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of my life'에 해당되는 글 47건

  1. 2012.12.17 아들과 제자 1
  2. 2012.12.06 눈과 자동차
  3. 2012.11.26 길신현은? ^^ 2
  4. 2012.11.19 내 자랑
  5. 2012.11.14 낯선 것과의 결별
  6. 2012.11.10 가족 1
  7. 2012.11.08 인생의 그림 1
  8. 2012.10.30 생일 2
  9. 2012.10.28 약정기간 2
  10. 2012.10.18 친구의 귀환

아들과 제자

2012. 12. 17. 13:00 from story of my life

 

주말에 얼굴에 함박웃음을 하며 아버지가 집에 오셨다.

 

40여년간 대전에서 고등학교 영어교사를 해오신 아버지.

담임을 맡았던 제자들 서울 모임에 초대되어 엄청나게 후한 대접을 받고 오셔서,

선물과 제자들의 환대를 연신 자랑하시며 벙글벙글 웃음을 짓곤 하셨다.

 

아버지는 겉으로 보기엔 정이 많은 분은 아니다.

하지만 모나지 않고 인자하신 성격으로 제자들에겐 꽤나 인기가 있는 선생님.

 

일제시대에 금산에서 면서기를 하신 할아버지는 중간에 돌아가신 두 아들을 빼고도 슬하에 7남1녀를 두셨는데,

그중 아버지가 둘째 아들.

맏이인 큰아버지는 공부랑은 담쌓고 지내셨던 터라, 할아버지의 귀염은 똑똑하고 공부를 꽤 잘했던 아버지의 독차지가 되었다고 할머니는 내게 자주 말씀하셨다.

15킬로미터가 넘은 거리의 초등학교를 도보로 6년간 다닌 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아버지는 중학교는 대전으로 가고싶어 하셨는데, 당시 할아버지는 귀염둥이 둘째를 곁에 두고 싶어 극구 반대하셨다.

이에 아버지는 몰래 대전중학교(현 대전고등학교) 시험을 봐 합격장을 들고 오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유학을 보내셨다 한다.

 

고등 졸업 후, 이번에는 멀리 떨어지기 싫다며 눈물로 만류하는 할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아버지는 서울로의 대학진학을 접고 충남대 영문과에 입학, 군대를 마친 뒤 보문고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시작하셨고, 모 고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 하신다.

가끔 나는 아버지 자전거의 핸들과 안장 사이에 설치된 어린이용 안장에 실려 저녁에 학교에 가, 숙직실에 딸린 방에서 함께 이불을 덮고 동침을 당하곤 했다.

학교 소풍에 나를 데려가신 적도 있다.

 

제자들과 관련된 잊을 수 없는 기억 두가지.

 

아버지는 평생 결근이라곤 해 본 적이 없으신 분.

그런데 한번의 예외가 있었다.

당신이 담임을 맡고 있던 반 학생 몇명이 시험 전날 밤 등사실 열쇠를 부수고 들어가 시험지를 훔쳤는데,

당연 다음날 아침 발각이 되고 만다.

그 이튿날 아버지는 집에 눌러 계셨다. 아버지가 학교에 안 나가시다니.

이날 저녁 반장을 비롯한 학생회 간부 몇명과 선생님들 몇분이 집으로 찾아와, 마음 돌리실 것을 간곡히 당부하는 장면을 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당시 나는 중1) 지켜본 적이 있다.

'내가 애들을 잘못 교육시켜 일어난 일이니 내 책임이고, 나는 선생으로서의 자격이 없어 퇴직하겠다'는 강건한 태도를 보이시는 터라, 수차례의 설득은 수포로 돌아가고, 나는 '아버지가 직장을 안 나가시면 우리집은 어찌하나'하는 걱정에 사로잡혔다.

다음날 아버지는 아무일도 없던 것처럼 이른 시간에 출근 하셨다. ^^

 

두번째는 눈이 무릎까지 내린 어느 설날 저녁.

당시 내 방은 주택 2층이었는데, 갑자기 초인종 눌러대는 소리와 함께 우리집 정원이 왁자지껄 해 져 창문을 열고 내다보게 되었다.

졸업한 지 수년 된 대학생 형들 열댓명이 세배차 몰려왔는데,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들은 그 눈쌓인 마당에서 현관문을 열고 나온 아버지께 모두 한꺼번에 넙죽 절을 하며 큰 소리로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고 있는 것이었다.(마치 조폭들의 한장면)

2층서 이 광경을 내려다 보던 나는 '아요, 손 발 시리겠다'고 생각 하면서도, 그렇게 존경하는 제자들을 둔 아버지가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그날은 추웠지만 어린 나의 마음이 포근해진 잊을수 없는 날이었다.

