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100건

  1. 2013.07.04 19년 1
  2. 2013.07.01 글쓰기3
  3. 2013.05.23 대조 2
  4. 2013.05.13 불면
  5. 2013.05.05 설레임
  6. 2013.04.27 화답 1
  7. 2013.04.26 일상 vs 일탈
  8. 2013.04.22 앵콜곡이 불러낸 어린시절
  9. 2013.04.12 고마워, '오투잼' 2
  10. 2013.04.03 진리

19년

2013. 7. 4. 17:31 from story of my life

신세계라는 회사에 첫발을 디딘지 19년째 되는 날이다.

 

94년 7월4일.

미국 독립기념일이기도 한 이 날 회사에서 처음으로 신입사원으로 선발해 본 장교 출신 동료들 19명과 함께 대연각빌딩에 모여 버스를 타고 연수원으로 출발했다.

두주간의 짜임새 있게 구성된 입문교육 도중에 김일성 사망이라는 특보가 있었고

동료들 20명 모두는 무난히 신입사원 교육을 마친 후 입사 3주차 월요일부터 배치된 부서로 출근했다.

 

당시 상계동이 집이었던 나는 이에 대한 배려로 지금은 이마트로 바뀐 신세계 미아점이 첫 발령지로 정해졌다.

미아점 주방용품 매장 SM(Sales Manager)의 경험은 그 이후 내 회사생활에 아주 강한 백신과 같은 역할을 해준다.

이 회사가 이런 곳이었나, 그만두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하루에 몇번씩 들었다.

여름휴가가 있긴 했는데, 내내 회사일 걱정으로 차라리 출근하는게 맘편하겠다 하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SM 경험 일년반 뒤 대연각빌딩 18층 기획팀으로 발령이 났다.

매장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기쁜 일이었지만,

남아 있을 ASM과 코너장 및 동생들이 계속 힘들게 일할 거라는 생각은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기획팀에 3년간 있으면서 기억나는 일들은,

중국 출점 관련 대표 연설문을 작성하며 며칠밤을 샌 것, 스포츠단 창단 기획안, 음악잡지 창간 기획안 등이다.

 

그뒤 다시 3년간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상품권팀에 몸담으면서

상품권 마케팅 업무를 배우게 되었다.

3만원권 500장이 사라져 남대문경찰서에 호출 당해보기도 했다.

 

2002년 3월 내가 일하고 싶었던 연수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창밖의 나무와 하늘을 풍경 삼아 강의장과 사무실을 오가며 아마도 가장 열심히 실무에 임했던 7년이었다.

탁구, 테니스, 축구, 산보 등을 할 수 있는 기쁨이 있었던 반면,

불면증으로 9개월간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기도 했던 희비의 교차시기.

 

부장으로 승진하면서 2009년 3월 인천점 생활팀장으로 가게 되었다.

또다시 집에서 60킬로미터 거리를 왕복해야 해서 처음에 불만이 많았지만

팀원들과의 잘맞는 호흡과 가족같은 분위기로 직장생활 19년중 가장 활기차고 행복한 시기였던 것같다.

지하철로 왕복 세시간 20분 걸리는 먼 거리였지만 한번도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다.

특히 리뉴얼을 마치고 브랜드협력사원들 아침조회 자리에서 한 직영사원들(나 포함)의 공연은 영원히 잊지 못할 기억이다.

 

공연 당일 오후 본사 고객서비스팀으로 발령날 거라는 소식을 접한다.

9년만에 본사로 들어와 2년2개월간 지낸 고객서비스팀은 한마디로 말하면 '활력 itself!'

 

지난 3월 문화팀으로 와 이제 일을 마구 배우고 있는 중이다.

아카데미(문화센터)와 문화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이다보니

나로서는 정말 만족할만 한 보직을 회사에서 준 거다.

내가 이 회사에 들어오면서 문화팀장을 하게될 줄이야 !

잘 해야 할텐데..

팀장으로 와 일을 하다보니 세부적인 것들의 체험이 부재한 상태에서 의사결정하고 기획을 해야한다는 부분이 가장 아쉽고 마음에 걸린다.

현장에서 힘에 겨워하는 매니저들의 모습이 안스럽기만 하고, 하루빨리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팀원들이 팀장 기념일이라고 점심을 밖으로 가자해 맛있는 중국집에 다녀왔다.

