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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0.01 같지만 다른 곡 1
  2. 2012.09.17 루바토 1
  3. 2012.08.21 토요콘서트-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명절에 대전집에서 CD를 몇장 들고 왔다.

엄마는 꽤많은 곡들을 보유하고 있는데, 아들이라 해서 음반을 그냥 주는법은 절대로 없다.

해서 이번에도 어릴적 실력을 끄집어내, 엄마 몰래 눈에 띄는 애들을 가방 제일 밑단에 숨겨 운반해왔다. 훔친 사과가 더 맛있는 법. 

새벽에 음반들을 꺼내 들어보려는데, 'Chelibidache'라는 타이틀의 자켓이 눈에 띄었다. 모차르트 40번과 하이든 92번 두 교향곡 실황 음반. 손으로부터 오디오로 빨려들어가는 CD의 느낌은 늘 좋다.

내 경우, 40번 2악장은 좀처럼 친해지지않는 곡으로 남아있다. 모차르트 곡들은 처음 접하면서부터 순식간에 좋아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아이는 여러번 들어도 이상하리만치 맘속에 자리잡질 못하고 있었다.

근데 훔쳐온 음반이 그 거리를 없애줬다.
여느 때와 달리, 새벽공기를 가른 음악에 , 마치 입에 착 달라붙는 찌게를 만난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특히 현악기의 따스함과 2악장 특유의 서정성이 고스란히 내 마음속에 파고들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Chelibidache가 지휘했기 때문이었다.
같지만 다른곡.

2악장을 반복해 들으며 검색해 보니, 그는 베를린 필의 푸르트뱅글러를 자신의 모델로 삼은 루마니아 태생 지휘자.
푸르트뱅글러가 인터뷰에서 템포 설정에 대해 질문을 받자 “그것은 소리가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에 달렸다”고 대답한 것에 첼리비다케는 큰 충격을 받는다.
이러한 배움을 통해 첼리비다케는 “음악이란 말로 이야기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체험일 뿐이다”라고 설파했다.
그래서 그는 녹음을 철저하게 거부했다.

나 역시 마이크로 받아 앰프를 통해 스피커로 전달되는 음악은 '체험'이란 면에서 실제와 같을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태어난지 딱 100년이 된 이 지휘자의 곡들을 좀 더 들어봐야겠다.

4악장이 끝나자 청중들의 박수소리가 잔잔한 파도처럼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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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루바토

2012. 9. 17. 13:18 from music, film & literature


늦은밤 전화벨이 울린다.

11시 넘어서 오는 건 십중팔구 엄마의 전화. 아니나 다를까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약간 격앙된 목소리가 들려온다.
엄마의 경우 어떤 생각이 떠올라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다이얼을 누르는 분.

타인에 대한 배려를 기대하기 힘든 엄마, 당신 큰아들이 잠에 민감한 사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통화 내내 신경질이 물밀듯 밀려온다.

전언은 두가지.
하나, '막내네 식구들이 방금 도착했어.'
둘, '루바토 라는 개념을 알고 쇼팽을 들어봐, 곡이 새로이 들려'

근데 그걸 하필 이시간에 알려줘야 하나?
'응 민우네 갔구나, 좋겠네. 알았어, 쇼팽 다시 들어볼게. 얼른 주무셔'하고 통화가 마무리되었는데, 끊고나니 엄마한테 미안한 맘이 들었다.

나 어릴적부터 당신이 받은 감동은 맏아들에게 기어이 그대로 전하려고 했던 엄마.
좋은 거라 생각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안겨주려 했던 사람.
음악회, 영화, 연극, 첼로, 테니스, 수영 스케이트 등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다.

