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of my life'에 해당되는 글 47건

  1. 2013.10.30 기념일 1
  2. 2013.10.26 인터미션 1
  3. 2013.10.20 no more
  4. 2013.10.09 반표 4
  5. 2013.07.04 19년 1
  6. 2013.05.13 불면
  7. 2013.05.05 설레임
  8. 2013.04.0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9. 2013.03.12 이동 3
  10. 2013.03.02 태극기 1

기념일

2013. 10. 30. 09:14 from story of my life

 

예전에 10월 24일은 공휴일이었다 한다.

UN Day.

그래서 부모님은 49년전 10월 24일에 결혼을 하셨다.

결혼식 흑백사진을 보면 정말정말 예쁜 엄마와 멋지게 생긴 아버지, 그리고 주변으론 애띤 얼굴의 삼촌, 사촌들이 개구지게 포진하고 있다.

금산 태생에 고등학교 영어선생님인 신랑, 대구의 명문대를 졸업한 약사 신부의 혼사다 보니 주변사람들의 축하와 부러움을 동시에 받았을 것같다.

이듬해 10월30일에 맞이인 내가 태어났다.

 

기념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초등 5학년 스승의날.

그날 점심시간에 반 친구들 모두는 천정에 풍선을 달고, 꽃을 차리고, 축하문구를 붙이는 등 분주하게 열심히 교실을 장식했다.

5교시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시자 우리는 준비했던 '스승의 날' 노래를 불렀는데,

선생님은 묵묵히 서서 듣고 계시더니, 노래가 끝나자 자리로 가셔서 책상위에 두손을 모아 올려놓고는 한참을 고개를 숙인채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분위기는 숙연해지고 나는 우리가 뭘 잘못한 건가 하는 걱정이 들기까지 했다.

 

잠시후 선생님은 '내가 여러분에게 이런 축하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다.

에이, 우리 모두 선생님 진짜 좋아하는데..

 

또 기억에 남는 기념일은 초등 일학년 생일.

같은 반에 나와 생일이 이틀 차이 나는 이송훈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이친구 엄마가 반 전체에 빵과 음료수를 돌리셨다.

내 생일날 친구들 몇몇이 '야, 길신현! 넌 생일인데 뭐 없냐?'하고 핀잔을 주는 바람에 대답도 못하고 민망해 한 기억이 난다.

 

오늘 마흔 여덟번째 생일.

사실 생일은 내가 축하받을 날이긴 하지만,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건 부모님이기에, 대학시절 어느 생일 난 술에 젖은 목소리로 대전에 전화를 해 두분께 '잘 낳아주셔서 고맙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기억에 그날 아버지가 나를 대견해하신 것 같다.

 

출근하면서 친구, 동료들로부터 축하메시지를 받았다.

또 방금은 유치원 다니는 7살배기 귀염둥이 조카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큰아빠 생일 축하해요'하며 동생 폰으로 전화를 해왔다.

난생 처음 조카한테 축하를 받으니, 높아진 가을하늘만큼 마음이 맑아졌다.

다섯살 터울 동생녀석, 아직도 철이 안든줄 알았더니 나보다 낫네.

 

기념일을 정해 서로 따뜻한 말을 주고 받는 일은, 세상을 사는 우리들의 마음을 봄날의 꽃밭처럼 화사하게 만들어 준다.

 

다음주 화요일은 엄마의 생일.

엄마는 올해 결혼기념일과 생일 모두를 병원에서 지내게 되셨다.

 

그래서 나는 오늘 행복하면서도 불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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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미션

2013. 10. 26. 17:21 from story of my life


최근 혼자 공연을 오는 일이 자주 생기게 된다.

오늘은 유니버셜발레단의 'This is Modern'
인터미션에 로비 의자에 앉아 있노라면 공연의 분위기에 새로운 묘미가 더해진다.
오늘은 여학생들이 단체로 많이 온 편.
발레리노의 매력에 끌려 왔나 보다.
난 천상 남자이다 보니 발레리나가 더 좋은데. ^^
저 나이에 이런 것들을 접하는 일은 참 소중하리라.

어릴 때 엄마 손에 끌려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인형' 등 몇차례 가보긴 했지만, 사실 그다지 관심이 없다가 바리시니코프의 '백야'를 보고는 발레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게 되었다.

