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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6.05.03 piano
  3. 2016.02.28 천재, 순수함
  4. 2016.02.08 last concert
  5. 2015.09.30 바램
  6. 2015.06.02 악기 소리
  7. 2015.02.13 재수
  8. 2014.11.06 옥토끼 1
  9. 2014.09.01 일석이조
  10. 2014.07.20 자유로의 탈출 1

샌프란시스코

2016. 11. 11. 20:45 from music, film & literature

오래 전 가족과 함께 가 본, 많은 기억들이 남아있는 도시.
금문교야 말할 것도 없고, 물개들이 부표 위에 떼 지어 모여있는 pier 39, 배를 타고 둘러볼 수 있는 영화 the rock의 무대인 알카트래즈 감옥, 경사진 언덕을 오르내리는 귀여운 트램들.

헌데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건 이곳저곳을 다닐 때 눈에 들어오는 알록달록한 컬러들이다.
부드러우면서도 아름다운 색감을 품은 도시.
이런 연유로 이 도시는 유난히 동성애자들이 많이 찾아와 산다는 누군가의 설명도 있었다.

연이틀 무리해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공연을 찾은 이유는
이 도시의 이러한 풍미를 다시 느껴보고 싶었던 기대감에서다.
그래서 쇼팽 2번을 협연한 임동혁의 연주도 물론 멋졌지만,
오늘은 오케스트라가 얼마나 피아니스트와 잘 어우러지는지,
또 말러의 대곡을 어떤 색깔로 소화해내는지에 더 촉각을 세웠다.
관악기들이 목소리를 뽐내며 현악과 멋드러지게 어우러지는 여러 대목에서, 100여명 가까이 되는 이들의 연주가 청중들에게 흥분을 지나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50분 넘는 곡이 피날레를 치달을 때는, "내일엔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석양 불타는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
치유로서의 음악..

기립박수를 보낼 수 있는 공연을 만날 수 있다는 건, 큰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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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ano

2016. 5. 3. 00:27 from story of my life
오늘부터, 아니 어제구나, 드디어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30년동안 해보고 싶었던.
화음을 넣어보니, 참 신기했다.
현악의 화음과는 또다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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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모든 공연은 가서 보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늘 든다.

근데 그중 어떤 경우들은, 안왔으면 큰 후회할 뻔 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연주가 진행될수록 심장이 두근 거리며 흥분이 고조되고, 음악을 좋아하는 지인들 또는 가족들을 떠올리며 이걸 꼭 봤어야 하는데, 이런 느낌은 지금 아니면 평생 경험할 수 없는 건데 하는 감정들이 겉잡을 수 없이 번지는, 그런 공연이 있다.

 

오늘 공연이 그랬다.

 

손열음.

올해 5월이면 만 30세가 되는 천재 피아니스트.

 

그녀가 '내가 온 곳에 대한 기록'을 되밟아보겠다는 생각으로 20세기초 굴곡의 시대를 살았던 몇몇 작곡가들의 곡들을 소화해보겠다며 흔쾌히 택한 공연 '모던 타임즈'.

 

2부 조지 거쉬인 곡중 '원할 때는 가질 수 없고, 가지고 나면 원치를 않아'라는 재미난 제목이 눈에 띄었다.

근데 오늘 음악당 자리를 가득 메운 청중들은, '원할 때 가질 수 있고, 가지고 나면 더 갈구하는' 보석같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비교적 가볍고 발랄한 터치의 1부 곡들을 뒤로하고 2부의 한가운데인 '페트루슈카'가 연주될 때, 피아니스트의 천재성은 극도를 치달았다.

그 강렬함은 연주가가 건반을 치고 있는 게 아니라, 마치 피아노라는 괴물의 88개 건반들이 주자의 열손가락을 쉴새없이 빨아들였다가 튕겨내고 있다는 착각을 들게할 정도였다.

연한 빨강색의 반짝이 연주복에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콘서트홀 천정의 조명들이 반사되어 흡사 연주자의 몸에서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타건으로 발산되는 음들의 화려함에는 전혀 비견할 바가 못되었다.

 

정규 레퍼터리를 모두 마친 후, 오늘은 예정에 없던 3부 공연이 파티처럼 전개되었다.