가을학기 강좌 초빙을 위해 유홍준교수님도 만나고.. 글과 생활이 일치하는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1년 뒤면 입사 20주년.

그때 나는 어떤 생각과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즐겁게 일하자!

 

 

 

 

'story of my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no more  (0) 2013.10.20
반표  (4) 2013.10.09
불면  (0) 2013.05.13
설레임  (0) 2013.05.05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0) 2013.04.01
Posted by shane k. :

글쓰기3

2013. 7. 1. 08:47 from reviews

 

한해의 새로운 반이 시작된다.

 

이 블로그를 연지도 곧 일년이 된다.

들춰보니 그동안 70개의 글을 올렸는데, 지난 달엔 한편도 쓰질 못했다.

 

글쓰기2 에서 다른 사람이 읽을 것을 생각하게 된다는 말을 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타인의 눈을 그다지 의식하진 않았던 것같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글쓰기1 에서 언급한 것처럼 감정의 편린들을 잡아두려고 하긴 했으나,

그 감정의 정도를 한껏 표현하진 못한 것 같다.

이는 내 글솜씨의 한계가 첫번째 이유이고,

또하나는 아예 글을 띄우지 못하는 상황들이 존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글로 올리지 못한 상황들은 어떤 것들은 기억에서 흐려지고 또 어떤 것들은 아직 또렷이 남아 있다.

 

한데 이제 글을 띄우지 못할 솔직하지 못할 상황들은 없어지게 되었다.

 

앞으로는

달뜰 정도로 행복감을 느낄 때는 그 즐거움의 크기만큼,

또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힘들 때는 또 그 아픔의 깊이만큼,

그렇게 나의 상황을 잘 담아내는 글을 써야겠다.

 

아니, 이제부터 그렇게 쓸 수 있다.

 

 

 

'review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류시화  (0) 2013.03.20
마음을 얻는 것  (2) 2012.12.28
리더의 역할을 위한 항목들  (1) 2012.12.14
헤어짐, 새로운 만남  (1) 2012.12.03
방송 출연  (0) 2012.11.29
Posted by shane k. :

대조

2013. 5. 23. 13:31 from music, film & literature

 

혼신의 힘을 다한 공연 후의 지친 얼굴.

 

드디어 그를 만난 나의 기쁜 얼굴.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나는 마냥 행복했다.

 

 

 

'music, film & litera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물  (0) 2014.02.07
Happy New Year !  (0) 2014.01.11
일상 vs 일탈  (0) 2013.04.26
앵콜곡이 불러낸 어린시절  (0) 2013.04.22
고마워, '오투잼'  (2) 2013.04.12
Posted by shane k. :

불면

2013. 5. 13. 01:09 from story of my life

정신, 아니 마음을 난도질당하면 잠은 어김없이 내게서 도망간다.

상처를 준 이가 받은 사람보다 더 아프다는 말, 상처 입은 사람을 위로하기 위한 허울좋은 거짓말이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story of my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표  (4) 2013.10.09
19년  (1) 2013.07.04
설레임  (0) 2013.05.05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0) 2013.04.01
이동  (3) 2013.03.12
Posted by shane k. :

설레임

2013. 5. 5. 07:39 from story of my life

나와 부산의 첫 만남은
공군사관학교 교관 시절 수송기를 타고 몇몇 동료들과 함께 사관생도들을 이끌고 와서였다.
당시 광안리 민락동(?)에서 직접 흥정하여 고른 횟감을 소주와 함께 즐긴 후 해운대의 밤을 거닐며, 부산이 이런 곳이구나 하고 느꼈다.

한참 뒤 둘째가 태어나기 전 세가족이 다시 들른적이 있다.
겨울이었는데 네살짜리 큰애가 단추가 채워진 진보랏빛 코트를 입고 광안리 모래사장위를 풀어놓은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초등 일학년 때였던가, 이제 단어들의 개념을 알아듣기 시작한 이녀석, 부산의 조선비치라는 호텔에서 묵는다고 출발 전날 얘기해줬더니 이튿날 새벽 다섯시쯤에 안방으로 와 내 팔을 흔들며 어서 가자고 졸라댄다.
호텔이란 말에 이친구 마음이 적잖이 설레 그 이른시간에 잠이 깬 모양.