그뒤 나도 아이손을 잡고 '호두까기 인형'을 보러간 적이 있는데, 내 어릴적 상황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발레는 '아름답다'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같다. 말하고 싶은 것들을 오로지 몸으로만 표현해야 하는 그들의 내면세계는 어떨까?
이들을 표현하자면, 한쪽발을 살짝 내밀고 턱끝과 시선을 45도 아래로 향하며 '여기 나 있어!'하는 모습이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이슬만 먹고 살 것 같은. ㅎ

오늘은 이들 동작중 나도 가능한 게 있을까 하며 집중을 해봤는데, 물론 전무한 것같다.

공연이 끝나고 밖에 나가면
지난번 '오네긴'을 본 뒤처럼
사뿐싸뿐 하며 다니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될 것같다.

몸무게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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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more

2013. 10. 20. 18:18 from story of my life


엄마가 아프다.
그래서 나도 아프고 내 동생들도 아프다.
모두 더이상 아프지 않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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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표

2013. 10. 9. 11:58 from story of my life

오랜만에 혼자하는 기차여행이다.
행선지는 마산.
근데 마산역은 나에겐 어릴적 일로 또렷한 기억이 남아있는 특별한(?) 곳이다.

입사후 업무차 갈때면 늘 부산을 들렀다 가고 올땐 비행기로 올라와서 마산역을 거칠 필요가 없었는데, 오늘은 새벽같이 눈이 떠 새로이 부서를 옮긴 후로는 못가봤던 마산점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덜컥 열차를 예매했다.

35년전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 우리 3남매는 엄마와 함께 대구 외가에 가 며칠 있었는데(막내는 집에 남아있었던 것같다), 두려움이란 단어를 모르는 우리 엄마는 3남매에다가 외사촌 한명의 손까지 붙들고 당시 마산에 있는 고모네를 습격한다.
내가 두려움이 없다는 표현을 쓴 것은, 여러명의 인원을 몰고 시누이집을 가는 것때문만은 아니다. 더 큰 이유는 그때 고모가 세살터울로 둘째를 베 만삭인 몸이었기 때문.

물론 고모는 급습을 받고도 생글웃음을 지어 보이며 다섯손님의 밥과 잠자리를 제공해주었고, 충청도로 장가를 왔지만 충청도 양반보다 훨씬 예의바른 - 그래서 난 이 고모부를 어릴적 삼촌들보다 더 좋아했다 - 고모부는 우리를 데리고 마산의 돗섬유원지, 성안백화점 등을 구경시켜 주었다. 고모는 따라오지 않았다.
올케가 얼마나 얄미웠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고모한테 미안한 마음이 자꾸 들었다.
원래 두밤 자고 가자는 걸, 조르고 졸라 이튿날 대전집으로 출발했다.

사건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마산역서 엄마가 대전행 차표를 끊는데, 어른 한명에 애들 네명인데 그냥 어른표 세장을 끊었다. 나는 이해가 안갔다. 그당시 이름으로 '반표'라는 게 있었는데, 어른운임의 반값이어서 그상황에서는 어른 한장, 반표 네장 이렇게 사면 어른 세장 값에 다섯자리를 받아 갈 수 있는 것.
물론 크기는 반쪽은 아니지만, 색깔이 다르고 가격이 반값이어서 '반표'였다.
혼자서 대구를 자주 다닌 나는 '반표'를 알았고 약국을 지키던 엄마는 몰랐던 것.

당연히 나는 표를 바꾸자고 했는데, 엄마는 자리가 많을 거라며 그냥 플랫폼으로 향했다.
왠 걸, 기차에 오르니 자리가 여의치 않았고 세자리에 다섯이 붙어가야하는 격지 않아도 될 불편함에 얼마있다가 나는 치밀어오르는 부화를 이기지 못해 '그러게 왜 내 말을 안듣고 그랬냐고' 따지고 들었다. 한번은 참았다가 두번째 공격을 받자 엄마는 바로 내 따귀를 제대로 한대 올렸다.
지금 생각해도 엄마가 너무 밉다.
김천쯤부터 여유가 생겨 각자 한자리씩 앉아오긴 했지만, 마산역을 한시간 앞둔 이 기차간에서 문득 당시의 기억이 또렷이 떠오르는 걸 보니 그때 맞은 얼얼함이 아직도 마음에 단단히 박혀있나 보다.

