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교향악

2014. 4. 17. 13:14 from music, film & literature

 

음악에 계절이 있을까만은..

 

매년 4월초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교향악 축제'는 봄을 맞아 국내 수준급 오케스트라들이 클래식의 향연을 펼치는 장이다.

요엘 레비 지휘가 궁금해 첫날 KBS교향악단 연주에 다녀온 이후, 어제는 지인인 피아니스트 허승연의 코리안심포니와의 협연을 보고 왔다.

 

회사에서 갈때는 주로 지하철을 이용 남부터미널역에 내려 예당까지 걸어가는데, 도보로 10분정도면 족하기 때문에 발걸음의 즐거움도 느낄 겸 지하철역 입구의 북적북적한 마을버스를 구태여 이용하진 않는다.

그런데 평소보다 약간 늦게 도착한 어제는 역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짙은 남색 예술의 전당 셔틀이 대기하고 있길래 자연스럽게 버스에 올랐다. 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셔틀이긴 했지만, 예술의 전당 마크가 붙어 있는 이녀석을 타면 왠지 대우받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하는 무의식적인 생각이 작용한 것 같다.

셔틀 버스안은 대부분이 여자승객들이었는데, 시외버스처럼 두좌석짜리 자리들만 있어서 약간 시골스러운 분위기가 나기도 했다.

좋았던 건, 하차장소가 콘서트홀을 한갓지게 접근할 수 있는 가까운 자리여서 올라가면서 소소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어제는 공연 전에 지인들을 많이 만났다.

초청을 해주신 허트리오 어머니께 티켓을 받고 돌아서는데, 손짓을 하는 분이 있어 보니 올해초 새로 부임한 코리안심포니 임헌정 지휘자.

오늘 지휘를 맡진 않았지만, 감상차 아니 감독차(?) 당연히 오신 것 같다.

나를 부르더니 코리안심포니 담당자들에게 '신세계에서 클래식을 제일 많이 아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셨다. ㅋ

 

객석에 앉으니 작년 이맘때 작은애와 교향악축제에 왔던 생각이 났다.

큰애보다 감수성이 뛰어난 이친구 당시 좋아하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을 들으며 가슴을 쓸어내리던 기억이 난다.

고3인 올해에는 차마 같이 오자 소리를 못했다.

큰애는 음악적인 감각은 있는 것 같은데, 도무지 클래식에는 관심을 잘 가지지 않는다.

지난 겨울방학 '빈 소년 합창단' 공연 티켓을 얻을 기회가 있어 여친과 함께 가라고 했더니,

"됐다"며 한방에 퇴짜를 놓고서는, 그다음날 여친한테 말했더니 좋아라 가고싶어 한다고 티켓 좀 구해달라고 해 다녀오는 식.

아이들도 클래식음악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허승연은 독특하게도, 드레스가 아닌 검정색 바지와 다리까지 늘어진 옅은 붉은색의 씨스루 상의 차림으로 무대에 등장했다.

1악장 초반부의 피아노 솔로가 문안하게 흘러나왔고, 후반부와 3악장의 강한 터치가 필요한 대목의 몸동작을 보며,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눌 때 그녀가 보인 쾌활함이 떠올랐다.

자세한 과정은 모르지만 허승연은 현재 취리히 음악대학의 종신학장이라는자리를 맡고 있는데,

그녀의 연주를 듣고 보면서 그정도 중책을 맡을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지니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베토벤 4번 협주곡을 연주하는데, 무게감보다는 물위를 날렵하게 헤치고 다니는 듯한 피아노 터치가 특색인 아티스트인 것 같다.

허승연의 두 여동생은 각각 바이올린과 첼로로 이름나 있고 가끔씩 세자매가 허트리오라는 이름으로 연주를 한다.

한데 이 세자매의 공연이나 일정 관리를 다름아닌 어머니가 하고 있다.

겉모습이나 이야기를 나눌때는 무지 털털한 평범한 여자분인데, 세명의 자식을 이렇게 키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을까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교향악 축제는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해 가능한한 일반적인 레퍼터리를 선별해 운영되기에, 티켓값도 만원짜리부터 비싼 게 4만원을 넘지 않는다.

 

요즘 신호등을 건너려 서있노라면, 종아리 위로 봄햇살의 따스함이 내려앉곤 한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하는 콧노래가 저절로 나오는 계절,

감미롭고 힘찬 음악과 함께 이 봄에 스프링처럼 통통 튀어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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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