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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1.11 샌프란시스코
  2. 2016.02.28 천재, 순수함
  3. 2016.02.08 last concert
  4. 2015.06.02 악기 소리
  5. 2014.07.20 자유로의 탈출 1
  6. 2014.07.14 번역서 읽기
  7. 2014.05.24 brilliant series
  8. 2014.04.17 봄의 교향악 1
  9. 2014.04.12 만원의 행복 1
  10. 2014.03.31 ebony & ivory

샌프란시스코

2016. 11. 11. 20:45 from music, film & literature

오래 전 가족과 함께 가 본, 많은 기억들이 남아있는 도시.
금문교야 말할 것도 없고, 물개들이 부표 위에 떼 지어 모여있는 pier 39, 배를 타고 둘러볼 수 있는 영화 the rock의 무대인 알카트래즈 감옥, 경사진 언덕을 오르내리는 귀여운 트램들.

헌데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건 이곳저곳을 다닐 때 눈에 들어오는 알록달록한 컬러들이다.
부드러우면서도 아름다운 색감을 품은 도시.
이런 연유로 이 도시는 유난히 동성애자들이 많이 찾아와 산다는 누군가의 설명도 있었다.

연이틀 무리해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공연을 찾은 이유는
이 도시의 이러한 풍미를 다시 느껴보고 싶었던 기대감에서다.
그래서 쇼팽 2번을 협연한 임동혁의 연주도 물론 멋졌지만,
오늘은 오케스트라가 얼마나 피아니스트와 잘 어우러지는지,
또 말러의 대곡을 어떤 색깔로 소화해내는지에 더 촉각을 세웠다.
관악기들이 목소리를 뽐내며 현악과 멋드러지게 어우러지는 여러 대목에서, 100여명 가까이 되는 이들의 연주가 청중들에게 흥분을 지나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50분 넘는 곡이 피날레를 치달을 때는, "내일엔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석양 불타는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
치유로서의 음악..

기립박수를 보낼 수 있는 공연을 만날 수 있다는 건, 큰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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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모든 공연은 가서 보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늘 든다.

근데 그중 어떤 경우들은, 안왔으면 큰 후회할 뻔 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연주가 진행될수록 심장이 두근 거리며 흥분이 고조되고, 음악을 좋아하는 지인들 또는 가족들을 떠올리며 이걸 꼭 봤어야 하는데, 이런 느낌은 지금 아니면 평생 경험할 수 없는 건데 하는 감정들이 겉잡을 수 없이 번지는, 그런 공연이 있다.

 

오늘 공연이 그랬다.

 

손열음.

올해 5월이면 만 30세가 되는 천재 피아니스트.

 

그녀가 '내가 온 곳에 대한 기록'을 되밟아보겠다는 생각으로 20세기초 굴곡의 시대를 살았던 몇몇 작곡가들의 곡들을 소화해보겠다며 흔쾌히 택한 공연 '모던 타임즈'.

 

2부 조지 거쉬인 곡중 '원할 때는 가질 수 없고, 가지고 나면 원치를 않아'라는 재미난 제목이 눈에 띄었다.

근데 오늘 음악당 자리를 가득 메운 청중들은, '원할 때 가질 수 있고, 가지고 나면 더 갈구하는' 보석같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비교적 가볍고 발랄한 터치의 1부 곡들을 뒤로하고 2부의 한가운데인 '페트루슈카'가 연주될 때, 피아니스트의 천재성은 극도를 치달았다.

그 강렬함은 연주가가 건반을 치고 있는 게 아니라, 마치 피아노라는 괴물의 88개 건반들이 주자의 열손가락을 쉴새없이 빨아들였다가 튕겨내고 있다는 착각을 들게할 정도였다.

연한 빨강색의 반짝이 연주복에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콘서트홀 천정의 조명들이 반사되어 흡사 연주자의 몸에서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타건으로 발산되는 음들의 화려함에는 전혀 비견할 바가 못되었다.

 

정규 레퍼터리를 모두 마친 후, 오늘은 예정에 없던 3부 공연이 파티처럼 전개되었다.

그녀가 앵콜을 다름아닌 열곡이나 연주했기 때문.

마침 오늘 토요일이겠다 청중들 모두를 집에 보내지 않기로 어린 피아니스트가 작정을 한 것 같았다. ^^

더군다나 일곱번째곡부터는 특유의 천진난만한 표정과 목소리로 신청을 받아 진행되자, 청중들은 갈수록 열광과 환호를 아끼지 않았다.

