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공연은 가서 보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늘 든다.

근데 그중 어떤 경우들은, 안왔으면 큰 후회할 뻔 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연주가 진행될수록 심장이 두근 거리며 흥분이 고조되고, 음악을 좋아하는 지인들 또는 가족들을 떠올리며 이걸 꼭 봤어야 하는데, 이런 느낌은 지금 아니면 평생 경험할 수 없는 건데 하는 감정들이 겉잡을 수 없이 번지는, 그런 공연이 있다.

 

오늘 공연이 그랬다.

 

손열음.

올해 5월이면 만 30세가 되는 천재 피아니스트.

 

그녀가 '내가 온 곳에 대한 기록'을 되밟아보겠다는 생각으로 20세기초 굴곡의 시대를 살았던 몇몇 작곡가들의 곡들을 소화해보겠다며 흔쾌히 택한 공연 '모던 타임즈'.

 

2부 조지 거쉬인 곡중 '원할 때는 가질 수 없고, 가지고 나면 원치를 않아'라는 재미난 제목이 눈에 띄었다.

근데 오늘 음악당 자리를 가득 메운 청중들은, '원할 때 가질 수 있고, 가지고 나면 더 갈구하는' 보석같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비교적 가볍고 발랄한 터치의 1부 곡들을 뒤로하고 2부의 한가운데인 '페트루슈카'가 연주될 때, 피아니스트의 천재성은 극도를 치달았다.

그 강렬함은 연주가가 건반을 치고 있는 게 아니라, 마치 피아노라는 괴물의 88개 건반들이 주자의 열손가락을 쉴새없이 빨아들였다가 튕겨내고 있다는 착각을 들게할 정도였다.

연한 빨강색의 반짝이 연주복에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콘서트홀 천정의 조명들이 반사되어 흡사 연주자의 몸에서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타건으로 발산되는 음들의 화려함에는 전혀 비견할 바가 못되었다.

 

정규 레퍼터리를 모두 마친 후, 오늘은 예정에 없던 3부 공연이 파티처럼 전개되었다.

그녀가 앵콜을 다름아닌 열곡이나 연주했기 때문.

마침 오늘 토요일이겠다 청중들 모두를 집에 보내지 않기로 어린 피아니스트가 작정을 한 것 같았다. ^^

더군다나 일곱번째곡부터는 특유의 천진난만한 표정과 목소리로 신청을 받아 진행되자, 청중들은 갈수록 열광과 환호를 아끼지 않았다.

객석에 앵콜곡을 요청하는 그녀의 표정에서, 2년전 본점 문화홀 공연 후 차한잔 하며 "문화홀 울림이 별로 안좋아서 불편하지 않았는냐"고 물어보자 생글 웃으며 "이런 홀은 이런 곳 나름대로 재미가 있어서 좋아요, 피아노 소리도 좋았고요"하고 천진난만하게 대답했던 모습이 연상되었다.

 

일곱번째 앵콜곡이자 오랜만에 연주한다던 라캄파넬라 화려한 대목이 번져나올 때 눈물이 막 나왔다.

객석의 불이 환히 밝혀진 시간이 11시 가까이 되었는데도, 로비에는 사인을 받으려는 팬들의 줄이 겹겹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앞으로 이 순수한 천재 피아니스트의 공연은 빠지지 않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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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