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테르하찌 후작의 궁정 악장이었던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1809)은 29세에 유일하게 전해져오고 있는 첼로협주곡을 만든다.
이 곡은 드보르작, 생상의 첼로협주곡과 함께 가장 널리 연주되는 아름다운 곡이다.
작곡 당시 그는 "나는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었다. 내가 갈 길은 분명하며, 나는 충분히 독창적이다."라고 말했다 한다.
요즘 첼로 레슨곡으로 이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Cello Concerto C major)을 배우고 있다.
사실 바흐 무반주첼로 곡들 중 어렵지 않은 아이들 세곡 정도를 연주해 보았던 것도 내 실력으론 만만찮았던 일.
한데 이 곡을 내가 연주하게 되다니!
멜로디 자체가 화려한만큼 난이도가 강한 대목들이 많고, A선(첼로의 가늘고, 음이 가장 높은 선)을 따라 높은음 저 위까지 올라가야 하는 부분들이 많아서, 당연히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그런 곡이기 때문이다.
근데 약 1개월전 첼로선생님이 자기 악보책을 주며 해보자고 하셔서,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네 개의 선을 한꺼번에 그으면서 시작되는 예의 도입부부터 8줄 정도까지는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고, 오히려 재미있었다.
하지만 가온음자리표와 높은 음자리표가 나오기 시작하는 후반부는(첼로는 낮은음자리표를 기본으로 한다) 마치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느껴지기만 했다.
곡을 여러번 들으며 멜로디를 암기하였는데도 실제로 해보려고 하면, 특히 엄지 손가락으로 지판을 눌러 음을 잡아야 하는 곳들은 음표도 리듬도 소화하기가 힘들어, 나에게는 무리한 곡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 정도였다.
어제 레슨을 받으면서 애로사항을 호소했더니, 선생님이 다시 세세히 짚어주셨다.
까먹지 않기 위해 집에 돌아와 다시 여러번 해봤는데, '아, 이제 가능하겠다!'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곡 전체 악보가 총 10페이지가 넘는데, 배운 곳은 두쪽.
하지만 그 뒤의 악보들은 같은 동일 motive의 변형이나 반복으로 구성되어 이 두쪽만 잘 익히면 나머지 전부가 가능하다 하셨다.
'야호!'
첼로 연습을 하다보면 하이든이 말한 '세상으로부터의 단절'을 경험하게 된다. 나를 홀로 만들어 주고 나라는 존재를 다시 자리매김 해주는 좋은 의미의 단절.
사람은 누구나 외로움을 타게 마련인데, 첼로란 악기는 인간관계에서 메꿔지지 않는 아쉬운 부분을 따뜻하게 채워준다.
어릴 때 엄마가 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했던 '외로울 때 진정한 친구'인 것이다.
이 협주곡은 200년 이상 숨어 있다가 1961년 체코의 프라하박물관에서 발견되 진본으로 인정 받는다.
그러니까 세상에 나온지 50년밖에 안 된 것이다.
듣고 있으면 마치 첼로가 하늘로 비상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이 곡은
'듣기에는 어렵지 않지만, 수많은 첼리스트의 양손을 시험에 들게' 만드는 '쾌작'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아름다우면서도 시원함을 선사해 주는 곡이다.
부담이 없으면서도 극도로 수려한 곡을 만들어 내는 하이든의 이런 점을 모차르트가 높이 사고 또 닮으려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에스테르하찌 문고의 화재로 불타버렸다는 그의 또한곡의 첼로 협주곡이 궁금하다.
여러 음반들이 있지만 장한나(EMI)의 연주를 추천하고 싶다.
재기 넘치는 열여섯 장한나와 고인이 된 주세페 시노펠리의 어우러짐은 소장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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