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2014. 2. 7. 17:52 from music, film & literature

 

퇴사한지 5년이 지난 아끼던 후배하나가 새해 인사차 회사로 찾아왔다.

지금은 세살난 아이를 키우면서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착실한 친구다.

 

차한잔 하는데 슬그머니 풍월당 종이백을 내놓아 꺼내보니 두장짜리 CD였다.

내가 CD선물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지? ^^

뜯어보니 '자클린 뒤 프레' 연주로 하이든, 엘가, 드보르작 세작곡가의 협주곡이 담겨있는 멋진 음반이었다.

 

자클린 뒤 프레.

그녀는 그야말로 영화같은 삶을 산 주인공이다.

 

피아니스트인 엄마에게서 태어나 5살 생일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첼로소리를 듣고 활을 들었다는 그녀.

어릴적 카잘스와 토르틀리에 같은 거장들의 인정을 받았고, 그녀를 가르쳤던 로스트로포비치는 “내가 이룬 업적과 동등한, 아니 그 이상을 해낼 수 있는 젊은 세대의 유일한 첼리스트”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한다.

열여섯살에 리사이틀로 데뷔, 열일곱살에는 BBC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엘가'의 첼로협주곡을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엘가협주곡의 전설'이라는 칭호를 얻으며 고향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미국의 데뷔 무대에서 다니엘 바렌보임을 만나 사랑을 하고, 22살의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된다.

이 부부 듀엣은 이후 수많은 팬들을 사로잡으며 불꽃같은 음악활동을 전개해나간다.

 

두사람의 과도한 재능과 사랑을 하늘이 시샘한 것일까?

20대 후반 그녀는 시력이 약해져갔고 연주를 하며 박자를 놓치거나 심지어는 활을 떨어뜨리기까지 하는 실수를 종종 하게 된다.

완벽주의자인 바렌보임은 정신력을 탓하면서 그녀을 더욱 강하고 호되게 몰아갔다.

결국 어느날 거리에서 쓰러진 뒤 병원으로 옮겨져 받은 검사결과

희귀성 병으로 온몸이 점점 굳어가는 '다발성 경화증'이란 판정을 받았고,

이후도 활을 놓지 않고 끝까지 연주를 하였지만, 그녀의 열정도 불꽃이 사그러드는 것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서로 음악적인 영감을 나누며 호흡을 맞췄던 두사람.

하지만 천재를 사랑했던 지휘자는 이런 상황에 놓인 그녀에게 이혼을 요구하였고,

병마와 싸우던 그녀는 4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선물로 받은 곡들을 아이팟에 담아 퇴근하며 들어보았다.

여러 위대한 첼리스트들이 그렇듯 그녀의 연주는 색달랐다.

하이든 첼로 협주곡에서는 그녀의 활이 내는 소리에서 양파같은 향이 풍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큼하면서도 맵고 날카로운..

하면서도 섬세함 보다는 과감함과 터프함이 느껴지는 풍부한 연주를 구사하는 연주자였다.

 

이제 주말에 시간 내서 첼로를 꺼내 연습 좀 해야겠다.

 

고마워 후배야.

 

 

[ 바렌보임과 자클린 뒤 프레 : 엘가 첼로 협주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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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