엄마는 내게 어떤 존재일까?
나는 엄마에게 어떤 존재이고 또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엄마 생각을 하면 늘 눈언저리가 뜨거워온다.

rubato(tempo rubato)는 '박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하는 연주법이나 창법'을 일컫는 음악용어로, 쇼팽의 경우 마주르카 1번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루바토는 이태리어로 '뺏거나 훔친다'는 뜻이 있어서 지정된 템포에서 박자를 훔쳐낸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훨씬 이해가 빠르다. 중요한 것은 루바토를 사용해 훔쳐낸 박자를 어디에선가는 되돌려줘야 하는데 바로 그 마디나 프레이즈 안에서 모두 해결을 봐야한다는 것이다.

쇼팽이 말하기를
“ 선율이 루바토로 연주될 때 반주는 엄격한 리듬과 박자를 지켜야 된다.”
한 마디나 한프레이즈 안에서 훔쳤으면 돌려주라는 얘기다. 선율을 멋있게 늘렸으면 당겨주고, 당겼으면 풀어주라는.

이렇듯 쇼팽은 루바토 를 사용해 음악적인 언어를 구사,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호칭을 얻는다.

엄마는 전화통화에서 쇼팽의 곡은 '소나무 가지에서 잔설이 흩어지는' 것이 연상된다고 했다.

이렇게 나는 아직도 엄마에게 배움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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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세째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신세계 토요콘서트를 이번에도 다녀왔다.

 

지난해부터 베토벤의 교향곡과 협주곡을 레퍼터리로 1년여간 진행됬던 대단원의 막을 9번교향곡으로 내리는 자리였다.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베토벤을 알 수는 없지만, 공연 시작에 앞서 곁들여지는 김대진의 해설은 작곡가의 삶과 곡의 연관관계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김대진의 해설은 튀거나 흥분하지 않는데 그 묘미가 있다. 지휘자로서 곡에서 느끼는 감정을 잔잔한 파도처럼 청중들에게 전달해주기에, 오히려 마음속에 잘 각인된다. 원래 피아노를 전공한 음악가이기 때문에 이름있는 지휘자들과는 비교될 수 없긴 하지만, 주자들과 하나 되어 호흡하는 모습에서 그는 청중들에게 많은 점수를 얻는다. 다만 지휘할 때 악기주자를 가리키며 재촉하는 듯한 손짓을 하는 것만 좀 참아주면 좋으련만. ^^

 

9번 교향곡, 특히 4악장의 멜로디는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유명하다. 더군다나 베토벤이 마지막 교향곡을 자신에게 음악적 천재성을 부여해 준 신을 찬양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데서 모든이들은 이곡에 더 큰 매력을 느끼는 것같다.

청력을 상실했기에 신을 원망할 수도 있었을텐데, 악기의 소리만으로는 모자라 코러스를 더하기로 결정했다는 대목에서, 이 불멸의 작곡가의 신에 대한 강한 갈구를 엿볼 수 있었다.

 

3악장이 가장 인상 깊었다.

특히 메인 멜로디를 제1바이얼린부터 시작해 여타 현악기, 그리고 관악기들까지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주고받고 이어받고, 또 이 와중에 다른 악기들이 그 배음을 완벽하게 소화해주는 것을 듣고 경이로움을 느꼈다. ㅎ 나는 특히 첼로가 멜로디를 연주해나갈 때 전투력이 불탄다.

 

또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피콜로의 역할.

관악기 앞줄 맨 왼쪽에 자리잡은 창백한 얼굴의 피콜로 여자 주자는 3악장이 끝날때까지 한번도 리드를 입에 가져갈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베토벤 참 고약한 사람이네,, 40여분을 한자리에 일없이 앉아있게 만들다니.

한데 다음 악장에선 얘기가 달라진다. 4악장의 본격적인 테마가 시작되기 전 전초병 역할을 하는가 싶더니, 감칠맛 나는 '퓻퓻' 소리를 내며 메인 멜로디를 리드해나가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임무를 톡톡히 수행해낸다. 피콜로가 빠진다면 4악장은 지푸라기로 지은 집같은 구조적인 허약함이 느껴질 수밖에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연주가 끝난 후 수차례 커튼콜에도 앵콜곡이 연주되지 않았지만, 애석함은 남지 않았다.

다음 공연이 기대된다.

 

음악을 알고 함께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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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