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

2013. 10. 30. 09:14 from story of my life

 

예전에 10월 24일은 공휴일이었다 한다.

UN Day.

그래서 부모님은 49년전 10월 24일에 결혼을 하셨다.

결혼식 흑백사진을 보면 정말정말 예쁜 엄마와 멋지게 생긴 아버지, 그리고 주변으론 애띤 얼굴의 삼촌, 사촌들이 개구지게 포진하고 있다.

금산 태생에 고등학교 영어선생님인 신랑, 대구의 명문대를 졸업한 약사 신부의 혼사다 보니 주변사람들의 축하와 부러움을 동시에 받았을 것같다.

이듬해 10월30일에 맞이인 내가 태어났다.

 

기념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초등 5학년 스승의날.

그날 점심시간에 반 친구들 모두는 천정에 풍선을 달고, 꽃을 차리고, 축하문구를 붙이는 등 분주하게 열심히 교실을 장식했다.

5교시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시자 우리는 준비했던 '스승의 날' 노래를 불렀는데,

선생님은 묵묵히 서서 듣고 계시더니, 노래가 끝나자 자리로 가셔서 책상위에 두손을 모아 올려놓고는 한참을 고개를 숙인채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분위기는 숙연해지고 나는 우리가 뭘 잘못한 건가 하는 걱정이 들기까지 했다.

 

잠시후 선생님은 '내가 여러분에게 이런 축하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다.

에이, 우리 모두 선생님 진짜 좋아하는데..

 

또 기억에 남는 기념일은 초등 일학년 생일.

같은 반에 나와 생일이 이틀 차이 나는 이송훈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이친구 엄마가 반 전체에 빵과 음료수를 돌리셨다.

내 생일날 친구들 몇몇이 '야, 길신현! 넌 생일인데 뭐 없냐?'하고 핀잔을 주는 바람에 대답도 못하고 민망해 한 기억이 난다.

 

오늘 마흔 여덟번째 생일.

사실 생일은 내가 축하받을 날이긴 하지만,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건 부모님이기에, 대학시절 어느 생일 난 술에 젖은 목소리로 대전에 전화를 해 두분께 '잘 낳아주셔서 고맙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기억에 그날 아버지가 나를 대견해하신 것 같다.

 

출근하면서 친구, 동료들로부터 축하메시지를 받았다.

또 방금은 유치원 다니는 7살배기 귀염둥이 조카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큰아빠 생일 축하해요'하며 동생 폰으로 전화를 해왔다.

난생 처음 조카한테 축하를 받으니, 높아진 가을하늘만큼 마음이 맑아졌다.

다섯살 터울 동생녀석, 아직도 철이 안든줄 알았더니 나보다 낫네.

 

기념일을 정해 서로 따뜻한 말을 주고 받는 일은, 세상을 사는 우리들의 마음을 봄날의 꽃밭처럼 화사하게 만들어 준다.

 

다음주 화요일은 엄마의 생일.

엄마는 올해 결혼기념일과 생일 모두를 병원에서 지내게 되셨다.

 

그래서 나는 오늘 행복하면서도 불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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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