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의 행복

2014. 4. 12. 21:02 from music, film & literature


아름다움은 슬픈 감정을 부를 때가 많다. 왜 그럴까?
선연히 물든 노을을 볼 때나, 신께 애원하는 듯한 베토벤 협주곡 '황제'의 2악장에서 피아노 소리가 가느다란 선을 그으며 지나갈 때, 떨어진 벗꽃잎들이 바람의 선율에 맞춰 춤을 출 때, 이런 아름다운 감정을 느낄 때 왜 눈물이 나는 걸까?

오늘도 이같은 경험을 했다.

올해초 '강수진'이 단장을 맡은, 국립발레단의 공연 '백조의 호수'를 만나고 왔다.
열흘전쯤 검색을 하다보니 오천원짜리 좌석이 남아 있길래 두장을 덥썩 예매해놓고 손꼽아 기다려오던 공연이었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은 4층까지 있는데 그중 3층을 오천원에 구매했으니, 완전 횡재.
사실 오페라 극장은 거짓말 조금 보태면 3층에서도 무대가 빤히 보여 구태여 1층 비싼 자리를 구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발레의 경우 군무 동작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 보는 묘미를 만끽하려면 확실히 아래층보다 2층이나 3층이 훨씬 유리하다.

'발레는 몰라도 백조의 호수는 안다'는 말이 있듯 차이콥스키의 이 작품은 음악으로 먼저 우리에게 친숙해 있다.
어릴때 엄마 따라 두번 이 공연을 보았는데, 그때마다 나는 악마 로트바르트보다 오딜을 오데뜨로 착각하는 지그프리드가 원망스러워 한편으론 '뭐 저런 왕자가 다있냐?'하며, 또 한편으론 '춤은 참 잘추네..'하였고, 맘을 조려가며 또 줄거리를 따라가면서 행복한 결말을 기대하였던 것 같다.

지금은 발레 하면 '백조의 호수'가 떠오를 정도지만, 러시아의 오랜 전설 백조이야기를 발레곡으로 승화시킨 이 작품은 초연 당시 가혹한 평가로, 차이콥스키는 발레곡을 다시 쓰지 않겠다는 결심까지 했다 한다. 당시대인들이 백여년을 앞선 수준인 작곡가의 절대음악적 능력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

오데뜨는 내게는 늘 갸냘프고 불쌍한 '공주'로 남아있다. 발가락 끝으로 무대를 누비며 선을 그려가는 주인공을 만져보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쓰러져있는 그녀를 손잡아 일으켜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건, 어릴적이나 30년이 넘은 지금이나, 다름아닌 안타까움 때문이다. 
한편 흑조 오딜을 미워해야 하나? 사실 악마의 딸이긴 하나 오딜 또한 오데뜨와 1인2역으로 춤추고 있다는 걸 알게되면, 또한 오데뜨의 단아한 동작에서 볼 수 없는 화려한 몸놀림을 선사해 주는 그녀 또한 미움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두시간 반 내내 '아름답다', 또 '아름답다'란 생각만 했는데 그중 정말 눈물이 났던 대목은, 유명한 1인무용이나 2인무용이 아니라, 동그란 치마를 입은 28마리의 백조가 한꺼번에 또는 4,8,12마리씩 흩어졌다 모였다 하며 원을 그리거나 줄을 만들어내며 추는 군무 였다.
하얗고 갸냘픈 새들이 만들어 내는 직선 그리고 곡선의 순백색 완벽함.
이러한 모습의 군무와 느낌은 '백조의 호수'에서만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막이 내리고 무대인사에서 주인공역의 '김리회'는 군무를 멋지게 소화해 준 동료들에게 감사 인사를 해,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엄마 모시고 가서 공연 한번 더 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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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