀온 이후, 어제는 지인인 피아니스트 허승연의 코리안심포니와의 협연을 보고 왔다.

 

회사에서 갈때는 주로 지하철을 이용 남부터미널역에 내려 예당까지 걸어가는데, 도보로 10분정도면 족하기 때문에 발걸음의 즐거움도 느낄 겸 지하철역 입구의 북적북적한 마을버스를 구태여 이용하진 않는다.

그런데 평소보다 약간 늦게 도착한 어제는 역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짙은 남색 예술의 전당 셔틀이 대기하고 있길래 자연스럽게 버스에 올랐다. 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셔틀이긴 했지만, 예술의 전당 마크가 붙어 있는 이녀석을 타면 왠지 대우받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하는 무의식적인 생각이 작용한 것 같다.

셔틀 버스안은 대부분이 여자승객들이었는데, 시외버스처럼 두좌석짜리 자리들만 있어서 약간 시골스러운 분위기가 나기도 했다.

좋았던 건, 하차장소가 콘서트홀을 한갓지게 접근할 수 있는 가까운 자리여서 올라가면서 소소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어제는 공연 전에 지인들을 많이 만났다.

초청을 해주신 허트리오 어머니께 티켓을 받고 돌아서는데, 손짓을 하는 분이 있어 보니 올해초 새로 부임한 코리안심포니 임헌정 지휘자.

오늘 지휘를 맡진 않았지만, 감상차 아니 감독차(?) 당연히 오신 것 같다.

나를 부르더니 코리안심포니 담당자들에게 '신세계에서 클래식을 제일 많이 아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셨다. ㅋ

 

객석에 앉으니 작년 이맘때 작은애와 교향악축제에 왔던 생각이 났다.

큰애보다 감수성이 뛰어난 이친구 당시 좋아하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을 들으며 가슴을 쓸어내리던 기억이 난다.

고3인 올해에는 차마 같이 오자 소리를 못했다.

큰애는 음악적인 감각은 있는 것 같은데, 도무지 클래식에는 관심을 잘 가지지 않는다.

지난 겨울방학 '빈 소년 합창단' 공연 티켓을 얻을 기회가 있어 여친과 함께 가라고 했더니,

"됐다"며 한방에 퇴짜를 놓고서는, 그다음날 여친한테 말했더니 좋아라 가고싶어 한다고 티켓 좀 구해달라고 해 다녀오는 식.

아이들도 클래식음악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허승연은 독특하게도, 드레스가 아닌 검정색 바지와 다리까지 늘어진 옅은 붉은색의 씨스루 상의 차림으로 무대에 등장했다.

1악장 초반부의 피아노 솔로가 문안하게 흘러나왔고, 후반부와 3악장의 강한 터치가 필요한 대목의 몸동작을 보며,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눌 때 그녀가 보인 쾌활함이 떠올랐다.

자세한 과정은 모르지만 허승연은 현재 취리히 음악대학의 종신학장이라는자리를 맡고 있는데,

그녀의 연주를 듣고 보면서 그정도 중책을 맡을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지니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베토벤 4번 협주곡을 연주하는데, 무게감보다는 물위를 날렵하게 헤치고 다니는 듯한 피아노 터치가 특색인 아티스트인 것 같다.

허승연의 두 여동생은 각각 바이올린과 첼로로 이름나 있고 가끔씩 세자매가 허트리오라는 이름으로 연주를 한다.

한데 이 세자매의 공연이나 일정 관리를 다름아닌 어머니가 하고 있다.

겉모습이나 이야기를 나눌때는 무지 털털한 평범한 여자분인데, 세명의 자식을 이렇게 키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을까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교향악 축제는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해 가능한한 일반적인 레퍼터리를 선별해 운영되기에, 티켓값도 만원짜리부터 비싼 게 4만원을 넘지 않는다.

 

요즘 신호등을 건너려 서있노라면, 종아리 위로 봄햇살의 따스함이 내려앉곤 한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하는 콧노래가 저절로 나오는 계절,

감미롭고 힘찬 음악과 함께 이 봄에 스프링처럼 통통 튀어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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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만원의 행복

2014. 4. 12. 21:02 from music, film & literature


아름다움은 슬픈 감정을 부를 때가 많다. 왜 그럴까?
선연히 물든 노을을 볼 때나, 신께 애원하는 듯한 베토벤 협주곡 '황제'의 2악장에서 피아노 소리가 가느다란 선을 그으며 지나갈 때, 떨어진 벗꽃잎들이 바람의 선율에 맞춰 춤을 출 때, 이런 아름다운 감정을 느낄 때 왜 눈물이 나는 걸까?