회사 복지 프로그램 덕에 부산은 그뒤로도 꽤많이 방문, 낯익은 곳이 되었다.

어제 가족들과 함께 또다시 부산을 찾았다. 뭐 이제 다 컸지만 내겐 아직 어린이인 두녀석과 어린이날 기념으로 이곳에서 함께 보내기로 한 것.

어릴적 큰애에게 설레임을 안겨준 부산은 이제 학창시절을 보낸 곳으로 남게 되었다.

첫경험은 때로는 두려움을, 아니면 설레임을, 또는 두가지를 동시에 가져다준다.

지난해와 올해 나는 크고 작은 첫경험들을 하고 있다.
처음인 곳으로의 여행, 새로운 부서, 처음 들어본 곡들, 음반으로만 들었던 오케스트라나 지휘자 연주자들을 직접 보게된 것.
그리고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경험.

나로서는 지난 일년 남짓한 기간이, 오히려 내게 일생을 통털어 얻지 못한 배움과 소중한 경험을 가져다 준 시기인 것 같다.

행복은 그 행복이 사라지면 고통이 따른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사람은 순간이든 지속적인 것이든 행복을 추구한다.
첫만남의 설레임, 그뒤로 찾아드는 행복함. 설레임으로부터 이어지는 행복함은 평생을 마음속에 자리잡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인생에서 앞으로 얼마나 이같은 설레임을 또 경험할 수 있을까?

조선비치 객실에서의 바다는 언제 봐도 참 아름답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story of my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년  (1) 2013.07.04
불면  (0) 2013.05.13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0) 2013.04.01
이동  (3) 2013.03.12
태극기  (1) 2013.03.02
Posted by shane k. :

화답

2013. 4. 27. 08:08 from story of others

토욜일.
잠이 아직 몸 여기저기 묻어있는 이른 시각인데 작은애 방에서 꺼이꺼이 울음소리가 새어나온다.

이친구 오늘 생일인데, 부산서 대학생활중인 제 형의 장문의 페북 축하메시지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

워낙 서로 살갑지 않은 사이인데다, 지난 설 두녀석이 크게 싸운 이후로 서로 말도 안하고 있던 차였는데, 제 형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 미안하다, 무뚝뚝한 형, 멀리서 응원한다, 사랑해' 등의 내용에 감수성 풍부한 동생의 감정이 복받친 것.

방금 확인하니 형에게 '존경, 개겨서 미안, 사랑' 등의 표현으로 답문을 보내셨네.

난 두녀석의 화답에 '좋아요'만 눌렀다.

오늘은 민성이에게 평생 잊지 못할 특별한 생일로 남을 것 같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story of other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들  (0) 2014.05.15
덥지만, 시원한  (1) 2013.08.15
직업의 귀천  (0) 2013.01.25
오만원  (0) 2013.01.07
terms of the rich  (0) 2012.12.18
Posted by shane k. :

일상 vs 일탈

2013. 4. 26. 09:11 from music, film & literature

 

로마를 처음 가본 건 2002년 가을이었다.

종착역으로 끊겨진 선로들이 인상적이었던 떼르미니역의 근처 호텔에서 묵었는데,

이틀간 도보로 여기저기를 돌아보면서 '로마시민들, 선조들로부터 훌륭한 유산을 받은 복받은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며 부러웠다.

자기집이라도 함부로 허물거나 개조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제할 정도로 건물이면 건물, 공공시설, 분수대, 기둥 하나도 어느 것 할 것 없이 멋들어진 유적들이었다.

특히 판테온 신전의 돔형 천정에 뚫린 지름 9미터의 구멍(거대한 눈)은 내게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날이 좋은 때는 햇살을 아름답게 들여와 신전이 비춰지고, 비오는 날에도 건물 내부 대류로 인해 빗물이 구멍으로 들이치지 않는 구조로 만들었다는..

 

이곳 로마에서 벌어진 4팀의 에피소드를 재치있게 다룬 '로마 위드 러브(To Rome with Love)'란 영화를 보았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도 느낀 바지만, 이번 영화에서도 우디앨런의 독특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더구나 이 영화에는 제시 아이젠버그(소셜 네트워트), 로베르토 베니니(인생은 아름다워) 등의 등장도 등장이지만,

메가폰을 잡은 우디앨런이 직접 연기를 선보여 관객들이 웃음을 쉴 새 없이 자아내게 해주었다.