객석에 앵콜곡을 요청하는 그녀의 표정에서, 2년전 본점 문화홀 공연 후 차한잔 하며 "문화홀 울림이 별로 안좋아서 불편하지 않았는냐"고 물어보자 생글 웃으며 "이런 홀은 이런 곳 나름대로 재미가 있어서 좋아요, 피아노 소리도 좋았고요"하고 천진난만하게 대답했던 모습이 연상되었다.

 

일곱번째 앵콜곡이자 오랜만에 연주한다던 라캄파넬라 화려한 대목이 번져나올 때 눈물이 막 나왔다.

객석의 불이 환히 밝혀진 시간이 11시 가까이 되었는데도, 로비에는 사인을 받으려는 팬들의 줄이 겹겹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앞으로 이 순수한 천재 피아니스트의 공연은 빠지지 않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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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last concert

2016. 2. 8. 14:11 from music, film & literature
His last concert with SPO(15. 12/30)

어쩌면 잘 된 일이다.
진흙탕을 떨쳐나오게 되었으니..
좋은 여건에서, 그가 더욱 빛나길 바란다.

그가 33세 때 세종문화회관에서 본 그의 지휘는 21살 재수생이었던 내게 영원히 지속될 감동을 남겨주었다.

오늘, 연주중 단원들의 표정은 예전 공연들과 달랐다.
물결치는 현악기들, 관악기들의 호흡, 전율하는 타악기들, 코러스의 외침, 그리고 관객들의 숨죽임.
이 모든 것들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관악기들이 슬피 우는듯한 3악장에선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앵콜까지 마친 후, 그가 함께 했던 배의 선장으로서 선원들 한명한명과 일일이 악수와 포옹을 나누는 사이, 모든 청중들은 기립박수와 환호를 보냈고, 지휘석으로 돌아온 그에게 수많은 꽃다발들이 전해졌다.

한국 클래식 공연계는 아마도, 그의 빈자리로 인해 계산될 수 있는 산술적인 수치 이상으로, 뒷걸음질 칠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으로 몰아온 사람들은 관심도 없겠지만.

우리는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연주에 10년동안 행복했다.
그가 남긴 감동은 청중들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반짝거릴 것이고, 그래서 고마워하고 그를 끝까지 기억할 팬들이 많이, 아주 많이 남아있음을, 그도 알고 있으면 좋겠다.

마지막 무대에서 갈채를 보낼 수 있어, 행복하고, 슬펐다.
그를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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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악기 소리

2015. 6. 2. 13:40 from music, film & literature


이사 온 후로, 도저히 못일어나는 경우가 아니면 새벽마다 둘째를 정자역까지 차로 데려다 준다.
학원이 있는 강남역까지 정자역에서 신분당선으로 18분이면 갈 수 있기 때문에, 아이한텐 강남 살 때에 비해 크게 나빠진 게 없다.
근데 나한텐 요 아침 일찍, 또 밤에 역으로 가 픽업해 오는 도합 30여분의 동승시간이 참으로 달콤할 수밖에 없다.
아이를 위해 눈에 보이는 뭔가를 할 수 있고, 또 아이와 함께 할 수 있기 때문. 뭐, 말을 많이 나누지 않아도 말이다.

근데 오늘 아침엔 FM에서 어떤 곡이 나오고 있는데, "아빠, 이거 클라리넷이지?" 했다. 내가 "응, 맞아. 대단하네" 했더니 "클라리넷 소리는 만화영화 같아"하고 혼잣말처럼 얘기했다.
내가 신이 나서 "응, 클라리넷 소리가 품격이 있지, 오보에 소리도 좋구!"하고 발동을 걸었더니 "품격 있는 소리는 플룻이지, 클라라넷은 장난치는 소리 같고"라고 응수했다.