그녀가 앵콜을 다름아닌 열곡이나 연주했기 때문.

마침 오늘 토요일이겠다 청중들 모두를 집에 보내지 않기로 어린 피아니스트가 작정을 한 것 같았다. ^^

더군다나 일곱번째곡부터는 특유의 천진난만한 표정과 목소리로 신청을 받아 진행되자, 청중들은 갈수록 열광과 환호를 아끼지 않았다.

객석에 앵콜곡을 요청하는 그녀의 표정에서, 2년전 본점 문화홀 공연 후 차한잔 하며 "문화홀 울림이 별로 안좋아서 불편하지 않았는냐"고 물어보자 생글 웃으며 "이런 홀은 이런 곳 나름대로 재미가 있어서 좋아요, 피아노 소리도 좋았고요"하고 천진난만하게 대답했던 모습이 연상되었다.

 

일곱번째 앵콜곡이자 오랜만에 연주한다던 라캄파넬라 화려한 대목이 번져나올 때 눈물이 막 나왔다.

객석의 불이 환히 밝혀진 시간이 11시 가까이 되었는데도, 로비에는 사인을 받으려는 팬들의 줄이 겹겹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앞으로 이 순수한 천재 피아니스트의 공연은 빠지지 않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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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concert

2016. 2. 8. 14:11 from music, film & literature
His last concert with SPO(15. 12/30)

어쩌면 잘 된 일이다.
진흙탕을 떨쳐나오게 되었으니..
좋은 여건에서, 그가 더욱 빛나길 바란다.

그가 33세 때 세종문화회관에서 본 그의 지휘는 21살 재수생이었던 내게 영원히 지속될 감동을 남겨주었다.

오늘, 연주중 단원들의 표정은 예전 공연들과 달랐다.
물결치는 현악기들, 관악기들의 호흡, 전율하는 타악기들, 코러스의 외침, 그리고 관객들의 숨죽임.
이 모든 것들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관악기들이 슬피 우는듯한 3악장에선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앵콜까지 마친 후, 그가 함께 했던 배의 선장으로서 선원들 한명한명과 일일이 악수와 포옹을 나누는 사이, 모든 청중들은 기립박수와 환호를 보냈고, 지휘석으로 돌아온 그에게 수많은 꽃다발들이 전해졌다.

한국 클래식 공연계는 아마도, 그의 빈자리로 인해 계산될 수 있는 산술적인 수치 이상으로, 뒷걸음질 칠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으로 몰아온 사람들은 관심도 없겠지만.

우리는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연주에 10년동안 행복했다.
그가 남긴 감동은 청중들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반짝거릴 것이고, 그래서 고마워하고 그를 끝까지 기억할 팬들이 많이, 아주 많이 남아있음을, 그도 알고 있으면 좋겠다.

마지막 무대에서 갈채를 보낼 수 있어, 행복하고, 슬펐다.
그를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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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램

2015. 9. 30. 23:42 from story of my life

오늘 아버지와 함께 대전에 다녀왔다. 두 달 전 대전에 마지막 남아있던 땅을 파는 계약을 하게 되었고 , 오늘 은행에서 매수인과 만나 잔금을 받고 하는 일을 하다보니, 이제 정말 대전에 올 일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밭이라는 이름과는 상반되게도, 대전은 크지 않은 도시다.
어릴 적 시내에 다니던 버스 모든 노선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의 참 적당한 크기의 도시.
지금은 유성 등이 포함되어 상당히 넓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한 곳에서 다른 어느 곳으로 가려면 대부분 20분 안쪽이면 족하다.
오늘도 은행에서 일을 마치고 내비를 검색해보니 시내 성심당까지 13분으로 나와, 내심 반가와 하지 않는 아버지의 눈치를 못 느낀 체 하고 - 아버지는 예나 지금이나 불필요한 것 같은 데 돈쓰는 걸 싫어하신다 - 빵집으로 달렸다.
직원이 활기찬 소리로 광고하며 잘라주는 몇가지 빵쪼가리를 시식하며 튀심소보로, 부추판타롱, 크로켓, 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팥도넛 등을 봉지에 담는데 기분이 참 좋았다.