 

로마에서 만난 커플중 장의사를 하고 있는 약혼녀의 아버지.

일약 유명해진 평범한 직장인.

로마로 신혼여행 온 커플.

친구의 연인을 사랑하게 된 남녀.

 

네팀 모두 특이한 경험을 하며 새로운 세계로의 도전 또는 유혹을 경험하지만,

결국은 욕심을 부리지 않고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인간은 누구나 일상의 편안함에 안주하려는 한편,

낮설지만 또다른 세계의 매력을 의식적으로 또는 우연한 기회를 통해 찾고 느끼게 되, 

무채색으로 시작했던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색깔의 톤을 더해나가곤 한다.

 

새로운 세계를 더하는 일은 흔히 고통이 따르지만,

어쩌면 그동안 찾지못한 나의 본질을 깨닫게 하면서,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일상'을 벗어나는 것은 과연 '일탈'일까?

이 질문은 아마 죽을 때까지 뒤따르지 않을까 싶다.

 

평범하고 다수가 옳다하는 생활을 하는 것과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나의 또다른 영역에 매료되는 것.

두가지는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다.

또 누구도 어느 것이 옳다 옳지 않다 판결내릴 권리가 없을 것이다.

 

다만 어느 길을 걸어가든, 새로운 대상과 또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중요한 부분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자신에 대한 배려가 우선되어야 하는 걸까?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삶은 누구에게나 고통을 안겨준다'라는 운전기사의 대사가 질문에 대한 현명한 답을 주고 있는 듯하다.

 

샤워를 하며 유명 오페라곡들을 수려하게 부르는 장의사의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꾸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대목이다.

 

영화 '시작은 키스'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라면 강력 추천하고 싶다.

 

 

 

 

'music, film & litera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Happy New Year !  (0) 2014.01.11
대조  (2) 2013.05.23
앵콜곡이 불러낸 어린시절  (0) 2013.04.22
고마워, '오투잼'  (2) 2013.04.12
진리  (0) 2013.04.03
Posted by shane k. :



로린마젤이 이끄는 뮌헨 필하모닉을 만나고 왔다.
부서가 바뀌고 공연 접할 기회가 갑작스레 많아졌다. 나로서는 행복한 일. ^^
일요일이다보니 오후5시 시작이어서 점심 후 양재천 벗꽃 산책 후 가벼운 마음으로 예당으로 향했다.

레퍼터리는 베토벤의 '콜리오란 서곡, 4번, 7번 교향곡'

상업적인 녹음 거부, 돌발적 언행 등으로 유명한 첼리비다케의 지휘봉을 통해 수준급으로 연마된 뮌헤필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바이에른 국립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와 함께 뮌헨이 자랑하는 세계 수준급 악단으로 이날 연주에는 약 90여명의 단원이 자리잡았다.

사실 콜리오란 서곡은 내게 생소한지라 평하기가 어렵다. 뮌헨필의 교과서적인 정통성을 맛볼 수 있었을 정도.

이어진 4번 교향곡.
베토벤 교향곡들이야 아홉개 모두 우위를 따짐이 소용없는 일이지만, 3번(영웅), 5번, 6번, 7번, 9번(합창)이 대중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근데 4번도 참 좋은 곡이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1악장의 경우 다른곡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기분을 달뜨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오케스트라의 수준평가는 다른 것들도 있겠지만, 두가지 정도를 놓고 생각해보면 된다.
하나는 현악기와 관악기의 균형.
둘째는 음의 시작과 끝을 얼마나 정확히 맞추는가.
위의 두가지에 얹어 뮌헨필의 연주에서 내가 느끼기에 돋보이는 또다른 훌륭함은, 음이 끝난 직후의 울림이 특히 또렷이 전달된다는 것. 다음음으로 넘어가기 전 순간의 공백에 이전음표의 그림자를 확실하게 느끼며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악장이 끝나자 슈만이 이 4번교향곡을 '두명의 노르딕 거인(3번과 5번) 사이에 놓인 날씬한 그리이스 아가씨와 같다'고 해석한 이유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인터미션 후 이어진 7번 교향곡.
작년말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그리고 지난달 서울시향이 연주한 7번과는 또다른 느낌이었다.
어느 악단의 연주가 더 낫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얀손스의 바이에른과 비해 뮌헨은 비슷한 악기수이지만 소리의 크고작음의 폭을 보다 작게 가져가면서도 좋은 의미에서의 교과서적인 해석을 했다는 느낌. 단원 한사람한사람이 개인의 기량보기는 전체의 조화를 위해 엄격하게 훈련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이에른의 소리가 웅장함의 극치라면 뮌헨은 노장의 잘 가다듬어진 성숙함이라 하면 맞겠다.
템포를 조절하며 현악기들이 아름다운 소리를 표현할 때는 마치 색동 알사탕을 입안에 굴리는 듯한 달콤함을 경험했다.

