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of my life'에 해당되는 글 47건

  1. 2016.05.03 piano
  2. 2015.09.30 바램
  3. 2014.11.06 옥토끼 1
  4. 2014.09.01 일석이조
  5. 2014.05.04 pretty woman
  6. 2014.04.23 지워지지 않는 기억
  7. 2014.03.15 휴식
  8. 2014.02.26 아들에게 보낸 편지
  9. 2014.02.08 삼합
  10. 2013.11.20 식구 2

piano

2016. 5. 3. 00:27 from story of my life
오늘부터, 아니 어제구나, 드디어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30년동안 해보고 싶었던.
화음을 넣어보니, 참 신기했다.
현악의 화음과는 또다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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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램

2015. 9. 30. 23:42 from story of my life

오늘 아버지와 함께 대전에 다녀왔다. 두 달 전 대전에 마지막 남아있던 땅을 파는 계약을 하게 되었고 , 오늘 은행에서 매수인과 만나 잔금을 받고 하는 일을 하다보니, 이제 정말 대전에 올 일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밭이라는 이름과는 상반되게도, 대전은 크지 않은 도시다.
어릴 적 시내에 다니던 버스 모든 노선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의 참 적당한 크기의 도시.
지금은 유성 등이 포함되어 상당히 넓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한 곳에서 다른 어느 곳으로 가려면 대부분 20분 안쪽이면 족하다.
오늘도 은행에서 일을 마치고 내비를 검색해보니 시내 성심당까지 13분으로 나와, 내심 반가와 하지 않는 아버지의 눈치를 못 느낀 체 하고 - 아버지는 예나 지금이나 불필요한 것 같은 데 돈쓰는 걸 싫어하신다 - 빵집으로 달렸다.
직원이 활기찬 소리로 광고하며 잘라주는 몇가지 빵쪼가리를 시식하며 튀심소보로, 부추판타롱, 크로켓, 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팥도넛 등을 봉지에 담는데 기분이 참 좋았다.

사실 이집 빵은 나도 나지만 엄마가 아주 잘 드신다.
나 어릴 때 엄마가 대전의 '태극당', '오복당', '거북당' 등 몇몇 빵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빵, 재료 들을 참 많이 사주셨는데..
헌데 이제는 엄마가 다리가 안 좋아 거의 움직이질 못한다. 더 안 좋은 건 움직일 의지를 안 보인다. 저 상태로 지내며 영영 못 일어날 가능성도 많아 보인다.
휴..
나 어릴 때처럼 엄마가 여기저기 돌아 다니며 좋아하는 것 많이 사주면 좋겠다.
돈은 내가 얼마든지 드릴테니.
한달에 딱 한번이라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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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끼

2014. 11. 6. 17:14 from story of my life

대학교 입학한 지 채 두달이 되지 않아서, 같은 과 한학년 여자선배가 상의할 게 있다며 나를 찾았다.

처음 조심스럽게 꺼낸 얘기는 여러가지 사회과학서를 읽고 스터디 하며 지식과 경험을 쌓아나가자는 거였는데, 쉽게 말하면 지하서클 가입 이었다.

서울에서 재수를 하며 먼저 대학을 다니고 있는 친구들과 가끔씩 만나 술한잔 하는 자리에서 시국, 그리고 데모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던 녀석들의 생각을 접했던 나는, 대학 들어가면 사회과학 공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 선배의 제의를 한번에 받아들였다.

선배, 영어과 여자애, 스페인어과 남자애, 철학과 남자애, 나 이렇게 다섯이 공부를 해나가기 시작했고, 머리 속에 주관이나 당위성이 채 영글기도 전에 시위가 있는 날이면 당연한 것처럼 스크럼을 짜고 최루탄에 맞서 돌과 화염병을 던져대곤 했다.

 

새로 만들어진 서클이다 보니 명칭이 필요했는데, 내가 입학 후 읽어 본 몇권의 책들 중 인상에 많이 남았던 김산의 '아리랑'이 생각나 제안했더니, 턱 하고 받아들여졌다. 게다가 당시에 '아리랑'이란 담배를 솔찮게들 피우고 다닌 것도 서클명 확정에 일조 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한 책들은 '해방전후사의 인식, 민중과 지식인, 체게바라 전기' 등등 이었다.