음식 솜씨 없는 엄마가 그날 술과 안주를 내놓느라 꽤나 힘들었을 것이다.

 

엄마한테를 제외하곤 남한테 싫은 소리 한번 못하시는 아버지.

고3 야자 때 자전거를 타고 학교까지 찾아오셔서 교실 창문 밖에서 나를 바라보시다 얼마 후 내가 좋아하는 코카콜라 한 병을 건네주고 가신 아버지.

 

엄마가 나에게 해 준 것도 크지만,

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베품도 나한테는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엄마가 내게 감성을 선물해줬다면, 아버지는 나에게 인성을 선사해주시지 않았을까?

 

어제 아침, 대전으로 가는 버스를 태워다 드린 후 돌아오는 길에,

'나는 명색이 자식인데, 제자들보다도 행복을 덜 안겨드리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 앞으로 더 잘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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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자동차

2012. 12. 6. 14:57 from story of my life

 

사고가 난 것은 어느해 12월 초의 일이다.

 

그날 아침은 눈이 많이 내리진 않았는데, 매서운 겨울바람에 밀가루처럼, 신기루처럼 눈가루들이 도로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모이며 그림을 그려대고 있었다.

당시 청담동에서 연수원까지 출퇴근을 하던 나는 몸상태가 일생 최악의 상태.

두달 이상 이어지는 불면으로 오후 4시가 되면 에너지가 완전히 소진되 몸이 추워지면서, 사무실 안에서도 파카를 뒤집어쓰고 국화차를 데워 추위를 달래야만 했다.

그런 몸상태로 매일 왕복 120킬로 가까운 거리를 운전을 해야 했으니, 사고가 나지 않은 게 이상하다 할 수도 있겠다.

 

용인대학교 정문을 지나 길지 않은 터널을 나와 왕복 2차선의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는데,

3,4초 정도 의식을 잃었거나 졸았던 것 같다.

눈을 떠보니 차가 미끄러지고 있었고 순간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슬로우 비디오처럼.

차가 정말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반바퀴를 돈 후 다시 90도를 더 돌아 도로방향과 수직방향으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거짓말같은 통제 불능의 상태.

반대편 차선에서 하얀색 승용차 한대가 중심을 잃고 자기쪽으로 달려드는 내 차를 보고 멈춰서는 듯 했지만, 가속이 붙은 내차는 그대로 돌진해 상대차의 본닛 부분 내차는 운전석 도어부분이 서로 충돌하고 말았다.

순간 컥하고 숨이 막히는가 싶었고 잠시 뒤 정신을 차려보니 오른쪽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운전석 문이 열리지 않아 조수석으로 옮겨 차 밖으로 나왔는데,

비참해지는 심정과 함께 상황을 없던 걸로 돌이킬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룩거리며 상대편에게 가 머리를 숙이고 죄송하다고 했다.

 

지금 글을 쓰는데도 그때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병원진단 결과 핸들에 부딪힌 갈빗대가 나갔고, 이마가 찢어져 다섯바늘을 꿰멨다.

 

그날의 사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운전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다.

속도의 쾌감.

특히 눈발이 막 날리기 시작한 밤시간에 오디오 볼륨을 크게 높인 상태에서 질주하며 맛볼 수 있는 쾌감은 경험하기 쉽지 않은만큼 통렬하다 할 수 있다.

 

어젯밤, 그친 눈을 바라보며 미끄러운 길을 달리는데, 기분이 참 상쾌했다.

 

눈은 색깔이 하얗고 눈부시기 때문에 나도, 사람들도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날리는 모습이?

또는 아늑하게 거리에 쌓여 가로등의 빛을 반사하며 이름모를 느낌으로 안겨주는 포근함이 좋은 걸까?

 

조만간 아이젠 챙겨 눈쌓인 큰 산에 올라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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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신현은? ^^

2012. 11. 26. 10:05 from story of my life



양파, 여자, 매생이, 기억하고싶은 LP판, 슈니발렌, 두부, 스무살, 네이버 검색창, 맑은 영혼, 카사노바


한달에 한번씩 팀회식을 한다.
방법은 팀원들이 돌아가며 본인이 가고픈, 혹은 소개하고픈 맛집을 정하는 것으로, 맛깔난 음식도 경험하고 2차로 차한잔 하며 도란도란 아님 시끌시끌 얘기 나누는 그런 자리다.
술보단 맛과 대화를 지향하는 자리랄까?