오늘도 이같은 경험을 했다.

올해초 '강수진'이 단장을 맡은, 국립발레단의 공연 '백조의 호수'를 만나고 왔다.
열흘전쯤 검색을 하다보니 오천원짜리 좌석이 남아 있길래 두장을 덥썩 예매해놓고 손꼽아 기다려오던 공연이었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은 4층까지 있는데 그중 3층을 오천원에 구매했으니, 완전 횡재.
사실 오페라 극장은 거짓말 조금 보태면 3층에서도 무대가 빤히 보여 구태여 1층 비싼 자리를 구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발레의 경우 군무 동작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 보는 묘미를 만끽하려면 확실히 아래층보다 2층이나 3층이 훨씬 유리하다.

'발레는 몰라도 백조의 호수는 안다'는 말이 있듯 차이콥스키의 이 작품은 음악으로 먼저 우리에게 친숙해 있다.
어릴때 엄마 따라 두번 이 공연을 보았는데, 그때마다 나는 악마 로트바르트보다 오딜을 오데뜨로 착각하는 지그프리드가 원망스러워 한편으론 '뭐 저런 왕자가 다있냐?'하며, 또 한편으론 '춤은 참 잘추네..'하였고, 맘을 조려가며 또 줄거리를 따라가면서 행복한 결말을 기대하였던 것 같다.

지금은 발레 하면 '백조의 호수'가 떠오를 정도지만, 러시아의 오랜 전설 백조이야기를 발레곡으로 승화시킨 이 작품은 초연 당시 가혹한 평가로, 차이콥스키는 발레곡을 다시 쓰지 않겠다는 결심까지 했다 한다. 당시대인들이 백여년을 앞선 수준인 작곡가의 절대음악적 능력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

오데뜨는 내게는 늘 갸냘프고 불쌍한 '공주'로 남아있다. 발가락 끝으로 무대를 누비며 선을 그려가는 주인공을 만져보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쓰러져있는 그녀를 손잡아 일으켜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건, 어릴적이나 30년이 넘은 지금이나, 다름아닌 안타까움 때문이다. 
한편 흑조 오딜을 미워해야 하나? 사실 악마의 딸이긴 하나 오딜 또한 오데뜨와 1인2역으로 춤추고 있다는 걸 알게되면, 또한 오데뜨의 단아한 동작에서 볼 수 없는 화려한 몸놀림을 선사해 주는 그녀 또한 미움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두시간 반 내내 '아름답다', 또 '아름답다'란 생각만 했는데 그중 정말 눈물이 났던 대목은, 유명한 1인무용이나 2인무용이 아니라, 동그란 치마를 입은 28마리의 백조가 한꺼번에 또는 4,8,12마리씩 흩어졌다 모였다 하며 원을 그리거나 줄을 만들어내며 추는 군무 였다.
하얗고 갸냘픈 새들이 만들어 내는 직선 그리고 곡선의 순백색 완벽함.
이러한 모습의 군무와 느낌은 '백조의 호수'에서만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막이 내리고 무대인사에서 주인공역의 '김리회'는 군무를 멋지게 소화해 준 동료들에게 감사 인사를 해,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엄마 모시고 가서 공연 한번 더 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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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ebony & ivory

2014. 3. 31. 14:47 from music, film & literature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팝송들 중 한 곡의 제목이다.

폴 맥카트니와 스티비 원더 듀엣의 명곡.

'ebony & ivory, live together in perfect harmony, side by side on my piano keyboard, oh Lord, why d'ont we?(피아노의 검은 건반과 하얀 건반은 나란히 놓여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데, 우리는 왜?)'라며, 

흑인과 백인의 화합을 피아노라는 악기에 빗대어 호소하고 있다.

 

88개의 건반을 가진 피아노.

 

클래식 음악에 여러 악기가 등장하지만

'오케스트라 전체를 담을 수 있다'는 평을 받고있는 이 악기는, 다른 어느 악기가 따라올 수 없는 힘과 매력을 지니며 팝송 가사 표현처럼 그야말로 '완벽한' 소리를 발산한다.

 

모차르트 시대까지 사용되던 전신인 하프시코드(쳄발로)의 바통을 이어받은 현재의 피아노는,

하프시코드가 가진 한계인 '타건시 강약조절 불가'를 극복한 악기로,

고전파에서 낭만파로 이어지는 작곡가들의 사랑을 받으며 수많은 소나타, 중주곡,  협주곡 배출시킨다.

 

작곡가가 음표를 통해 자신의 심정을 드러낸다면, 아티스트는 연주를 통해 작곡가의 마음을 헤아린다.