일주일에 두번 모여 읽은 내용들을 논의하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사실 불어 공부 하는 것보다 재미 없고 무료하기만 했다.

하지만 전두환으로 이어진 군부독재의 고리를 끊고 민주화를 앞당겨야 한다는 생각은 입학 이전부터 내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었고, 시위를 통해 당시 정부의 부당함을 앞장서 사회에 알리는 것이 바로 대학생들의 몫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일부 기성세대들의 욕을 먹으면서도 지하서클에서 공부를 하고 시위에 참가하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었다.

사실 그당시 누가 내게 반정부의 논리를 체계적으로 말해보라 하면 또박또박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긴 하다.

 

근데 하루는 도서관 지하 모임방에서 토의를 하는 와중에 '사실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인식해야 하고, 허구를 미화해서는 안된다'는 주제가 불거져 나왔는데, 그 예로 '달에 토끼가 살고 있다'는 생각 같은 것은 이제 버려야 한다고 선배가 말했다.

나는 바로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물론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우리 선조들이 그리고 당장 우리들도 보름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고 또 힘들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 그 안에서 방아를 찧고 있는 옥토끼의 모습에서 위안을 얻는 건 사실 인식의 정확성으로 논의할 문제가 아니다, 그런 서정적이고 대대로 내려온 감성적인 부분은 오히려 어떤 상황에서는 사실의 제대로 된 인식보다도 더 크고 긍정적인 영향을 인간한테 가져다 주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아주 강하게.

그날은 우리 서클 조직 윗선의 선배 한명도 와 있었는데, 내 말을 듣더니 한동안 대답을 못하다가 '그래, 솔직히 말해서 네 말에 대해 답변을 하기가 어렵다. 네 말이 맞을 수도 있다' 해서 분위기가 좀 어색해지기까지 했다.

 

옥토끼는 당연히 허구이긴 하다. 이미 50년 전에 인간은 달에 발을 디디기도 했고. 하지만 인간은 자신들을 달에 실어나른 첨단 과학 우주선의 이름에 아이러니 하게도 활과 음악을 관장하는 '아폴로'라는 신화 속의 이름을 붙였다.

우리는 사실에서는 확신을 가질 수 있지만, 허구(픽션)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 소설작품이나 음악 그리고 여타 여러 감성적인 것들에서 위안과 심리적인 기쁨을 얻게 되며, 이 두 가지는우리들 삶에 늘 공존해 오며 인간을 괴롭히거나 풍요롭게 만들어 왔다.

물론 현실을 중요시하지 않고 허황된 꿈을 꾸기만 하면 안되겠지만,

반대로 이론과 사실만 중요시하고 그 이외의 것들을 무시한는 삶또한 황폐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두가지의 적절한 조화를 어떻게 하면 잘 받아들이며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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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석이조