지난주에는 대학로에 위치한 '소나무와 된장예술' 이란 곳에서 특색있는 - 전체적으로 간이 좀 강했다 - 저녁을 먹고 바로앞 투썸으로 자리를 옮겼다.

약간 춥지만 하늘을 바로 볼 수 있는 3층 옥상에 자리잡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나의 제안으로 상대방 느낌 게임, 즉 'OOO은?'하면 떠오르는 느낌 말하기가 시작되었다.
사실 이 게임의 경우 당사자가 기분 나빠질 수도 있어 하지 말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팀장의 권한을 남용하여 밀고 나갔다.
대신 '길신현은?' 부터 시작.

윗쪽에 나열된 것들이 그 답들.

양파, 슈니발렌, 스무살, 맑은영혼은 부연설명이 없었고,

여자, 여성스럽지만 냉정할 땐 여자가 한을 품는 것보다 더 무섭다.

매생이, 차가와 보이지만 실제로 속은 뜨겁다. (겉과 속이 다르다? ^^)

기억하고 싶은 LP판, 다시 들어보고 싶은 옛기억들을 많이 가진 사람.

두부, 겉은 부드러워 보이는데 속은 밀도와 영양가가 있다.

네이버 검색창, 뭐든 해결해 준다.

카사노바, 상대방의 심정을 잘 알아준다.


참, 아부들 심하다.
하지만 알면서도 기분이 좋고 상당부분 나의 성향들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네이버 검색창'이 제일 맘에 들고, '카사노바'는 다른걸로 바꿔줬으면 할 정도로 어감이 별로다.

'매생이'는 의미심장한 지적.

여하간 팀원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참 행복하다. 그들도 그럴까? ^^
인천점 팀장 때도 지금도, 나는 참으로 좋은 팀원들을 만난 행복한 팀장이다.

그들이 내게 잘해주는 만큼, 나도 이친구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줘야겠다.

팀원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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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랑

2012. 11. 19. 14:04 from story of my life

 

내가 몸담고 있는 부서가 '고객서비스팀'인지라,

이따금 열이 오를대로 올라 있는 고객과 통화할 때가 있다.

 

오늘도 팀원 자리로 온 20대 남자고객 전화를 받게 되었는데,

주말 모점포 실무자와 해결이 끝까지 안 된 일이 50분 정도의 두차례 통화로 해결되었다.

더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하시며.

 

지난 달에도 어느 점포에서 세 달 이상 끌어오던 컴플레인 건을 30분 정도 통화로 일단락 지은 적 있다.

 

내 직급이 부장이라 해결이 잘 된 건가? ^^  요거 아닌 거 같다.

아님 내 상담 능력이 남보다 나은 걸까? ^^  요것도 아닐 것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사과든 설득이든 진심으로 하게 될 때, 정상적인 사람이면 화를 가라앉히거나 마음을 열게 되는 것 같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도 마찬가지일 게다.

 

소통의 우선은,

내 생각을 정확히 전달하려는 의지가 아니고,

상대방의 처지를 소상히 헤아려보려는 마음자세일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이야기를 주고 받다 보면 울컥할 정도로 화가 날 때도 있는 걸 보니.

 

내 주변에 나를 아끼고 따르는 사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려는 노력을 해야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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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것과의 결별

2012. 11. 14. 18:22 from story of my life

아프지만,
더 아프지 않기 위해,

나는 이제 낯선 것과의 결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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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2012. 11. 10. 19:40 from story of my life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아버지 엄마, 그리고 두분의 4남매 자식들이 각각 두명인데 다 모이니 열여덟명이나 된다.

물론 명절에도 함께 얼굴을 보긴 하지만 이렇게 따로 일박 여행을 하며 웃고 즐기는 건 참 오랫만의 일로, 그간 큰아이 대학 진학이 모임의 걸림돌이었다.

큰아이는 속죄라도 하는 양 팔걷고 고기를 구워대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모두들 얼굴에 즐거움이 가득하다.

부모님이 76세 동갑, 내가 48, 막내동생이 39, 장손인 민규가 21, 젤 작은 조카가 5살이니 세월의 무게가 크기도 하면서 가볍다는 느낌도 든다.

이자리에서 제일 행복해 하는 사람은 아버지시다.
아버지는 내가 가끔 동생들과 소주한잔 같이 하며 전화 한통 드려도 마냥 즐거워 하시는 분.
얼마전 당신 생일 기념으로 모두 함께 하겠다고 오늘의 여행 얘기를 꺼냈더니, 돈드는데 뭐하러 그러냐며 손사래를 치셨지만 지금 아버지 웃음소리가 가장 크게 들린다.