사실 이집 빵은 나도 나지만 엄마가 아주 잘 드신다.
나 어릴 때 엄마가 대전의 '태극당', '오복당', '거북당' 등 몇몇 빵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빵, 재료 들을 참 많이 사주셨는데..
헌데 이제는 엄마가 다리가 안 좋아 거의 움직이질 못한다. 더 안 좋은 건 움직일 의지를 안 보인다. 저 상태로 지내며 영영 못 일어날 가능성도 많아 보인다.
휴..
나 어릴 때처럼 엄마가 여기저기 돌아 다니며 좋아하는 것 많이 사주면 좋겠다.
돈은 내가 얼마든지 드릴테니.
한달에 딱 한번이라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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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 소리

2015. 6. 2. 13:40 from music, film & literature


이사 온 후로, 도저히 못일어나는 경우가 아니면 새벽마다 둘째를 정자역까지 차로 데려다 준다.
학원이 있는 강남역까지 정자역에서 신분당선으로 18분이면 갈 수 있기 때문에, 아이한텐 강남 살 때에 비해 크게 나빠진 게 없다.
근데 나한텐 요 아침 일찍, 또 밤에 역으로 가 픽업해 오는 도합 30여분의 동승시간이 참으로 달콤할 수밖에 없다.
아이를 위해 눈에 보이는 뭔가를 할 수 있고, 또 아이와 함께 할 수 있기 때문. 뭐, 말을 많이 나누지 않아도 말이다.

근데 오늘 아침엔 FM에서 어떤 곡이 나오고 있는데, "아빠, 이거 클라리넷이지?" 했다. 내가 "응, 맞아. 대단하네" 했더니 "클라리넷 소리는 만화영화 같아"하고 혼잣말처럼 얘기했다.
내가 신이 나서 "응, 클라리넷 소리가 품격이 있지, 오보에 소리도 좋구!"하고 발동을 걸었더니 "품격 있는 소리는 플룻이지, 클라라넷은 장난치는 소리 같고"라고 응수했다.

사실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지만 난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나는 그 나이에 그냥 클래식음악이 좋아 듣기만 하는 수준이었는데, 둘째아이가 관악기군의 서너 가지 소리를 분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즐겁기만 하면서, 집에서 가능하면 93.1 들려주고, 음악회 일부러 데리고 가고 하길 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복잡한 것 같지만 관악기군은 조금만 신경 쓰면 그 종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목관악기중엔 앞에서 언급된 플룻의 왼쪽에 앉아 날아다니는 참새처럼 높고 가는 음을 내는 난장이 피콜로가 있고, 또 클라리넷 오른쪽에서 중후하게 낮은 소리를 선보이는 팥색깔의 파곳(바순)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금관악기로 달팽이처럼 생긴 감미로운 목소리의 호른, 사람 몸집만한 튜바. 그리고 세개의 버튼을 눌러대는 트럼펫과 관을 앞뒤로 움직이며 음을 맞추는 트럼본 등이 있다.

물론 이외에도 잉글리쉬 호른, 바셋 클라리넷 등 곡에 따라 특색 있게 등장하는 관악기들의 리스트들이 더 있긴 하지만, 앞에 언급한 목관 4종류, 금관 4종류 정도의 특징만 알고 있어도, 관악기들이 여러 대목에서 주로는 곡을 부채질해주는 역할, 또는 화음을 맡거나 그리고 적지않은 곳들에서 메인 멜로디를 이끌어가며 현악기들과 화답을 주고받는 이들의 역할과 매력이 얼마나 큰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존심 강한 소년 왕자같은 음색의 오보에 소리도 좋고, 아프리카의 한복판에서 낮잠을 자며 데니스가 축음기에 틀어놓은 클라리넷 소리도 잊을 수 없다. 마음에 선을 가느다랗게 그으며 지나가는 듯한.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중 '중국의 춤' 멜로디는 플룻 특유의 음색을 실컷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둘째아이가 플룻소리에서 '품격'을 떠올리는 이유는 뭘까. 풀내음 나는 듯한 상쾌함 때문일까?