2014. 9. 1. 20:57 from story of my life

요즘 일요일엔 거의 매주 대모산엘 오른다.
사실 대모산은 해발 삼백미터도 안 되는 낮은 산으로 큰산을 선호하는 내겐 언덕 오르는 수준이라 자주 가진 않았었다.
근데 한달전쯤 가벼운 마음으로 오른 적이 있었는데 하산길에 보니 할머니가 쪼그리고 앉아 상치며 깻잎, 나물 등을 팔고 계셨고 한구석에는 내가 좋아하는 호박잎도 나와 있었다.
할머니와 몇마디 얘기를 나눈 후 검정 비닐봉투에 넣어주시는 호박잎 이천원어치를 사왔다.
지지난 일요일 개포동 떡볶이 생각도 나고 머리도 식히고 싶어 미사후 늦은 점심을 먹고 햇볓이 사그라드는 네시쯤 대모산으로 향했다.
저번보다 이른 시간이어선지 올라가는 길에 할머니가 안보였다.
하지만 내려올 때 보니 할머니가 나와계시길래 반가운 마음에 가서 아는척을 했더니 이번에는 깻잎이 맛있다며 권하셨다. 사실 나나 집사람 작은아이가 깻잎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좀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더니 할머니가 호박잎에 깻잎 한웅큼을 보태주시며 이천원만 내라 하셨다. ㅋ
근데 지난주 목요일 고기 몇점하고 저녁을 먹는데 작은아이가 안먹던 깻잎을 연이어 싸먹으며 싱싱하고 맛있다고 하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어제 일요일에도 낮은 산인 대모산을 올랐고 내려오는 길에 이번엔 깻잎과 호박잎 두가지다 상당량을 샀다. 크 완전 아들바보.
할머니께 물어보니 다 근처 밭에서 지어 뜯어오는 거라 하셨다. 그러니 싱싱할 수밖에.
한데 할아버지가 이제 그만 다니라고 해서 못나올 지도 모른다 하셨다.
명절 잘보내시라고 꾸벅 인사하고 내려오면서 그 할머니가 계속 나오시면 좋겠다고 맘속으로 생각했다.
큰산이든 작은산이든 산은 사람에게 참 많은 좋은 것들을 준다.
맑은 공기. 나뭇잎들을 스쳐온 바람의 시원함. 하늘색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초록빛. 계곡물의 알싸한 시원함. 내려다보는 즐거움. 기분좋은 땀냄새. 생각할 수 있는 여유 등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아들이 좋아하는 야채 까지.
일석이조가 아니라 그 고마움을 셀 수가 없다.
산이 없다면 정신과 치료를 받는 수가 몇곱절 많지 않을까?
꼭 깻잎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시간 날 때마다 산에 올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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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tty woman

2014. 5. 4. 08:07 from story of my life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보니 동생들은 물론 조카들도 자주 보게된다.
엊그제도 막내동생이 일곱살 딸 연우를 데리고 왔다.
어릴적부터 하는 짓이 제 오빠랑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귀여워, 이름에서 'ㄴ' 받침만 빼면 되는 '여우'같다는 얘기도 많이 들은 아가씨.

병실이 심심했던지 아이스크림이 먹고싶다 조르기에 점수 좀 따고싶어 고사리 손 붙잡고 일층 편의점으로 내려가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욘석 왈 '아, 큰큰아빠랑 처음으로 아이스크림 사러 가니까 정말 좋다!' 하였다. 아오, 이 아가씨 귀염모드 발동이네. 이윽고 내가 '어, 연우야 정말?' 했더니 '응? 큰큰아빠는 그럼 내가 큰큰아빠 좋아하는 게 싫어? 내가 좋아하는게 싫으냐구'하며 또박또박 한 술 더 뜬다. 점입가경.
조카가 고른 천원짜리 돼지바 덕에 조카딸이랑 세계단 이상을 한방에 가까워졌다. 볼에 뽀뽀도 받고.
귀여운 아가씨. 자꾸자꾸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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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내가 거슬러올라가 볼 수 있는 가장 오래전의 기억은 바닷가에서의 일이다.

가족들과 함께 간 북평(지금은 동해시)항 가까이의 해수욕장에서였는데,

엄마가 물로 한참을 들어가더니 '신현아!' 하고 부른 뒤 바닷물 속으로 쑥하고 자취를 감췄다.

물론 엄마는 장난삼아 그리 했겠지만, 당시 세살쯤 되었던 나는 엄마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공포로 다가왔다.

몇번을 물속으로 사라졌는데,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엄마가 없어졌네, 어떡하지?'하는 생각만 계속 하고 있었다.

 

50여년을 가까이 산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상당히 많지만

그중 으뜸은 큰애와의 첫만남이다.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갓난아이의 눈망울을 바라보며

'얘만큼은 구김살 없이 자라도록 해줘야지'하고 생각을 했다.

 

지난 월요일, 처음으로 내한하는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공연을 다녀왔다.

이 오케스트라의 경우 어릴적 엄마 손에 이끌려 이대 강당까지 와서 공연을 본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와 더불어 스위스 오케스트라의 양대산맥이란 평을 받고 있다.

레퍼터리는 베토벤 프로메테우스 서곡과 바이올린 협주곡, 그리고 브람스 교향곡 4번.

이번 공연에 꼭 가고싶었던 이유는 모험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 이름있는 지휘자들의 인정과 찬사를 받은 '기돈 크레머'의 베토벤 바이올린 콘체르토 연주를 들어보고 싶었기 때문.