한데 나는 마음이 즐겁지 않다.

나는 앞으로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앞으로 동생들과 함께 부모님께 더 자주 연락드리고 뵙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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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그림

2012. 11. 8. 11:28 from story of my life

 

사람은,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삶, 그것도 제대로 된 삶의 영위가 가능하다.

 

그렇기에 만남은 소중하다.

 

가족, 친구, 직장, 그외의 모든 만남을 어떻게 꾸려가냐에 따라 인생의 그림이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과 사람들은, 또 나를 만나는 사람과 사람들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그림을 그려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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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2012. 10. 30. 17:57 from story of my life

 

오늘은 내 생일이다.(선물 달라는 거 아닙니다 ^^)

 

내가 다닌 초등학교가 사립인지라, 대전서 부잣집 애들이란 애들은 거의 다 모인 샘이었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생일파티를 했다.

하지만 내 경우 엄마의 약국 운영으로 친구들을 부르거나 할 상황이 못되었다.

따라서 어린시절 내 생일에 대한 기억은  크게 없다.

한데 딱 한번은 아주 기억에 또렷이 남는 생일이 있다.

 

그 한 번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생일 아침 엄마가 아침에 천원 한 장을 주면서 친구들과 제과점에서 빵이라도 사먹으라는 것.

사실 그리 큰 돈- 지금으로 환산하면 10만원 정도 -은 처음 받아보는 터라 부담이 되긴 했지만, 나도 생일에 친구들과 뭣 좀 해볼 수 있다는 즐거움이 더 컸다.

제과점 이름도 또렷이 기억난다. '거북당', 대전 시청 앞에 위치하고 있는.

처음엔 좋았다. 한 5백원어치 빵과 우유를 시켜서 맛있게 냠냠.

근데 1차 분량을 다먹자 '박정수(이놈 이름 잊을 수 없다)'란 녀석이 '신현아, 좀 더 시켜도 되지?'하고 물었고,

나의 '으, 으응'하는 대답이 이어지기 무섭게 이녀석은 빵을 더 시켰다.

이때부터 나는 빵을 더 먹지 못했다. 빵값 걱정 때문에.

친구들이 주는 몇가지 선물을 챙긴 후, 계산을 했는데 880원이 나왔다.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집하고 붙어있던 약국으로 들어서니 그날따라 아버지도 일찍 와 계셨는데, 엄마에게 거스름돈 백원짜리 지폐 한 장과 십원짜리 두 장을 내밀자 엄마는 무척 의아해 하며 '현이가 돈을 이렇게 남겨왔네'라면서 아버지에게 보여주었다. 아버지도 어이없어 하는 표정. 엄마에게 혼나거나 하진 않았지만,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후로 내 생일이 밖에서 치뤄지는 일은 없게 된다.

 

친구의 생일에 대한 기억도 있다.

초등 2학년때 'K'라는 여자애의 생일에 선물을 한 것.

아버지가 동아연필 사장이었던 그아이는 집에 풀장이 있을 정도로 부자였는데도, 다소곳하고 움직임이 조용조용하여 마음에 두고 있던 친구였다.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어서 이친구는 나를 자기 생일에 초대하지 않았다. 나는 고민 끝에 만화 위주의 두터운 월간지로 당시 최고의 인기였던 '소년중앙' - 이책에 연재되는 '바벨2세'라는 만화는 흡입력이 강해 아마 지금 내놔도 히트할 것이 분명하다 - 을, 엄마를 졸라 돈을 타내, 이 아이 생일날 학교가 파한 후 그집 대문 밑에 밀어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맘에 드는 아이에게 선물을 하는 설레임과 뿌듯함이란 !

잡지는 하얀 비닐로 커버링되어 있어, 그 위에 내 이름을 적어두는 것도 있지 않았다.

'받아보고 분명 맘에 들어 하겠지? 내일 나한테 뭐라고 할까?'하면서.

그런데 다음날 또 이틀째가 되어도 이 친구 도통 기색이 없어, 기다리던 나는 3일째 되던 날 슬며시 혹시 책 안 받았냐며 물어보았더니, 이 친구 왈 '어 니가 준 거였냐? 우리 개가 다 갈기갈기 물어뜯어놔서,,,'하며, 이어 심지어는 '근데 나 소년중앙 벌써 샀어' 이러기까지.