뭐 이유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부디 수능 잘 마치고 좋은 음악들 많이 듣게 되, 다른 악기 소리에도 오늘 아침처럼 하나하나 본인 나름의 색깔을 부여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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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

2015. 2. 13. 10:54 from story of others

 

난 재수를 했다.

 

고등학교 시절 과목중 수학은 젬병이었던 반면, 영어는 참 잘했다.

3학년 1년간 월례고사 영어 평균 점수 100점. ^^

같은 반에 전교일등 하는 녀석이 있었는데, 모의고사 보면 영어는 내 자리로 정답을 맞추러 옴. ㅋ 이놈의 자랑질.

내겐 목표가 있었다.

다름아닌 우리나라 문학작품을 영어로 번역해서 한국에도 노벨 문학상을 받게 하는 것.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당시의 내 각오가 허황된 거란 생각은 안 든다.

내가 그런 목표를 세운 계기는 황순원의 '학'이란 작품을 읽고 나서다. 분단 조국의 현실.

여하튼 나름 우리도 좋은 문학작품이 있음을 전세계에 알리고 싶어했던 원대했던 나의 꿈은, 첫해 지원했던 영문과를 떨어지고, 재수 이후 학력고사 점수가 더 나빠져 불어를 전공하게 되면서 사그라들게 된다.

 

근데 아이들 둘 다 재수를 하게 되었다. 이런 건 지 아빠 안 따라해도 되는데.

큰아이는 재수 후 대학에 진학해 잘 다니고 있고,

작은애는 지난 화요일부터 강남역 대성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두녀석 중,고등학교에 이어 재수학원까지 선후배 관계가 형성되었다.

 

큰애와 작은애는 얼굴은 서로 닮았어도 성격은 참 다르다.

 

몇 주 전 일이다.

동생들과 부모님 일 때문에 상의차 집 부근에 모여 맥주 한잔 하고 있었는데, 작은애로부터 전화가 왔다.

평소에 먹을 거 사오라는 문자는 가끔 해도 전화는 통 안 하는 녀석이라 뭔일인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빠.. 보고싶어!"

"엥? 너 어디냐?"

"어딘지 모르겠어. 아빠, 나 너무 힘들어"

"술 마셨냐? 친구들 같이 있어?"

"응, 물이라고 하며 줘서 막 먹었는데 술이었나 봐, 모르겠네.. 친구랑 같이 있어"

 

친구 바꾸라 해서 통화 해 위치를 알아낸 후, 나도 술한잔 한 터라 택시 후딱 주워타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갔다.

애는 인사불성이 되서 190 가까이 되는 키를 주체하지 못하고 휘청휘청 하고 있었다.

 

택시. 도중하차. 또 택시. 이렇게 집에 겨우 데리고 들어와 앉혔는데, 이 친구 완전 풀어진, 하지만 목청에 힘을 주고는 왈.

집에 집사람, 큰애 모두 있었다.

 

"아빠, 너무너무 미안해"

"응? 뭐가.."

"내가 안 그래야 되는 줄 알면서도, 아빠한테 말을 자꾸 버릇없이 해. 아빠 미안해"

"하하 알았어"

"그리고 엄마, 형아! 아빠한테 잘 좀 해. 아빠가 우리집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야. 아빠는 학대받고 있다구!"

 

아고고. 이건 또 뭔 소리.

 

"알았다 민성아. 어서 자라"

 

이불 깔고 덮어주고 온찜질팩 배에 해줬는데도 계속 춥다해서, 녀석 등을 문질러주기 20분 정도 후에 잠이 들었다.

사다준 여명 808도 먹지 못하고.

애는 잠들기 전까지 아빠 내 옆에 계속 있어 하는 말을 수차례 했다.

등을 문질러 주며 황당하기도 하고, 팔이 무지 아프기도 했지만, 수액 주사 맞을 때처럼 내 마음에 따스한 기운이 스며올랐다.

글을 쓰는 지금도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니 기특하고 눈물이 난다.

 

둘째는 이런 아이다.

정이 많고 또 그러다 보니 눈물을 자주 보이는 아이.

친구들이 꽤 따르는데, 엄마아빠 생각에 함께 하지 않았으면 하는 친구 또한 떨쳐내지 못한다.

