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ny & ivory

2014. 3. 31. 14:47 from music, film & literature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팝송들 중 한 곡의 제목이다.

폴 맥카트니와 스티비 원더 듀엣의 명곡.

'ebony & ivory, live together in perfect harmony, side by side on my piano keyboard, oh Lord, why d'ont we?(피아노의 검은 건반과 하얀 건반은 나란히 놓여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데, 우리는 왜?)'라며, 

흑인과 백인의 화합을 피아노라는 악기에 빗대어 호소하고 있다.

 

88개의 건반을 가진 피아노.

 

클래식 음악에 여러 악기가 등장하지만

'오케스트라 전체를 담을 수 있다'는 평을 받고있는 이 악기는, 다른 어느 악기가 따라올 수 없는 힘과 매력을 지니며 팝송 가사 표현처럼 그야말로 '완벽한' 소리를 발산한다.

 

모차르트 시대까지 사용되던 전신인 하프시코드(쳄발로)의 바통을 이어받은 현재의 피아노는,

하프시코드가 가진 한계인 '타건시 강약조절 불가'를 극복한 악기로,

고전파에서 낭만파로 이어지는 작곡가들의 사랑을 받으며 수많은 소나타, 중주곡,  협주곡 배출시킨다.

 

작곡가가 음표를 통해 자신의 심정을 드러낸다면, 아티스트는 연주를 통해 작곡가의 마음을 헤아린다.

 

이틀 일정으로 다녀온 통영국제음악제의 여독이 약간 남아있긴 했지만,

내한 때마다 어김없이 유료관객률 1위를 차지하며 예매 시작일에 해당 홈피를 마비시킨다는 '예프게니 키신'을 만나러 예당으로 향했다.

키신의 외모를 보면 난 늘 톰 행크스가 함께 떠오른다.

두 살 때, 들은 음악을 그자리에서 피아노로 재연한 것을 시작으로, 열 살에 모차르트 협주곡 협연, 이듬 해에 리사이틀, 열세살에 쇼팽 협주곡 1,2번을 모스크바 국립 필하모닉과 협연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곱슬머리 천재.

그가 연주하는 슈베르트, 스크랴빈, 그리고 앵콜로 이어진 바흐와 쇼팽을 듣는 내내 드는 생각은

'어떻게 저렇게 치지?'였다.

숨막힐 정도의 빠른 대목들과 부드러운 박자의 소화, 특히 건반을 누를 때의 강약 조절 면에서

그는 여타 연주자들에게서 볼 수 없는 면모로 커다란 감동을 선사한다.

필경 이 피아니스트는 다른 연주자들에 비해 강약 조절의 단계를 세배 이상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움직임은 기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다.

 

사실 그의 연주 수준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형용사는 없다.

그리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는 6,7시간의 연습이 그의 실력에 공헌했겠지만, 

키신의 연주는 노력만으로는 절대 얻어질 수 없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수학공부를 매일 다섯시간씩 해도 영어공부 한시간 한 점수를 따라잡을 수 없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결국 이 피아니스트는 열개 손가락에 신이 특별한 재능을 불어넣은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오버라고? 직접 들어보면 안다.

따라서 톰 행크스에겐 미안하지만, '캐스트 어웨이' 주인공의 물오른 연기력은 여기 견줄 바가 못 된다.

 

정해진 레퍼터리가 끝나고 그칠 줄 모르는 커튼콜로 세개의 앵콜이 이어진 후에도 관객들이 오히려 전원 기립박수를 보내자,

조종실에서 객석의 조명을 환하게 밝혀 청중들의 퇴장을 유도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나도 세번째 앵콜곡인 쇼팽의 폴로네이즈를 들으며 자꾸만 눈물이 났고, 쭈삣쭈삣이 아닌 자연스러운 기립으로 환호를 보냈다.

 

그가 연주한 쇼팽 음반들을 사서 들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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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