 

여튼 생일이란 게 있어 이렇듯 여러가지 재미난 에피소드들도 생기는 것같다.

서울 올라와선 생일에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곤 했다. '엄마 아빠, 낳아주고 잘 키워주셔서 고마워요'하고.

 

오늘은 팀원들이 모두 모여 조촐하지만 크게 축하를 해주었다.

아버지도 '너무너무 축하한다'는 귀여운 이모티콘을 보내주셨다.

 

어릴때 못받았던 생일상을 커서 배로 받는 것같다.

난 참 행복한 사람.

 

[ 우리 팀원들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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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정기간

2012. 10. 28. 10:04 from story of my life


내 아이폰 약정기간이 올해말이면 끝난다.
뭐든 내것이 일단 되면 물건이든 사람이든 그로부터 정을 떼내기가 힘든 나는, 아이폰 5가 출시된다는 말에도 사실 크게 관심을 가지진 않고 있었다.
근데 폰 교체에 대한 고민을 요즘 하게 되었는데, 지금 쓰는 아이폰 버튼이 무지하게 말을 안듣고 있기 때문이다.
눌러도 눌러도 반응을 좀처럼 않는.

한데 이 고민이 일거에 사라져버렸다.

큰아이에게 생일선물로 아이폰 케이스를 받았기 때문이다.

생일을 앞둔 주말에 집에 왔는데,

어제 생맥주를 같이하는 자리에서 검정과 밝은빨강 투톤으로 된 예쁜 케이스를 슬며시 내놓은 것.
녀석, 나보다 색깔 감각이 있네.

이로 인해 2년 가까이 나와 함께해온 폰은 수명을 연장하게 되었다.

마치 큰아이가 '아빠, 기간이 되었다고 정들었던 애를 버리면 돼?'하고 가르쳐준 것같다.

그래, 불편하다고 싫어하고 나랑 안맞는다고 그간의 함께함을 잊고 소홀이 생각하는 건 도리가 아니지.

고맙다 민규야, 고맙다 내 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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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귀환

2012. 10. 18. 14:13 from story of my life

 

대학 친구인 H가 돌아왔다.

 

사실 나는 아주 친한 친구가 많지 않다.

그런데 이 친구의 경우 서로 아무리 주고 받아도 너나가 없다할 정도로 거리가 없는 녀석이다.

 

대학시절 C라는 또 한 아이와 함께 세명이, 소위 선배들이 인정하는 트로이카 였는데,

당시에 셋 중 나는 그런 자격이 없다는 자괴감에 빠지곤 했었다.

똑같이 시간을 투자해 공부를 해도, 아웃풋에서 차이를 느끼곤 했기 때문이다.

H는 분석과 재구성에 있어 나를 넘어섰고, C는 순발력과 아이디어 부분에서 따라잡기가 힘들었다.

내가 두 친구보다 좀 나았던 점이라면, 감수성 정도.

이렇게 작용한 열등감은 학부초 세웠던 문학을 계속 하겠다던 나의 꿈을 접게 만드는 내면적인,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두 친구는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여튼 우리는 학부 4년간 그 나이또래 애들이 갖게되는 고민과 경험을 진하게 나누며 컸고, 이른바 진정한 '친구'관계가 다져졌다.

셋은 시기는 다르나 대학원에 진학, 학위와 논문이라는 결과물을 가지게 되었지만, 결국 모두 공부를 접고 사회생활의 길을 택한다.

 

세사람의 현 성적.

나는 대학원 졸업 후 군대를 마치고 신세계라는 기업에 18년째 재직중.

H는 학업 이후 금융회사에 취직 은행 차장으로 있다.

C는 졸업 후 첫직장은 건설회사, 그 후 동아일보 기자로 활약하다가,

6년전 1월1일 새벽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발적이건 계획된 것이었건, 가장 똑똑하고 생활력 강하다고 생각되었던 C의 자살로 인해 받은 충격은 겪어본 나자신만이 안다.

본인도 안됬지만 남아있는 제수씨와 딸이 더 안스럽다.

 

그 후 H는 뉴욕 지점으로 발령이 나 3년반의 근무를 마치고 귀국해 그제 연락이 왔다.

순대국과 소주를 앞에 놓고 그가 하는 말이 '너를 보니 마음이 푸근해진다'였다.

나도 마찬가지야 임마.

 

굳이 말이 없어도 같이 있으면 맘이 편해지는 친구,

그가 돌아와 나도 그도 커다란 행복이 하나 더해졌다.

 

반갑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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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