중학교 때는 해마다 큰 거 한 건씩 어김없이 터뜨리면서 가족들 모두를 놀라게 만들곤 했다.

 

그렇다 보니 큰애 재수할 때보다 둘째가 재수를 하는 건 걱정이 앞선다.

물론 더 잘 될 수도 있겠고. ㅎ

 

재수는 '다시 닦는다'는 의미다.

 

제 아빠는 제대로 다시 닦지를 못했지만, 둘째아이는 잘, 제 형보다도 더 슬기롭게 몸과 마음을 잘 닦아서,

일년 뒤에 활짝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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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끼

2014. 11. 6. 17:14 from story of my life

대학교 입학한 지 채 두달이 되지 않아서, 같은 과 한학년 여자선배가 상의할 게 있다며 나를 찾았다.

처음 조심스럽게 꺼낸 얘기는 여러가지 사회과학서를 읽고 스터디 하며 지식과 경험을 쌓아나가자는 거였는데, 쉽게 말하면 지하서클 가입 이었다.

서울에서 재수를 하며 먼저 대학을 다니고 있는 친구들과 가끔씩 만나 술한잔 하는 자리에서 시국, 그리고 데모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던 녀석들의 생각을 접했던 나는, 대학 들어가면 사회과학 공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 선배의 제의를 한번에 받아들였다.

선배, 영어과 여자애, 스페인어과 남자애, 철학과 남자애, 나 이렇게 다섯이 공부를 해나가기 시작했고, 머리 속에 주관이나 당위성이 채 영글기도 전에 시위가 있는 날이면 당연한 것처럼 스크럼을 짜고 최루탄에 맞서 돌과 화염병을 던져대곤 했다.

 

새로 만들어진 서클이다 보니 명칭이 필요했는데, 내가 입학 후 읽어 본 몇권의 책들 중 인상에 많이 남았던 김산의 '아리랑'이 생각나 제안했더니, 턱 하고 받아들여졌다. 게다가 당시에 '아리랑'이란 담배를 솔찮게들 피우고 다닌 것도 서클명 확정에 일조 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한 책들은 '해방전후사의 인식, 민중과 지식인, 체게바라 전기' 등등 이었다.

일주일에 두번 모여 읽은 내용들을 논의하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사실 불어 공부 하는 것보다 재미 없고 무료하기만 했다.

하지만 전두환으로 이어진 군부독재의 고리를 끊고 민주화를 앞당겨야 한다는 생각은 입학 이전부터 내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었고, 시위를 통해 당시 정부의 부당함을 앞장서 사회에 알리는 것이 바로 대학생들의 몫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일부 기성세대들의 욕을 먹으면서도 지하서클에서 공부를 하고 시위에 참가하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었다.

사실 그당시 누가 내게 반정부의 논리를 체계적으로 말해보라 하면 또박또박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긴 하다.

 

근데 하루는 도서관 지하 모임방에서 토의를 하는 와중에 '사실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인식해야 하고, 허구를 미화해서는 안된다'는 주제가 불거져 나왔는데, 그 예로 '달에 토끼가 살고 있다'는 생각 같은 것은 이제 버려야 한다고 선배가 말했다.

나는 바로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물론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우리 선조들이 그리고 당장 우리들도 보름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고 또 힘들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 그 안에서 방아를 찧고 있는 옥토끼의 모습에서 위안을 얻는 건 사실 인식의 정확성으로 논의할 문제가 아니다, 그런 서정적이고 대대로 내려온 감성적인 부분은 오히려 어떤 상황에서는 사실의 제대로 된 인식보다도 더 크고 긍정적인 영향을 인간한테 가져다 주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아주 강하게.

그날은 우리 서클 조직 윗선의 선배 한명도 와 있었는데, 내 말을 듣더니 한동안 대답을 못하다가 '그래, 솔직히 말해서 네 말에 대해 답변을 하기가 어렵다. 네 말이 맞을 수도 있다' 해서 분위기가 좀 어색해지기까지 했다.

 

옥토끼는 당연히 허구이긴 하다. 이미 50년 전에 인간은 달에 발을 디디기도 했고. 하지만 인간은 자신들을 달에 실어나른 첨단 과학 우주선의 이름에 아이러니 하게도 활과 음악을 관장하는 '아폴로'라는 신화 속의 이름을 붙였다.