베토벤은 곡의 멜로디를 바이올린이 아닌 다른 악기군에게 맡기면서도 그 완성도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성을 자주 보여준다.
5번 교향곡의 3악장이 그 대표적인 예이며, 이번 7번의 2악장에서도 그 진면목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초반부 관악기의 연주에서는 현악기들이 화음을 맡고, 이어 베이스, 첼로, 비올라의 주멜로디 연주에서는 오히려 바이올린이 하모니를 담당한다. 2악장 특유의 숙연함은 이같이 저음의 악기들이 대부분의 주된 악상을 이끌어가기에 그 밀도가 더욱 강해지는 것이 아닐까?

앵콜로 베토벤의 서곡 '에그몬트'가 선사되었다.
에그몬트는 5번 교향곡을 듣기 위해 내가 중학교때 최초로 구입한 LP판에 함께 수록되어 덤으로 친숙해진 곡이다.
곡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비장함이 흐르고 있어 듣는이들의 마음에 감동을 자아낸다.
현악기들의 연주가 절정에 달할 무렵 어린시절의 감동이 되살아나며, 그리고 음악이 최근의 내 심정을 대변해주는 듯 해, 눈물이 나왔다.

83세의 노장 로린마젤과 뮈헨필.
벗꽃이 한창인 봄날의 아름다움에 한없는 따사로움을 안겨주었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music, film & litera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조  (2) 2013.05.23
일상 vs 일탈  (0) 2013.04.26
고마워, '오투잼'  (2) 2013.04.12
진리  (0) 2013.04.03
정면의 행복  (0) 2013.02.18
Posted by shane k. :

 

오감자, 쿠키오, 오대감 등 '오'자가 붙은 과자 이름이 많지만 '오투잼'은 과자도 잼도 아닌 컴퓨터 게임명이다.

 

지난 일요일 모처럼 작은놈과 아침을 같이 먹다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교향악 축제 얘기를 꺼냈다.

첫째에 비해 클래식을 좋아하는 둘째이긴 하지만 공부에 대한 압박감으로 콘서트 가잔 소릴 해도 단칼에 거부하곤 해서,

한편으론 기특해 하면서도 내심 속상해 오던 차였다.

공부는 세시간 못하는 거지만 음악회의 감동은 평생을 가는 건데..

근데 이날 밥상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도 프로그램에 있다 하니, 선뜻 같이 가겠다고 결정했다.

오호, 이게 왠일!

 

사실 둘째가 피아노콘체르토 3번을 유달리 좋아하는 이유는

중학시절 한참을 빠져있던 '오투잼'이라는 게임의 배경음악으로 이곡 1악장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1년반만의 둘째와의 음악회 데이트라니.

남부터미널역에서 만나 가까운 식당을 찾아 저녁을 먹은 뒤,

봄날치곤 제법 바람이 차게 불어대는 예당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공연 시작전 작은애가 '아빠, 내가 중간에 눈 감고 있어도 절대로 자는 게 아니니 툭툭 치거나 하지마~'한다.

 

피아니스트 '데이빗 헬프갓'의 실화를 다룬 영화 'Shine'에서 빗속을 헤매다 카페로 들어온 주인공이 극적으로 연주하는 장면을 통애 더욱 유명해진 3번 협주곡은,

널리 연주되는 2번 협주곡의 연장선상에 있다할 만큼 러시아적인 정서가 잘 담겨져 있다.

1909년 작곡가 자신의 연주로 미국에서 초연된 이 곡은 몽환적이라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동시에,

'미치지 않으면 연주할 수 없는 곡'이라는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피아노라는 악기에서만 볼 수 있는 격렬한 건반터치도 한껏 경험할 수 있다.