 

팀파니의 다섯번째 울림을 관악기들이 받아 이어나가는 1악장의 아련한 멜로디가 시작되었다.

25분이 넘는 이 1악장은 원래 3분 이상이 지나고 나서야 협연자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

그런데 1악장 초반 대목부터 기돈 크레머는 파격을 선택했다.

다름아닌 제1바이올린군이 이끌어가게 되있는 부분에서 함께 활을 긋기 시작한 것.

뭐 이정도야 그럴 수도 있으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악장 후반부의 카덴짜 솔로가 시작되면서, 나는 내가 곡을 헷갈리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아니고, 협연자가 다른곡을 연주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멜로디를 약간 변형한 정도가 아닌 완전히 다른곡이었으며, 피날레 부분만 원래의 악보로 복귀하며 마무리 되었다.

3악장 역시 짧게나마 이같은 변형이 진행되었다.

 

나로서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새로운 시도라는 느낌보다는 불편하고 또 불안한 마음이 연주 내내 자리잡고 있었다.

'아니, 베토벤을 이렇게 바꿔도 되는 건가?' 하는.

 

기돈 크레머는 연주 스타일이 여느 바이올리니스트들과 비교시,

활을 누르는 것이 아닌 활로 현을 당기는 듯한 주법이 특이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음이 굵직함보다는 날카롭고 그윽하기보다는 현란함을 발산하고 있었다.

이것이 그가 지닌 특성이자 카라얀을 비롯한 음악가들의 인정을 받은 대목일 것이다.

따라서 전문가가 아닌 나는 그의 연주 자체에 대해서 가타부타 평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 주자가 그날 협연한 쮜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성향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오케스트라의 경우 나이든 단원들을 많이 보유하여 모범생같은 음색을 내고 있었는데,

전통적이면서도 반듯한 향을 풍기는 터라,

기돈 크레머같은 기교가 강하고 날렵한 연주자와는 어울리지 않는 매치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뮤지컬 맘마미아를 보고 나오면서 '아바 노래들을 퇴색시켜버린 것같아 실망이네' 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어 인터미션에 머리 좀 식히려고 바깥으로 나오는데, 아는 얼굴의 여자 한분이 얼굴과 말투에 불편한 기색을 잔뜩 담은 채 빠른 걸음으로 콘서트홀 중앙 유리문을 나오고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작년 가을 클라라 주미강 협연으로 진행된 같은 곡을 지휘하는 동생 정명훈의 공연을 언니 정명화와 함께 보러와 인터미션때 인사도 나누고 사진도 웃으면서 함께 찍어 주었던 그녀.

그녀는 런던심포니와의 협연 음반으로 내가 모든 바이올린협주곡 중에 베토벤곡을 가장 좋아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반가운 마음에 또 오늘 연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어 뛰어가 '선생님, 안녕하세요?'하였는데,

순간 나를 또렷이 보더니 - 사실 난 그녀를 잘 알지만, 그녀는 나를 전혀 모른다 - '안녕하지 못해요!' 하면서 또각또각 주차장쪽으로 사라졌다.

연주가 마음에 안 든 정도가 아니고, 같은 곡을 수행한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모멸감을 느낀 것 같다는 추측까지 들었다.

 

2부가 시작되 스위스 호반의 물결같은 브람스 1악장이 넘실거리며 흘러나오는 데도,

1부의 껄끄러운 기억이 지워지지 않아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잊어버려야지 하고 새로운 곡에 귀기울이려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1868년에 브람스곡 연주를 시작으로 창단된 이 오케스트라는, 초창기에 브람스가 지휘를 직접 맡아 더 유명해졌다 한다.

78세의 노장 데이빗 짐먼의 지휘봉 아래 톤할레 오케스트라는 브람스를 단아하고 깔끔하게 소화해냈다.

이들의 브람스 연주를 맛으로 표현하자면, 계피를 많이 첨가한 여름날 수정과 같다고나 할까?

150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지닌 오케스트라에서만 가능한 정제됨과 수려함이 흠뻑 베어있었다.

 

열시반이경임에도 완연한 봄기운으로 차유리를 내리고 집으로 달려오면서도, 줄곧 기돈 크레머의 연주에 대해 곱씹어보게 되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이틀이 지난 지금도 자꾸만 협주곡을 들을 때의 껄끄러웠던 감정이 자꾸만 되살아난다.