 

이틀 일정으로 다녀온 통영국제음악제의 여독이 약간 남아있긴 했지만,

내한 때마다 어김없이 유료관객률 1위를 차지하며 예매 시작일에 해당 홈피를 마비시킨다는 '예프게니 키신'을 만나러 예당으로 향했다.

키신의 외모를 보면 난 늘 톰 행크스가 함께 떠오른다.

두 살 때, 들은 음악을 그자리에서 피아노로 재연한 것을 시작으로, 열 살에 모차르트 협주곡 협연, 이듬 해에 리사이틀, 열세살에 쇼팽 협주곡 1,2번을 모스크바 국립 필하모닉과 협연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곱슬머리 천재.

그가 연주하는 슈베르트, 스크랴빈, 그리고 앵콜로 이어진 바흐와 쇼팽을 듣는 내내 드는 생각은

'어떻게 저렇게 치지?'였다.

숨막힐 정도의 빠른 대목들과 부드러운 박자의 소화, 특히 건반을 누를 때의 강약 조절 면에서

그는 여타 연주자들에게서 볼 수 없는 면모로 커다란 감동을 선사한다.

필경 이 피아니스트는 다른 연주자들에 비해 강약 조절의 단계를 세배 이상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움직임은 기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다.

 

사실 그의 연주 수준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형용사는 없다.

그리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는 6,7시간의 연습이 그의 실력에 공헌했겠지만, 

키신의 연주는 노력만으로는 절대 얻어질 수 없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수학공부를 매일 다섯시간씩 해도 영어공부 한시간 한 점수를 따라잡을 수 없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결국 이 피아니스트는 열개 손가락에 신이 특별한 재능을 불어넣은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오버라고? 직접 들어보면 안다.

따라서 톰 행크스에겐 미안하지만, '캐스트 어웨이' 주인공의 물오른 연기력은 여기 견줄 바가 못 된다.

 

정해진 레퍼터리가 끝나고 그칠 줄 모르는 커튼콜로 세개의 앵콜이 이어진 후에도 관객들이 오히려 전원 기립박수를 보내자,

조종실에서 객석의 조명을 환하게 밝혀 청중들의 퇴장을 유도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나도 세번째 앵콜곡인 쇼팽의 폴로네이즈를 들으며 자꾸만 눈물이 났고, 쭈삣쭈삣이 아닌 자연스러운 기립으로 환호를 보냈다.

 

그가 연주한 쇼팽 음반들을 사서 들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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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휴식

2014. 3. 15. 20:22 from story of my life



일주일에 한번씩 주말이 온다.

잘 쉬는 게 무얼까?

공기맑은 산이나 물을 찾아가기.
마음맞는 사람 만나 얘기를 나누거나 또는 아무 얘기 없이 보내기.
좋은 영화나 공연 보기.
아님 아무생각 없이 빨래처럼 널부러져 있기.

패키지 여행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켜줄 수 없듯이, 사람에 따라, 또 때에 따라 필요한 휴식이 다를 것이다.

모처럼 특별한 일정이 없는 주말을 맞아,
첫날인 오늘 우선 보고싶었던 영화 한편을 보고 집까지 걸어오는데, 바람, 햇살이 겨울기운을 완연히 벗어나 있음을 느끼고 기분이 좋아졌다.
김치찌게, 짠지, 김 요렇게 세가지 찬이지만 오늘 점심은 유난히 입에 달라붙어 포만감이 올 때까지 수저를 놓지 않았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새로 산 하이든, 비발디의 경쾌한 음악을 들으며 책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물론 좀 지나 살짝살짝 졸아주기는 했다. ^^

CD 두장이 다 돌아가자, 오전의 바람과 햇살이 생각나 운동화 신고 양재천까지 한시간정도 걸어가 보았다.
봄맞이 채비를 하고 있는 양재천 산책로는 나무도 물풀도 옅은 갈색인데다 물도 많지 않아 스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근처의 쫄깃 떡볶이 한접시 비우고,
돌아오는 길에 학여울의 GAP 행사장에 들러 맘에 드는 바지와 티 몇장씩을 저렴한 가격에 골랐다.
집에 돌아오니 일곱시.

이렇게 하루가 저무네.

나에겐, 이렇듯 하고싶은 것을 하며 보내는 게 휴식인 것같다.

글을 쓰고있는 지금은 작은아이가 내옆에 나란히 누워 웹툰을 들여다 보고 있다.

사실 몇가지 일들로 인해 머리저림이 아직도 남아있지만, 좋은 휴식을 통해 차차 평온함을 얻게 되겠지.

내일은 무엇을 하며 보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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