우리는 사실에서는 확신을 가질 수 있지만, 허구(픽션)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 소설작품이나 음악 그리고 여타 여러 감성적인 것들에서 위안과 심리적인 기쁨을 얻게 되며, 이 두 가지는우리들 삶에 늘 공존해 오며 인간을 괴롭히거나 풍요롭게 만들어 왔다.

물론 현실을 중요시하지 않고 허황된 꿈을 꾸기만 하면 안되겠지만,

반대로 이론과 사실만 중요시하고 그 이외의 것들을 무시한는 삶또한 황폐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두가지의 적절한 조화를 어떻게 하면 잘 받아들이며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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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석이조

2014. 9. 1. 20:57 from story of my life

요즘 일요일엔 거의 매주 대모산엘 오른다.
사실 대모산은 해발 삼백미터도 안 되는 낮은 산으로 큰산을 선호하는 내겐 언덕 오르는 수준이라 자주 가진 않았었다.
근데 한달전쯤 가벼운 마음으로 오른 적이 있었는데 하산길에 보니 할머니가 쪼그리고 앉아 상치며 깻잎, 나물 등을 팔고 계셨고 한구석에는 내가 좋아하는 호박잎도 나와 있었다.
할머니와 몇마디 얘기를 나눈 후 검정 비닐봉투에 넣어주시는 호박잎 이천원어치를 사왔다.
지지난 일요일 개포동 떡볶이 생각도 나고 머리도 식히고 싶어 미사후 늦은 점심을 먹고 햇볓이 사그라드는 네시쯤 대모산으로 향했다.
저번보다 이른 시간이어선지 올라가는 길에 할머니가 안보였다.
하지만 내려올 때 보니 할머니가 나와계시길래 반가운 마음에 가서 아는척을 했더니 이번에는 깻잎이 맛있다며 권하셨다. 사실 나나 집사람 작은아이가 깻잎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좀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더니 할머니가 호박잎에 깻잎 한웅큼을 보태주시며 이천원만 내라 하셨다. ㅋ
근데 지난주 목요일 고기 몇점하고 저녁을 먹는데 작은아이가 안먹던 깻잎을 연이어 싸먹으며 싱싱하고 맛있다고 하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어제 일요일에도 낮은 산인 대모산을 올랐고 내려오는 길에 이번엔 깻잎과 호박잎 두가지다 상당량을 샀다. 크 완전 아들바보.
할머니께 물어보니 다 근처 밭에서 지어 뜯어오는 거라 하셨다. 그러니 싱싱할 수밖에.
한데 할아버지가 이제 그만 다니라고 해서 못나올 지도 모른다 하셨다.
명절 잘보내시라고 꾸벅 인사하고 내려오면서 그 할머니가 계속 나오시면 좋겠다고 맘속으로 생각했다.
큰산이든 작은산이든 산은 사람에게 참 많은 좋은 것들을 준다.
맑은 공기. 나뭇잎들을 스쳐온 바람의 시원함. 하늘색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초록빛. 계곡물의 알싸한 시원함. 내려다보는 즐거움. 기분좋은 땀냄새. 생각할 수 있는 여유 등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아들이 좋아하는 야채 까지.
일석이조가 아니라 그 고마움을 셀 수가 없다.
산이 없다면 정신과 치료를 받는 수가 몇곱절 많지 않을까?
꼭 깻잎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시간 날 때마다 산에 올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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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모차르트와 함께 있었지.'

'간수가 축음기를 넣어주기라도 한거야?'

'내 마음에 영원히 있는거야.
그게 음악의 아름다움이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어.'

교도소 전체에 '편지의 이중창'을 틀어준 댓가로 2주간 독방 신세를 지고 초췌한 얼굴로 돌아온 앤디가 동료들의 질문에 답한 대사다.

음악을 듣고있던 죄수들은 교도소 벽이 무너지는 것 같은 자유를 느꼈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완벽한 '자유'를 경험한 건 바로 앤디 자신이다.

그래, 마음속에 음악이 만들어낸 감동은 누구도 뺏어갈 수 없고, 온전한, 그리고 유니크한 내 것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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