사실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지만 난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나는 그 나이에 그냥 클래식음악이 좋아 듣기만 하는 수준이었는데, 둘째아이가 관악기군의 서너 가지 소리를 분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즐겁기만 하면서, 집에서 가능하면 93.1 들려주고, 음악회 일부러 데리고 가고 하길 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복잡한 것 같지만 관악기군은 조금만 신경 쓰면 그 종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목관악기중엔 앞에서 언급된 플룻의 왼쪽에 앉아 날아다니는 참새처럼 높고 가는 음을 내는 난장이 피콜로가 있고, 또 클라리넷 오른쪽에서 중후하게 낮은 소리를 선보이는 팥색깔의 파곳(바순)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금관악기로 달팽이처럼 생긴 감미로운 목소리의 호른, 사람 몸집만한 튜바. 그리고 세개의 버튼을 눌러대는 트럼펫과 관을 앞뒤로 움직이며 음을 맞추는 트럼본 등이 있다.

물론 이외에도 잉글리쉬 호른, 바셋 클라리넷 등 곡에 따라 특색 있게 등장하는 관악기들의 리스트들이 더 있긴 하지만, 앞에 언급한 목관 4종류, 금관 4종류 정도의 특징만 알고 있어도, 관악기들이 여러 대목에서 주로는 곡을 부채질해주는 역할, 또는 화음을 맡거나 그리고 적지않은 곳들에서 메인 멜로디를 이끌어가며 현악기들과 화답을 주고받는 이들의 역할과 매력이 얼마나 큰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존심 강한 소년 왕자같은 음색의 오보에 소리도 좋고, 아프리카의 한복판에서 낮잠을 자며 데니스가 축음기에 틀어놓은 클라리넷 소리도 잊을 수 없다. 마음에 선을 가느다랗게 그으며 지나가는 듯한.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중 '중국의 춤' 멜로디는 플룻 특유의 음색을 실컷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둘째아이가 플룻소리에서 '품격'을 떠올리는 이유는 뭘까. 풀내음 나는 듯한 상쾌함 때문일까?

뭐 이유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부디 수능 잘 마치고 좋은 음악들 많이 듣게 되, 다른 악기 소리에도 오늘 아침처럼 하나하나 본인 나름의 색깔을 부여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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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모차르트와 함께 있었지.'

'간수가 축음기를 넣어주기라도 한거야?'

'내 마음에 영원히 있는거야.
그게 음악의 아름다움이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어.'

교도소 전체에 '편지의 이중창'을 틀어준 댓가로 2주간 독방 신세를 지고 초췌한 얼굴로 돌아온 앤디가 동료들의 질문에 답한 대사다.

음악을 듣고있던 죄수들은 교도소 벽이 무너지는 것 같은 자유를 느꼈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완벽한 '자유'를 경험한 건 바로 앤디 자신이다.

그래, 마음속에 음악이 만들어낸 감동은 누구도 뺏어갈 수 없고, 온전한, 그리고 유니크한 내 것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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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번역서 읽기

2014. 7. 14. 22:39 from music, film & literature


책을 읽다보면 전체중에 마음에 가장 와닿는 구절이 있게 마련이다.

'잘못 알고 행복해하기 보다, 제대로 알고 불행해하는 편이 낫다'

간만에 하루안에 읽은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나요?(Aimez-vous Brahms?)'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구절이다. 왜인지는 사실 나도 모르겠다. 아마도 최근 장기화되는 몇개의 복잡한 상황들에 대해 좋은 쪽으로 해석을 내리고 싶어하는 나의 무의식적인 바램 때문일수도 있겠다.

근데 분위기 좀 내 보겠다고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을 - 작품에서 언급되는 곡은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 틀어놓고여서인지 중간중간 쉽사리 읽혀지지 않는 곳들이 많았다.

물론 내용이 쏙쏙 들어오지 않는 첫번째 이유는 머리 나쁜 나의 집중력 부족.
한데 또다른 이유를 들자면 바로 '번역'의 문제다. 이 두번째 이유는 최근 몇개의 번역서들을 읽으며 새삼 든 생각이다.
심지어는 몇달 전 기존의 번역본인 김화영교수 번역의 '이방인'을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라고 비웃으며 새로운 번역의 '이방인'이 나오기까지 했을 정도니, 내 판단이 아주 잘못된 건 아닌 듯하다.
사실 이방인이나 어린왕자를 원서와 비교해 보면 권위있는 역자의 번역도 정말 매끄럽지 못하구나 하는 대목들이 참 많다.
외국어가 어렵기도 하지만 우리말이 어렵기도 하다.
예를들어 'sky'는 '하늘'로 번역하면 되지만,
'man'이란 단어의 경우 상황에 따라서 '남자, 사람, 인간, 놈, 녀석, 사내, 분, 자, 관, 새끼...'에서 가장 맞는 걸 선택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완벽한 의미전달을 못하기도 한다.

