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New Year !

2014. 1. 11. 14:48 from music, film & literature


오랜만에 서울시향을 만나고 왔다.
헨델 메시아 연주로 무대에 선 게 12월9일이니 예당을 찾은것도 한달여만의 일이었다.

레오노레야 워낙 잘 알려진 곡이지만 뒤에 이어진 '슈'라는 곡은 진은숙이라는 작곡가 말고는 정보가 전혀없는 터라 무척 궁금하던 차였다.
곡의 구성이나 색깔은 그녀를 늘 따라다니는 아르스 노바(new arts)란 표현에 걸맞게 적당히 생소하고 알맞게 신기했다.
사실 이곡의 주인공은 '생황'이라는 중국의 3천년된 악기와 연주자였다.
생황의 모양을 설명하긴 어려우나,
길이 30에서 60센티미터의 얇은 행운목들 7~8개를 원통 둘레에 세로로 둘러서 붙여놓은 악기로, 난 처음 보는 순간 좀 엉뚱하지만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모형이 떠올랐다.
악기가 내는 소리는 파이프오르간의 높은음역대들만을 추려놓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오르간과의 확연한 차이점은 연주자 호흡의 세기와 양에 따라 다양한 톤과 기법이 쏟아져나온다는 것이다.
또한 협연자의 독주라해도 과언이 아닐 곡의 후반부에 가서는 목관과 금관의 이질적인 소리를 동시에 빚어내는데 마치 복화술을 듣고있는 듣한 신비한 느낌을 받았다.
생경한 곡이어선지 주자가 퇴장한 후 박수가 사그라드는 듯하자 정명훈은 청중들에게 두번씩이나 커튼콜을 유도했다.

전날과 달리 2부에서는 베토벤 5번교향곡이 연주되었다. 1층 네번째줄 오른쪽 자리여서 지휘봉을 잡은 오른손과 얼굴표정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나는 정명훈 지휘 공연을 가면 늘 손해를 본다. 지휘자에 너무 눈이 많이 가서 단원들과 음악 자체에 집중을 못하기 때문이다. 헤헤, 물론 농담. 

정명훈 연출의 5번교향곡을 들어보는 게 이번이 네번째인데 또한 느낌이 예전과 달랐다.
그동안 나는 푸가 형식을 특히 현악기들을 통해 짜릿하게 재현해내는 3악장이 단연 백미라고 여겨왔는데, 이번에는 2악장에서의 비올라 소리가 정말 달리 느껴졌다. 제1주제를 첼로와 함께 이끌어내면서 2악장 특유의 서정성을 드러내주는 일등공신이 비올라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못보던 정명훈의 새로운 모습도 보았다. 객석에 인사할 땐 너무도 인자한 모습의 그가 단원들에게 뭔가를 요구할 때면 가끔씩 서슬퍼런 엄격한 표정을 보인다는 것.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리더십에는 여러가지 모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긴 했는데, 그래도 나는 그의 웃는 모습이 제일 멋지다.

좋은 음악은 정신의 훌륭한 치유제다. 어떤 연유로 최근 가슴이 회색빛이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 또 화려하면서도 힘있는 음악을 만난 후에는 예당 광장을 나서며 겨울바람이 차게 느껴지기보다는, 좀 생뚱맞은 모습이긴 하지만 광장에 새로 생긴 시계탑이 마냥 귀엽게만 보였다.

그리고 한층 기분이 좋아진 또하나의 이유는, 몇차례의 커튼콜 후 정명훈의 주도 아래 서울시향 단원들 모두가 객석을 향해 'Happy New Year!'를 외쳤는데, 그 인사가 마음에 남아있어서인가 보다. 그들의 외침이 내게는 올해 어느누구에게서 들은 새해 인사보다 위안과 행복을 안겨주었다.

여러분 모두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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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