 

지난 기억에 얽매여 있으면 안되는데..

떨쳐버려야지 평온해지고 새로운 것들을 편히 받아들일 수 있는데..

 

지우고 싶은, 아니 지워야 하는 기억을 지우고 살 수 있을까?

기억이 지워지면 맘이 가벼워질까?

아니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굳이 지우려 해야하는 걸까?

 

살아가는데 있어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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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휴식

2014. 3. 15. 20:22 from story of my life



일주일에 한번씩 주말이 온다.

잘 쉬는 게 무얼까?

공기맑은 산이나 물을 찾아가기.
마음맞는 사람 만나 얘기를 나누거나 또는 아무 얘기 없이 보내기.
좋은 영화나 공연 보기.
아님 아무생각 없이 빨래처럼 널부러져 있기.

패키지 여행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켜줄 수 없듯이, 사람에 따라, 또 때에 따라 필요한 휴식이 다를 것이다.

모처럼 특별한 일정이 없는 주말을 맞아,
첫날인 오늘 우선 보고싶었던 영화 한편을 보고 집까지 걸어오는데, 바람, 햇살이 겨울기운을 완연히 벗어나 있음을 느끼고 기분이 좋아졌다.
김치찌게, 짠지, 김 요렇게 세가지 찬이지만 오늘 점심은 유난히 입에 달라붙어 포만감이 올 때까지 수저를 놓지 않았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새로 산 하이든, 비발디의 경쾌한 음악을 들으며 책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물론 좀 지나 살짝살짝 졸아주기는 했다. ^^

CD 두장이 다 돌아가자, 오전의 바람과 햇살이 생각나 운동화 신고 양재천까지 한시간정도 걸어가 보았다.
봄맞이 채비를 하고 있는 양재천 산책로는 나무도 물풀도 옅은 갈색인데다 물도 많지 않아 스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근처의 쫄깃 떡볶이 한접시 비우고,
돌아오는 길에 학여울의 GAP 행사장에 들러 맘에 드는 바지와 티 몇장씩을 저렴한 가격에 골랐다.
집에 돌아오니 일곱시.

이렇게 하루가 저무네.

나에겐, 이렇듯 하고싶은 것을 하며 보내는 게 휴식인 것같다.

글을 쓰고있는 지금은 작은아이가 내옆에 나란히 누워 웹툰을 들여다 보고 있다.

사실 몇가지 일들로 인해 머리저림이 아직도 남아있지만, 좋은 휴식을 통해 차차 평온함을 얻게 되겠지.

내일은 무엇을 하며 보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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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필요하다 싶어 큰아이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민규야.
 
아빠가 본과를 시작하는 시기에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쓴다.
 
참고로 이건 연대 의대 나와서 의사생활 잘 하고 계신 분께 들은 내용을 토대로 해주는 얘기야.
 
의대 공부 전체가 어렵지만,
특히 본과 1,2년 그러니까 올해랑 내년이 정말로 힘든 시기라 하더라.
그분 표현으론 공부 시키는게 꼭 '토끼 몰이'하는 정도로 긴박하게 학생들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하더라구.
 
바꿔 말하자면 사람의 능력이 100 정도인데, 200에 해당하는 수준을 요구한다는 거지.
그런데 학생들 중에는 100을 달성하는 애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애들은 150을 나타내기도 하고,

또 어떤 애들은 80정도밖에 못나오는 경우도 있다는 거야.
이중 특히 80 또는 그 이하의 결과가 나올 경우, 무지 힘들어하고 또 유급을 당하기도 하면서 좌절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
이 2년간을 잘 극복하면 그 뒤 본과 3,4학년은 훨씬 수월해진대.
 
아빠가 도와줄 부분이 있다면 살이라도 깍아 줄 수 있는데, 그럴 수도 없고.
 
대신 아빠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빠는 항상 민규 편이라는 거야.
그래서 언제든 힘든 걸 나누려 하고 또 너의 지지대가 되어 줄거란 거야.
물론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더없이 신나는 일이겠지. ^^
 
비온 뒤에 땅이 더 단단해지고, 무지개를 만날 수 있듯이
민규도 2년의 과정을 잘 극복해내고 더 성장할 수 있을 거야.
 