길지 않은 소설이었지만 사강이 24세의 젊은 나이에 쓴 이 작품은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또하나의 단상을 제공해 주었다.

진정한, 안주할 수 있는 사랑이 존재하는 건가?


프루스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자신의 필명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인 'Sagan'을 선택한 저자. 두번의 이혼을 하고 알콜중독 코카인 등 일탈을 겪은 그녀의 삶을 미리 투영한 것같은 작품을 오늘 다시 접해보니,
대학때 공부했던 것과는 또다른 느낌이 파고들어 왔다.

'잃어버린 시간..'도 읽어봐야겠다.
단, 음악은 소리를 아주 작게 틀어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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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brilliant series

2014. 5. 24. 11:08 from music, film & literature

말러의 곡은 장엄함 속에 화려함을 잔뜩 품고 있다.
시리즈 이름처럼 소리에서 빛이 나는 것같다.
5번 교향곡에서만큼은 트럼펫 솔로에게 연주비를 세배는 줘야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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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봄의 교향악

2014. 4. 17. 13:14 from music, film & literature

 

음악에 계절이 있을까만은..

 

매년 4월초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교향악 축제'는 봄을 맞아 국내 수준급 오케스트라들이 클래식의 향연을 펼치는 장이다.

요엘 레비 지휘가 궁금해 첫날 KBS교향악단 연주에 다녀온 이후, 어제는 지인인 피아니스트 허승연의 코리안심포니와의 협연을 보고 왔다.

 

회사에서 갈때는 주로 지하철을 이용 남부터미널역에 내려 예당까지 걸어가는데, 도보로 10분정도면 족하기 때문에 발걸음의 즐거움도 느낄 겸 지하철역 입구의 북적북적한 마을버스를 구태여 이용하진 않는다.

그런데 평소보다 약간 늦게 도착한 어제는 역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짙은 남색 예술의 전당 셔틀이 대기하고 있길래 자연스럽게 버스에 올랐다. 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셔틀이긴 했지만, 예술의 전당 마크가 붙어 있는 이녀석을 타면 왠지 대우받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하는 무의식적인 생각이 작용한 것 같다.

셔틀 버스안은 대부분이 여자승객들이었는데, 시외버스처럼 두좌석짜리 자리들만 있어서 약간 시골스러운 분위기가 나기도 했다.

좋았던 건, 하차장소가 콘서트홀을 한갓지게 접근할 수 있는 가까운 자리여서 올라가면서 소소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어제는 공연 전에 지인들을 많이 만났다.

초청을 해주신 허트리오 어머니께 티켓을 받고 돌아서는데, 손짓을 하는 분이 있어 보니 올해초 새로 부임한 코리안심포니 임헌정 지휘자.

오늘 지휘를 맡진 않았지만, 감상차 아니 감독차(?) 당연히 오신 것 같다.

나를 부르더니 코리안심포니 담당자들에게 '신세계에서 클래식을 제일 많이 아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셨다. ㅋ

 

객석에 앉으니 작년 이맘때 작은애와 교향악축제에 왔던 생각이 났다.

큰애보다 감수성이 뛰어난 이친구 당시 좋아하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을 들으며 가슴을 쓸어내리던 기억이 난다.

고3인 올해에는 차마 같이 오자 소리를 못했다.

큰애는 음악적인 감각은 있는 것 같은데, 도무지 클래식에는 관심을 잘 가지지 않는다.

지난 겨울방학 '빈 소년 합창단' 공연 티켓을 얻을 기회가 있어 여친과 함께 가라고 했더니,

"됐다"며 한방에 퇴짜를 놓고서는, 그다음날 여친한테 말했더니 좋아라 가고싶어 한다고 티켓 좀 구해달라고 해 다녀오는 식.

아이들도 클래식음악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허승연은 독특하게도, 드레스가 아닌 검정색 바지와 다리까지 늘어진 옅은 붉은색의 씨스루 상의 차림으로 무대에 등장했다.

1악장 초반부의 피아노 솔로가 문안하게 흘러나왔고, 후반부와 3악장의 강한 터치가 필요한 대목의 몸동작을 보며,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눌 때 그녀가 보인 쾌활함이 떠올랐다.