한여름 태풍같은 우리 엄마.
하긴 그런 힘으로 사남매를 키워내기도 하셨다.
하지만 그때문에 아직도 아버지는 많이 힘들어 하신다.
그래서 우린 아버지며 엄마며 더욱 보듬어드려야 한다.

오늘 마산역 찍으며 어릴적 '반표'의 기억이 지워지면 좋겠다.

지금도 반표가 있겠지?
참, 동반석이란 게 있구나.

이젠 인터넷 예매로 종이 티켓을 구경하기도 힘들어졌다.
기차 종류별로 파란색(새마을호), 살색(무궁화), 연두색(통일), 보라색(비둘기) 등으로 구분되던 껌 삼분의 이 크기의 도톰하고 질감 좋은 종이표가 가끔은 그립다.

엄마와의 여행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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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2013. 7. 4. 17:31 from story of my life

신세계라는 회사에 첫발을 디딘지 19년째 되는 날이다.

 

94년 7월4일.

미국 독립기념일이기도 한 이 날 회사에서 처음으로 신입사원으로 선발해 본 장교 출신 동료들 19명과 함께 대연각빌딩에 모여 버스를 타고 연수원으로 출발했다.

두주간의 짜임새 있게 구성된 입문교육 도중에 김일성 사망이라는 특보가 있었고

동료들 20명 모두는 무난히 신입사원 교육을 마친 후 입사 3주차 월요일부터 배치된 부서로 출근했다.

 

당시 상계동이 집이었던 나는 이에 대한 배려로 지금은 이마트로 바뀐 신세계 미아점이 첫 발령지로 정해졌다.

미아점 주방용품 매장 SM(Sales Manager)의 경험은 그 이후 내 회사생활에 아주 강한 백신과 같은 역할을 해준다.

이 회사가 이런 곳이었나, 그만두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하루에 몇번씩 들었다.

여름휴가가 있긴 했는데, 내내 회사일 걱정으로 차라리 출근하는게 맘편하겠다 하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SM 경험 일년반 뒤 대연각빌딩 18층 기획팀으로 발령이 났다.

매장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기쁜 일이었지만,

남아 있을 ASM과 코너장 및 동생들이 계속 힘들게 일할 거라는 생각은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기획팀에 3년간 있으면서 기억나는 일들은,

중국 출점 관련 대표 연설문을 작성하며 며칠밤을 샌 것, 스포츠단 창단 기획안, 음악잡지 창간 기획안 등이다.

 

그뒤 다시 3년간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상품권팀에 몸담으면서

상품권 마케팅 업무를 배우게 되었다.

3만원권 500장이 사라져 남대문경찰서에 호출 당해보기도 했다.

 

2002년 3월 내가 일하고 싶었던 연수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창밖의 나무와 하늘을 풍경 삼아 강의장과 사무실을 오가며 아마도 가장 열심히 실무에 임했던 7년이었다.

탁구, 테니스, 축구, 산보 등을 할 수 있는 기쁨이 있었던 반면,

불면증으로 9개월간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기도 했던 희비의 교차시기.

 

부장으로 승진하면서 2009년 3월 인천점 생활팀장으로 가게 되었다.

또다시 집에서 60킬로미터 거리를 왕복해야 해서 처음에 불만이 많았지만

팀원들과의 잘맞는 호흡과 가족같은 분위기로 직장생활 19년중 가장 활기차고 행복한 시기였던 것같다.

지하철로 왕복 세시간 20분 걸리는 먼 거리였지만 한번도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다.

특히 리뉴얼을 마치고 브랜드협력사원들 아침조회 자리에서 한 직영사원들(나 포함)의 공연은 영원히 잊지 못할 기억이다.

 

공연 당일 오후 본사 고객서비스팀으로 발령날 거라는 소식을 접한다.

9년만에 본사로 들어와 2년2개월간 지낸 고객서비스팀은 한마디로 말하면 '활력 itself!'

 

지난 3월 문화팀으로 와 이제 일을 마구 배우고 있는 중이다.

아카데미(문화센터)와 문화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이다보니

나로서는 정말 만족할만 한 보직을 회사에서 준 거다.

내가 이 회사에 들어오면서 문화팀장을 하게될 줄이야 !

