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는 정말 귀천이 없을까?
점심때 회사 임원 운전기사 한분과 밥 먹고 차한잔 했다.
나보다 세 살 아래인데 내가 연수원에서 일하던 시절부터 서로 말 편하게 하며 가끔은 식사 또 산행을 같이 다니기도 한 사람으로,
의협심 강하고 직설적으로 언어를 구사하는 스타일이다.
물론 구사하는 언어의 양이 무지 많기도 하다. 봇물 수준.
사실 그간 여러 얘기를 나눴지만, 오늘은 어떻게 기사생활을 하게 되었는가가 궁금해 넌지시 물어보았다.
대학 갈 머리가 안 되(본인 표현), 고등 졸업 후 바로 간 군대에서 운전 조교를 생활을 했는데,
제대 후 뭘 할까 하다가 운전학원에 경력을 들이밀어 보니 바로 와도 좋다고 하길래 득달같이 아버지께 달려가 자랑했다가 불같이 혼이 났다 한다. 안정성이 없다는 아버지 판단이셨다.
당신 큰아들이 달리 아무런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신 아버지는, 며칠 뒤 공무원 성격이라는 이유로 분뇨차나 쓰레기차 운전을 소개하셨다 한다. 23살 이 청년이 손사레를 치며 마다한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얼마 후 신문 공고를 보고 제일모직에 영업이사 기사 자리를 알아보러 갔고,
차량반장과의 몇마디 구두면접 끝에 핸들을 잡게 되었다.
90년부터 시작했으니 이제 23년째 기사라는 직업을 달고 사는 양반이다.
현재는 우리 회사의 꽤 높은 임원 한사람을 13년째 무탈하게 모시고 있다.
만날 때마다 느끼는 바는 이친구 어딘지 모를 뚝심과 자신감 같은 게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내가 약한 구석이어서,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참 똑부러지네 하는 감탄을 하곤 했고 형 같다는 느낌마저 들기도 했다.
근데 오늘 이야기 도중 자기 자식이 친구들에게 아빠 직업을 자신있게 얘기하지 못 할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또 자기가 못 배운 탓에 말하는 게 촌스러워서 애들 친구 부모들이랑 얘기하고 그러는 자리가 너무 부담스럽다는 말도 했다.
그런 사람들은 이야기 하는 격이 높아 자기가 맞출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이 사람이 갑자기 더 좋아지게 되는 걸 느꼈다.
아마 자신의 약점인데도 나에게 스스럼 없이 얘기해 준 까닭일 거다.
내가 그런 처지였더라면 나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내 얘기를 할 수 있었을까?
좋은건 좋다 싫은건 싫다 그자리에서 탁탁 이야기하고 행동할 줄 아는 이 친구는 모르긴 해도 나이 많이 들어서도 당당하게, 나보다도 더 잘 자신의 삶을 꾸려갈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빠 성격이 열려있고 솔직한 사람이라서, 아이들도 분명히 잘 클 거라'고 말 해 주었다. 실제로도 그리 생각한다.
나이가 어리고 배움도 적지만, 만날 때마다 내게 많은 걸 가르쳐 주고 느끼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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