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출연

2012. 11. 29. 15:51 from reviews

 

나에게 방송 출연은 겁보다는, 탐이 나는 대상인 것같다.

 

사원들 대상 '클래식 강의' 하는 것을 취재하겠다고 홍보팀에서 연락이 왔을 때 서슴지 않고 오케이를 한 걸 볼진데,

나라는 사람이 스폿라이트 받기를 은근히 좋아하는 작자로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어제 사내 TV 방영 이후 오늘도 만나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내게 건네는 거 역시 싫지 않은 걸 보니 아무래도 확실한 것 같다.

 

잊지 못할 방송출연이 있다.

 

2000년 말이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당시 40년 가까이 교직에 계시던 아버지가 정년퇴직으로 당신이 커다란 정을 쏟아부었던 교편생활을 그만 두게 되자,

우울증 증세와 함께 슬럼프에 빠지셨다.

뜻밖의 상황에 나를 비롯한 동생들은 당황스러웠고, 궁리 끝에 삼형제가 방송 출연을 해 아버지를 즐겁게 해드리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방송은 지금도 그 명맥이 이어지는 KBS '아침마당'의 토요일 고정 테마인 생방송 '노래자랑 코너'.

예선을 거친 후, 결선곡으로 고민 끝에 클론의 '꿍따리 샤바라'를 정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겁도 없었다.

방송 일주일 전부터는 하루가 멀다하고 셋이서 노래방을 돌며 노래와 율동을 맞췄다.

 

드디어 결전의 날.

 

새벽같이 방송국에 도착, 리허설에 이어 생방송이 진행되었고, 아버지와 엄마는 방청석에 앉아 계셨다.

세개 팀이 겨루면서 실시간 시청자 전화 다이얼링으로 순위가 매겨지는 방식이었는데,

참가사연 까지 다 들어본 후 시청자들이 버튼을 누른 결과치로 순위가 결정된다.

두번째 순서인 우리팀 노래가 끝나자 이금희 아나운서가, 맏형인 내가 엇박자로 춤을 참 교묘하게 추더라고 칭찬아닌 칭찬을 했다.

 

결과는 우리 삼형제팀이 1등.

PD왈 보통 1등이 4만통 정도의 전화가 오는데 이번에는 6만통이 넘었다 하니, 사연의 딱함이 큰 어필을 한 것 같았다.

 

이후 친척들, 특히 작은아버지 고모 등으로부터 칭찬을 꽤 들은 것 같다.

고모부는 TV를 보면서 전화를 5번 이상이나 돌리셨다고 하고.

 

한편 부상으로  제주도 2인 여행권이 지급되, 이듬해 부모님은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신다.

근데 갈때는 손붙잡고 가셨는데, 돌아오는 날 김포공항에 마중 나가보니 두분이 싸우고 5분간격을 두고 따로 출구로 나오셔서 한숨이 푹푹 나오기도 했다.

 

그 뒤 한 작은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도 즐거웠겠지만 할머니가 방송 당시 정말로 기뻐하고 행복해하셨다 한다.

할머니,

할머니는 손자들 재롱보다도 방청석의 당신 아들 얼굴이 클로즈업 될 때 너무 좋아하시고, 그날 하루종일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다니셨다 한다.

 

지금 생각해봐도 참 잘 한 일이었다.

 

근데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린 것, 할머니께 행복을 안겨드린 것도 좋았지만,

당시 우리 삼형제가 모여 맥주한잔씩 하며 노래연습을 하는 과정에서

그전 그후 다른 어느때와 비교할 수 없는 형제애가 심어진 것 같다.

그래서 맏이인 나로서는 이 부분이 가장 큰 수확이 아닌가 생각된다.

 

착한 동생들.

 

방송출연은 이렇게 나에게 큰 의미와 행복을 안겨주었다.

 

앞으로도 또 이런 기회가 주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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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