잘 해야 할텐데..

팀장으로 와 일을 하다보니 세부적인 것들의 체험이 부재한 상태에서 의사결정하고 기획을 해야한다는 부분이 가장 아쉽고 마음에 걸린다.

현장에서 힘에 겨워하는 매니저들의 모습이 안스럽기만 하고, 하루빨리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팀원들이 팀장 기념일이라고 점심을 밖으로 가자해 맛있는 중국집에 다녀왔다.

가을학기 강좌 초빙을 위해 유홍준교수님도 만나고.. 글과 생활이 일치하는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1년 뒤면 입사 20주년.

그때 나는 어떤 생각과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즐겁게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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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

2013. 5. 13. 01:09 from story of my life

정신, 아니 마음을 난도질당하면 잠은 어김없이 내게서 도망간다.

상처를 준 이가 받은 사람보다 더 아프다는 말, 상처 입은 사람을 위로하기 위한 허울좋은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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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임

2013. 5. 5. 07:39 from story of my life

나와 부산의 첫 만남은
공군사관학교 교관 시절 수송기를 타고 몇몇 동료들과 함께 사관생도들을 이끌고 와서였다.
당시 광안리 민락동(?)에서 직접 흥정하여 고른 횟감을 소주와 함께 즐긴 후 해운대의 밤을 거닐며, 부산이 이런 곳이구나 하고 느꼈다.

한참 뒤 둘째가 태어나기 전 세가족이 다시 들른적이 있다.
겨울이었는데 네살짜리 큰애가 단추가 채워진 진보랏빛 코트를 입고 광안리 모래사장위를 풀어놓은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초등 일학년 때였던가, 이제 단어들의 개념을 알아듣기 시작한 이녀석, 부산의 조선비치라는 호텔에서 묵는다고 출발 전날 얘기해줬더니 이튿날 새벽 다섯시쯤에 안방으로 와 내 팔을 흔들며 어서 가자고 졸라댄다.
호텔이란 말에 이친구 마음이 적잖이 설레 그 이른시간에 잠이 깬 모양.

회사 복지 프로그램 덕에 부산은 그뒤로도 꽤많이 방문, 낯익은 곳이 되었다.

어제 가족들과 함께 또다시 부산을 찾았다. 뭐 이제 다 컸지만 내겐 아직 어린이인 두녀석과 어린이날 기념으로 이곳에서 함께 보내기로 한 것.

어릴적 큰애에게 설레임을 안겨준 부산은 이제 학창시절을 보낸 곳으로 남게 되었다.

첫경험은 때로는 두려움을, 아니면 설레임을, 또는 두가지를 동시에 가져다준다.

지난해와 올해 나는 크고 작은 첫경험들을 하고 있다.
처음인 곳으로의 여행, 새로운 부서, 처음 들어본 곡들, 음반으로만 들었던 오케스트라나 지휘자 연주자들을 직접 보게된 것.
그리고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경험.

나로서는 지난 일년 남짓한 기간이, 오히려 내게 일생을 통털어 얻지 못한 배움과 소중한 경험을 가져다 준 시기인 것 같다.

행복은 그 행복이 사라지면 고통이 따른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사람은 순간이든 지속적인 것이든 행복을 추구한다.
첫만남의 설레임, 그뒤로 찾아드는 행복함. 설레임으로부터 이어지는 행복함은 평생을 마음속에 자리잡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인생에서 앞으로 얼마나 이같은 설레임을 또 경험할 수 있을까?

조선비치 객실에서의 바다는 언제 봐도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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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는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들렌 과자를 홍차에 적셔먹으면서 또 고르지 않은 포석을 밟는 순간 불현듯 피어오르는 일련의 과거의 기억들을

'의식의 흐름'이란 수법을 통해 되살린다.

 

1편 '스완의 집쪽으로'에서 마지막 7편 '되찾은 시간'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으며 과거에 대한 회상이 장편의 작품에 기술되어 있다.

 

대학때 이책을 부분부분만 읽어보긴 했지만,

옛추억으로 회귀하려는 작가의 욕망과 , 미래가 되면 또다른 잃어버린 시간이 될 수 있는 현재의 마음가짐이 잘 표현되어 있었음을

또렷이 기억한다.

 

지나간 기억들.