 

이날 오케스트라는 백발의 금노상씨가 지휘봉을 잡은 대전시향, 피아노는 차세대 피아니스트라 일컬어지는 김태형.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이 끝나고 피아노가 옮겨지자, 작은애는 설레인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3번 협주곡을 실황으로 듣기는 나도 처음.

1악장 후반부와 3악장 전반에 흐르는 '미친듯한' 대목을 들으면서,

라흐마니노프 연주때 피아노 강선이 가장 많이 끊어진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섬세한 터치이면서도 극도의 빠른 템포로 연주되는 부분들도 카타르시스를 안겨다 주곤 했다.

마치 주자가 건반이 아닌 잔잔한 물의 표면을 바람개비 돌아가듯 손가락으로 어루만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반면 김태형의 몸이 들썩거릴만큼 임팩트 강한 부분에서는,

피아노는 피아니스트에게 강렬하게 지배당한다.

그리고 피아니스트는 다시 피아노에 지배 당한다.

 

인터미션때 아무래도 학원 가는 게 마음이 편하겠다고 해,

아쉽지만 2부의 차이콥스키 5번 교향곡을 뒤로하고 나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둘째가 '군데군데 울컥하고 눈물이 나왔다, 연주회가 주는 감동이 참 큰 것 같다'고 해서

난 너무너무 행복하고 또 뿌듯했다.

 

고마워, '오투잼'

 

영화 'Shine' DVD를 구매해 함께 봐야겠다.

 

 

 

'music, film & litera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상 vs 일탈  (0) 2013.04.26
앵콜곡이 불러낸 어린시절  (0) 2013.04.22
진리  (0) 2013.04.03
정면의 행복  (0) 2013.02.18
5 vs 5  (0) 2013.01.21
Posted by shane k. :

진리

2013. 4. 3. 08:12 from music, film & literature

올해 들어 사내 클래식 강의가 잦아졌다.
지금도 연수원으로 가는 길인데, 분당수서간 도로변에 지난 주말에 비해 개나리 색깔이 더욱 풍성해졌다.

얼마전 구입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2번 CD를 기사아저씨께 건네드려 듣고 있는데, 에밀 길렐스의 건반 터치는 또박또박 힘이 넘친다.
이곡은 지난주 금요일 손열음이 서울시향과 협연한 레퍼터리로, 티켓을 구입해놓았다가 더 중요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연주회를 포기하게 되었다.

그 중요한 일이란, 연주회날인 사순절 성금요일 밤 내가 다니는 성당에서 '수난복음(예수님이 잡혀 돌아가시기까지의 성서 내용)'을 신부님과 함께 노래로 연주하는 것.
30분정도 세사람이 노래를 주고받아야 하는데다, 내가 맡은 부분들이 극도로 높은 음역대인지라 소화하기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많은 신자들 앞에서 그것도 신부님과 함께 예수님의 돌아가심을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이 나로서는 크기를 잴 수 없고, 그래서 놓칠 수 없는 소중한 영광이었다.

손열음의 차이콥스키 연주도 소중했지만 이에 비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금요일밤 내가 노래한 중에
'진리가 무엇인가?'하고 빌라도가 질문하는 대목이 있다.

진리가 무엇일까?

변하지 않는 것?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
모두가 옳다고 하는 것?

진리가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옳은 것의 선택이 내가 공연을 포기한 결정처럼 쉬운 것이라면 좋겠다.

하지만 알다시피 늘 그렇지만은 않다는 게 문제다.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할 때가, 또 그리하는 게 옳다고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으는 경우가 있지만, 정작 나는 다른 하나를 놓아야하는 기로에서 다리에 힘이 풀려, 또 머리속이 하얗게 되 아무 생각을 못하며, 방황하게 될 때가 있는 것이다.

진리가 무엇인가.

음반이 그새 곡을 바꿔 귀에 익은 1번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music, film & litera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앵콜곡이 불러낸 어린시절  (0) 2013.04.22
고마워, '오투잼'  (2) 2013.04.12
정면의 행복  (0) 2013.02.18
5 vs 5  (0) 2013.01.21
유럽식, 미국식, 절충식  (0) 2013.01.03
Posted by shane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