자세한 과정은 모르지만 허승연은 현재 취리히 음악대학의 종신학장이라는자리를 맡고 있는데,

그녀의 연주를 듣고 보면서 그정도 중책을 맡을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지니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베토벤 4번 협주곡을 연주하는데, 무게감보다는 물위를 날렵하게 헤치고 다니는 듯한 피아노 터치가 특색인 아티스트인 것 같다.

허승연의 두 여동생은 각각 바이올린과 첼로로 이름나 있고 가끔씩 세자매가 허트리오라는 이름으로 연주를 한다.

한데 이 세자매의 공연이나 일정 관리를 다름아닌 어머니가 하고 있다.

겉모습이나 이야기를 나눌때는 무지 털털한 평범한 여자분인데, 세명의 자식을 이렇게 키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을까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교향악 축제는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해 가능한한 일반적인 레퍼터리를 선별해 운영되기에, 티켓값도 만원짜리부터 비싼 게 4만원을 넘지 않는다.

 

요즘 신호등을 건너려 서있노라면, 종아리 위로 봄햇살의 따스함이 내려앉곤 한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하는 콧노래가 저절로 나오는 계절,

감미롭고 힘찬 음악과 함께 이 봄에 스프링처럼 통통 튀어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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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의 행복

2014. 4. 12. 21:02 from music, film & literature


아름다움은 슬픈 감정을 부를 때가 많다. 왜 그럴까?
선연히 물든 노을을 볼 때나, 신께 애원하는 듯한 베토벤 협주곡 '황제'의 2악장에서 피아노 소리가 가느다란 선을 그으며 지나갈 때, 떨어진 벗꽃잎들이 바람의 선율에 맞춰 춤을 출 때, 이런 아름다운 감정을 느낄 때 왜 눈물이 나는 걸까?

오늘도 이같은 경험을 했다.

올해초 '강수진'이 단장을 맡은, 국립발레단의 공연 '백조의 호수'를 만나고 왔다.
열흘전쯤 검색을 하다보니 오천원짜리 좌석이 남아 있길래 두장을 덥썩 예매해놓고 손꼽아 기다려오던 공연이었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은 4층까지 있는데 그중 3층을 오천원에 구매했으니, 완전 횡재.
사실 오페라 극장은 거짓말 조금 보태면 3층에서도 무대가 빤히 보여 구태여 1층 비싼 자리를 구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발레의 경우 군무 동작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 보는 묘미를 만끽하려면 확실히 아래층보다 2층이나 3층이 훨씬 유리하다.

'발레는 몰라도 백조의 호수는 안다'는 말이 있듯 차이콥스키의 이 작품은 음악으로 먼저 우리에게 친숙해 있다.
어릴때 엄마 따라 두번 이 공연을 보았는데, 그때마다 나는 악마 로트바르트보다 오딜을 오데뜨로 착각하는 지그프리드가 원망스러워 한편으론 '뭐 저런 왕자가 다있냐?'하며, 또 한편으론 '춤은 참 잘추네..'하였고, 맘을 조려가며 또 줄거리를 따라가면서 행복한 결말을 기대하였던 것 같다.

지금은 발레 하면 '백조의 호수'가 떠오를 정도지만, 러시아의 오랜 전설 백조이야기를 발레곡으로 승화시킨 이 작품은 초연 당시 가혹한 평가로, 차이콥스키는 발레곡을 다시 쓰지 않겠다는 결심까지 했다 한다. 당시대인들이 백여년을 앞선 수준인 작곡가의 절대음악적 능력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

오데뜨는 내게는 늘 갸냘프고 불쌍한 '공주'로 남아있다. 발가락 끝으로 무대를 누비며 선을 그려가는 주인공을 만져보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쓰러져있는 그녀를 손잡아 일으켜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건, 어릴적이나 30년이 넘은 지금이나, 다름아닌 안타까움 때문이다. 
한편 흑조 오딜을 미워해야 하나? 사실 악마의 딸이긴 하나 오딜 또한 오데뜨와 1인2역으로 춤추고 있다는 걸 알게되면, 또한 오데뜨의 단아한 동작에서 볼 수 없는 화려한 몸놀림을 선사해 주는 그녀 또한 미움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두시간 반 내내 '아름답다', 또 '아름답다'란 생각만 했는데 그중 정말 눈물이 났던 대목은, 유명한 1인무용이나 2인무용이 아니라, 동그란 치마를 입은 28마리의 백조가 한꺼번에 또는 4,8,12마리씩 흩어졌다 모였다 하며 원을 그리거나 줄을 만들어내며 추는 군무 였다.
하얗고 갸냘픈 새들이 만들어 내는 직선 그리고 곡선의 순백색 완벽함.
이러한 모습의 군무와 느낌은 '백조의 호수'에서만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막이 내리고 무대인사에서 주인공역의 '김리회'는 군무를 멋지게 소화해 준 동료들에게 감사 인사를 해,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엄마 모시고 가서 공연 한번 더 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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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ebony & ivory

2014. 3. 31. 14:47 from music, film & literature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팝송들 중 한 곡의 제목이다.