의대 들어 간 것만으로도 아빠는 네가 한없이 대견하고
스트레스 받는 일 있을 때 민규 생각만 하면 마구 기분이 좋아져.
 
아빠는 지금까지 잘 커 준 거 고맙게 생각하고
앞으로도 민규 잘 되도록 늘 기도할거야.
 
다소 부담 되는 내용의 편지이겠지만 너에게 꼭 필요한 말들일 것 같아서 펜을 들었는데,
표현이 잘 되었는지 모르겠다.
 
떨어져 있으니 더욱 건강 조심하고,
재밌고 좋은 경험들 되도록 많이 하면서 대학생활 보내거라.
 
훗날 돌이켜보면 가장 열심히 생활했던 지금이 보석처럼 빛는 시기가 될거야.
 
 
                                                                                  사랑을 담아,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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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삼합

2014. 2. 8. 12:46 from story of my life


삭힌 홍어, 삶은 돼지고기, 묵은지.
세가지가 어울려 입안에 들어가면 혀와 뇌가 자극을 받아 짜릿한 행복감을 느낀다는 삼합. 여기에 막걸리까지 추가하여 사람들은 홍탁이란 이름까지 붙여놓았다.

나에겐 위 세 음식의 향미에 비교될 수 없는 완벽한 삼합이 있는데,

바로 '음악, 커피, 책' 이다.
세가지를 함께 경험할 때 느낄수 있는 조화로움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다.
무한의 행복감.
가끔씩 책이 음악을 방해하거나 또 음악이 책읽는데 훼방을 놓기도 하지만, 그거야 뭐 대수랴.
거기에다 집에 혼자 남아 아무 방해받지 않고 이 세가지를 누릴 수 있는 오늘같은 환경은 막걸리같은 훌륭한 촉매제 역할을 해준다.

작은 것에서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어 감사하다.

삼합 얘기를 하니 시큼새콤한 홍어무침이 먹고 싶어지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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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식구

2013. 11. 20. 13:42 from story of my life


미니가 죽었다.

갓난애로 수원 살던 우리집에 들어온 게 2002년 여름이니, 11년반을 살고 죽은 것이다.
처음에 대소변도 못가리는 신생아를 두아들 녀석은 마냥 신기해했고 저희 엄마아빠와보다도 더 친밀한 교감을 나누며 당연스레 식구로 받아들여 키워왔다.

일주일 전부터 숨소리와 거동이 심하게 안좋아져 난 걱정을 하는 정도였고 민성이는 시간 날때마다 미음을 먹이고 쓰다듬어 주며 눈물을 보이곤 했다.

우리가족, 특히 아이들과 평생을 같이해온 미니의 죽음.

소식을 듣고 집에 전화를 하니 집사람은 소리내 울고 있었다.
미니를 들여올 때 반대했던 집사람.
먹이고 키우고 뒷치닥거리를 하며 남다른 정이 들었고, 두번째 망치는 본인이 자청해 들여와 두마리 개를 한꺼번에 키워 왔으니 그 정이 오죽할까 싶다.

아이들은 어떨까?
맏이 특유의 조용함과 차분함을 소유한 민규도, 두 강아지에겐 남다른 애착과 활발함을 보였다. 밥주고 똥오줌 치우고 품에 안고 자고, 집에 오면 이름을 부르고 대화를 나누고.
두 강아지에 대한 사랑은 두아이 모두 같았다. 아이들은 어릴적부터 동생같은 두마리를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슬퍼하며 많이 힘들어하겠지.

근데 소식을 들은 나도 아이들이 받을 충격을 걱정하기에 앞서 미니가 죽었다는 사실자체에 눈물이 자꾸만 난다.

처음 만나 손등의 우유를 핥던 촉감부터 연수원 푸른 잔디밭을 바람처럼 누비고 뛰어다니던 모습이 선하다.

6년전 열린 현관문틈으로 밖으로 나가 집안을 한번 뒤집어놓았는데, 다섯시간만에 분당에 가서 찾아온 기억도 있다.

미니가 좋은 곳으로 가면 좋겠다.
가족들도 덜 슬퍼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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