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지만, 시원한

2013. 8. 15. 14:13 from story of others

오늘은 성모승천 대축일 미사가 있는 날이다.
열한시 미사를 준비하기 위해 열시부터 시작되는 성가대 연습에 가던 나는 아이스커피를 한잔 사려고 성당앞 편의점에 들렀다.

성가대 연습 전에 목을 축이려고 또는 레슨받을때 선생님 드릴 음료수를 사기 위해 종종 들르는 이곳에는,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또는 뿔테안경을 끼고 키가 80 정도 되보이는 청년 한명이 카운터를 본다.
오늘 아침은 그 청년에게 커피를 샀다.

신부님의 긴 강론과 함께 진행된 미사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엔 여름의 막바지를 외쳐대는 매미들의 합주가 무성한 나무들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집에 와 점심을 간단히 먹고 지갑을 뒤적이는데, 신용카드와 편의점 적립카드가 보이질 않았다.

어디서 빠뜨렸지? 하는 생각과 동시에 연습에 늦지 않으려고 얼음컵에 부산하게 커피를 따르며 편의점 테이블 위에 카드를 둔 거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경우 밟아야 할 수순은 물론 간단하다.
카드사에 전화를 하기에 앞서 편의점에 들러보는 것.

문제는 편의점 가기까지 오만가지 생각들이 든다는 것이다.
누가 카드를 들고가 긁어버리는 장면 등.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편의점 문을 열고 '저 혹시 아침에 카드 두장..' 했더니, 카운터옆 진열대에서 뭔가를 정리하던 이 친구 나를 돌아보더니 마치 당근다발을 발견한 토끼처럼 얼굴이 환해지면서 '카드사에 전화해봤는데 본인 아니면 연락처를 안 알려준다 하고, 또 편의점 본사도.. ' 하면서 보관했던 카드 두장을 내민다.
휴우.. 상황 해제.

안도의 한숨을 쉬고 고맙다는 말을 하는데, 이친구 무슨 장물 맡고 있다 해방된 듯한 표정이다. ㅋ
그리고 내가 그래야 하는데 도리어 본인이 연신 미안해하는 기색을 보인다.

순간 '이사람, 편의점에서 일하지만 나보다 낫네'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니,
양쪽에 전화해 내 연락처를 알려고 진땀을 뺀 모양.

나는 문을 나서면서까지 고맙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하며 편의점에서 나왔다.

워낙 안좋은 경험들을 하는 요즘사람들, 아니 나는, 이런 반대의 상황을 겪고나니 '아, 고맙고 진정성있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나도 좀 더 성실하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다져본다.

땡볕이 내려쬐는 광복절이었지만,
갈증을 씻어주는 시원함을 맛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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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