폴 맥카트니와 스티비 원더 듀엣의 명곡.

'ebony & ivory, live together in perfect harmony, side by side on my piano keyboard, oh Lord, why d'ont we?(피아노의 검은 건반과 하얀 건반은 나란히 놓여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데, 우리는 왜?)'라며, 

흑인과 백인의 화합을 피아노라는 악기에 빗대어 호소하고 있다.

 

88개의 건반을 가진 피아노.

 

클래식 음악에 여러 악기가 등장하지만

'오케스트라 전체를 담을 수 있다'는 평을 받고있는 이 악기는, 다른 어느 악기가 따라올 수 없는 힘과 매력을 지니며 팝송 가사 표현처럼 그야말로 '완벽한' 소리를 발산한다.

 

모차르트 시대까지 사용되던 전신인 하프시코드(쳄발로)의 바통을 이어받은 현재의 피아노는,

하프시코드가 가진 한계인 '타건시 강약조절 불가'를 극복한 악기로,

고전파에서 낭만파로 이어지는 작곡가들의 사랑을 받으며 수많은 소나타, 중주곡,  협주곡 배출시킨다.

 

작곡가가 음표를 통해 자신의 심정을 드러낸다면, 아티스트는 연주를 통해 작곡가의 마음을 헤아린다.

 

이틀 일정으로 다녀온 통영국제음악제의 여독이 약간 남아있긴 했지만,

내한 때마다 어김없이 유료관객률 1위를 차지하며 예매 시작일에 해당 홈피를 마비시킨다는 '예프게니 키신'을 만나러 예당으로 향했다.

키신의 외모를 보면 난 늘 톰 행크스가 함께 떠오른다.

두 살 때, 들은 음악을 그자리에서 피아노로 재연한 것을 시작으로, 열 살에 모차르트 협주곡 협연, 이듬 해에 리사이틀, 열세살에 쇼팽 협주곡 1,2번을 모스크바 국립 필하모닉과 협연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곱슬머리 천재.

그가 연주하는 슈베르트, 스크랴빈, 그리고 앵콜로 이어진 바흐와 쇼팽을 듣는 내내 드는 생각은

'어떻게 저렇게 치지?'였다.

숨막힐 정도의 빠른 대목들과 부드러운 박자의 소화, 특히 건반을 누를 때의 강약 조절 면에서

그는 여타 연주자들에게서 볼 수 없는 면모로 커다란 감동을 선사한다.

필경 이 피아니스트는 다른 연주자들에 비해 강약 조절의 단계를 세배 이상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움직임은 기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다.

 

사실 그의 연주 수준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형용사는 없다.

그리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는 6,7시간의 연습이 그의 실력에 공헌했겠지만, 

키신의 연주는 노력만으로는 절대 얻어질 수 없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수학공부를 매일 다섯시간씩 해도 영어공부 한시간 한 점수를 따라잡을 수 없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결국 이 피아니스트는 열개 손가락에 신이 특별한 재능을 불어넣은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오버라고? 직접 들어보면 안다.

따라서 톰 행크스에겐 미안하지만, '캐스트 어웨이' 주인공의 물오른 연기력은 여기 견줄 바가 못 된다.

 

정해진 레퍼터리가 끝나고 그칠 줄 모르는 커튼콜로 세개의 앵콜이 이어진 후에도 관객들이 오히려 전원 기립박수를 보내자,

조종실에서 객석의 조명을 환하게 밝혀 청중들의 퇴장을 유도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나도 세번째 앵콜곡인 쇼팽의 폴로네이즈를 들으며 자꾸만 눈물이 났고, 쭈삣쭈삣이 아닌 자연스러운 기립으로 환호를 보냈다.

 

그가 연주한 쇼팽 음반들을 사서 들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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