그것이 행복한 것이라면 무의식 속에서 그들을 끄집어내는 것은 참 달콤한 일일 것이다.

 

한편 결코 잊혀질 수 없는 것들, 다시말해 잃어버린 시간의 박스에 저장될 수 없는 일들도 존재한다.그 감정과 기억은 나의 남은 생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고,

또렷이 나의 마음속에 자리잡아 평생 나를 지배할 것이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

나는 이 보석같은 경험 전부를 '잃어버릴 수 없는 시간'의 저장함에 영원히 간직해 두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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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

2013. 3. 12. 19:03 from story of my life


지난주 발령이 났다.
옮긴 자리는 문화팀으로, 백화점의 아카데미(문화센터)와 문화홀의 프로그램과 공연 등을 기획 운영하는 곳이다.
모두들 하나같이 딱 맞는 자리로 갔다고 축하해 주고 새팀 식구들도 팀장이 바뀐 걸 달가워하는 눈치다.
나역시 꽤나 하고싶었던 일인지라, 회사의 결정에 고맙게 생각하고 남다른 포부를 가져본다.

오늘 인수인계를 하고 짐을 옮겨 자리 잡는데, 같은층이다보니 한시간도 채 안 걸렸다.

마음을 옮기는 일도 이처럼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을 정리하고 움직여야 하는 일처럼 세상에 어려운 게 있을까?
손바닥 뒤집듯이 쉬우면 좋으련만, 그렇게 해보려고 애쓰지만, 오히려 그 손이 잘려나간 것처럼 허무하고 고통스럽다.

마음의 이동은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한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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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3. 2. 13:41 from story of my life



연휴를 틈타 대전 집에 내려왔다.

맏이인 나는 여동생 하나와 남동생 둘이 있는데,
6년전 여동생 집에 모인 저녁자리에서 삼형제가 각자 2주에 한번씩 번갈아 부모님 뵈러 다녀오자고 제안하니
동생들 둘이 흔쾌히 동의했다.

바꿔 말하면 한팀이 6주만에 내려오는 것이고, 부모님 입장에선 2주마다 자식들과 손자손녀들을 만나게 된다.

지금까지 세팀 모두 그 룰을 잘 지켜오고 있다.
그것도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착한 녀석들.

처음엔 힘들게 그럴 필요 없다며 오지말라 하시던 아버지는,
지금은 금요일이면 요구르트를 잔뜩 사놓고 우리를 기다리신다.
고집이 있긴 하지만, 세상 누구보다도 소박하고 남을 배려하는 맘이 크신 아버지.
40여년의 교편생활 후 정년퇴직하신 이런 아버지를 주위사람들은 '법 없어도 좋을 분'이라 말한다.

식구들과 함께 하셔도 좀처럼 말수가 없으시고, 특히 이래라 저래라 요구사항은 절대 없는 분인데,
오늘은 점심 식사 후에 긴 막대 하나를 챙기시더니 나한테 밖에 잠깐 나갔다 오자고 하신다.
약간 의아한 마음으로 따라나섰는데,
이유인 즉 삼일절인 어제 내걸었던 태극기가 바람에 날아가 맞은편 나무가지에 걸려 그걸 좀 내려달라는 얘길 하셨다.

가보니 6,7미터 높이의 나무 윗부분에 태극기 한장이 봉과 함께 버려진 빨래처럼 매달려 있었다.
아버지 덕에 참으로 오랜만에 나무타기를 경험하게 되었다. 야호. ^^
요런 거 워낙 좋아하는 나는 먼저 발디딤 위치 두세곳을 확인한 뒤 쪼르륵 올라가 손쉽게 임무를 완수한 후 폴짝 땅으로 뛰어 내렸다.

지켜보시던 아버지는 태극기를 손에 쥐고 처음에 마냥 흡족해 하시더니,
"어라, 우리 것이 아니네?" 이러신다.
에고고..
"아버지, 어차피 못내리는 건데 그냥 쓰셔도 되요오" 했더니, 잠시 주저하시다가 그냥 집으로 들고 오셨다.

삼일절 태극기 덕에 아버지께 효도 하나 했다.

이불도 털고 집청소도 싹 했더니 마음이 오늘 하늘처럼 맑게 개었다.

아버지, 한달반 뒤에 또 올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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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