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film & literature'에 해당되는 글 33건

  1. 2014.02.07 선물
  2. 2014.01.11 Happy New Year !
  3. 2013.05.23 대조 2
  4. 2013.04.26 일상 vs 일탈
  5. 2013.04.22 앵콜곡이 불러낸 어린시절
  6. 2013.04.12 고마워, '오투잼' 2
  7. 2013.04.03 진리
  8. 2013.02.18 정면의 행복
  9. 2013.01.21 5 vs 5
  10. 2013.01.03 유럽식, 미국식, 절충식

선물

2014. 2. 7. 17:52 from music, film & literature

 

퇴사한지 5년이 지난 아끼던 후배하나가 새해 인사차 회사로 찾아왔다.

지금은 세살난 아이를 키우면서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착실한 친구다.

 

차한잔 하는데 슬그머니 풍월당 종이백을 내놓아 꺼내보니 두장짜리 CD였다.

내가 CD선물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지? ^^

뜯어보니 '자클린 뒤 프레' 연주로 하이든, 엘가, 드보르작 세작곡가의 협주곡이 담겨있는 멋진 음반이었다.

 

자클린 뒤 프레.

그녀는 그야말로 영화같은 삶을 산 주인공이다.

 

피아니스트인 엄마에게서 태어나 5살 생일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첼로소리를 듣고 활을 들었다는 그녀.

어릴적 카잘스와 토르틀리에 같은 거장들의 인정을 받았고, 그녀를 가르쳤던 로스트로포비치는 “내가 이룬 업적과 동등한, 아니 그 이상을 해낼 수 있는 젊은 세대의 유일한 첼리스트”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한다.

열여섯살에 리사이틀로 데뷔, 열일곱살에는 BBC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엘가'의 첼로협주곡을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엘가협주곡의 전설'이라는 칭호를 얻으며 고향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미국의 데뷔 무대에서 다니엘 바렌보임을 만나 사랑을 하고, 22살의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된다.

이 부부 듀엣은 이후 수많은 팬들을 사로잡으며 불꽃같은 음악활동을 전개해나간다.

 

두사람의 과도한 재능과 사랑을 하늘이 시샘한 것일까?

20대 후반 그녀는 시력이 약해져갔고 연주를 하며 박자를 놓치거나 심지어는 활을 떨어뜨리기까지 하는 실수를 종종 하게 된다.

완벽주의자인 바렌보임은 정신력을 탓하면서 그녀을 더욱 강하고 호되게 몰아갔다.

결국 어느날 거리에서 쓰러진 뒤 병원으로 옮겨져 받은 검사결과

희귀성 병으로 온몸이 점점 굳어가는 '다발성 경화증'이란 판정을 받았고,

이후도 활을 놓지 않고 끝까지 연주를 하였지만, 그녀의 열정도 불꽃이 사그러드는 것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서로 음악적인 영감을 나누며 호흡을 맞췄던 두사람.

하지만 천재를 사랑했던 지휘자는 이런 상황에 놓인 그녀에게 이혼을 요구하였고,

병마와 싸우던 그녀는 4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선물로 받은 곡들을 아이팟에 담아 퇴근하며 들어보았다.

여러 위대한 첼리스트들이 그렇듯 그녀의 연주는 색달랐다.

하이든 첼로 협주곡에서는 그녀의 활이 내는 소리에서 양파같은 향이 풍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큼하면서도 맵고 날카로운..

하면서도 섬세함 보다는 과감함과 터프함이 느껴지는 풍부한 연주를 구사하는 연주자였다.

 

이제 주말에 시간 내서 첼로를 꺼내 연습 좀 해야겠다.

 

고마워 후배야.

 

 

[ 바렌보임과 자클린 뒤 프레 : 엘가 첼로 협주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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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Happy New Year !

2014. 1. 11. 14:48 from music, film & literature


오랜만에 서울시향을 만나고 왔다.
헨델 메시아 연주로 무대에 선 게 12월9일이니 예당을 찾은것도 한달여만의 일이었다.

레오노레야 워낙 잘 알려진 곡이지만 뒤에 이어진 '슈'라는 곡은 진은숙이라는 작곡가 말고는 정보가 전혀없는 터라 무척 궁금하던 차였다.
곡의 구성이나 색깔은 그녀를 늘 따라다니는 아르스 노바(new arts)란 표현에 걸맞게 적당히 생소하고 알맞게 신기했다.
사실 이곡의 주인공은 '생황'이라는 중국의 3천년된 악기와 연주자였다.
생황의 모양을 설명하긴 어려우나,
길이 30에서 60센티미터의 얇은 행운목들 7~8개를 원통 둘레에 세로로 둘러서 붙여놓은 악기로, 난 처음 보는 순간 좀 엉뚱하지만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모형이 떠올랐다.
악기가 내는 소리는 파이프오르간의 높은음역대들만을 추려놓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오르간과의 확연한 차이점은 연주자 호흡의 세기와 양에 따라 다양한 톤과 기법이 쏟아져나온다는 것이다.
또한 협연자의 독주라해도 과언이 아닐 곡의 후반부에 가서는 목관과 금관의 이질적인 소리를 동시에 빚어내는데 마치 복화술을 듣고있는 듣한 신비한 느낌을 받았다.
생경한 곡이어선지 주자가 퇴장한 후 박수가 사그라드는 듯하자 정명훈은 청중들에게 두번씩이나 커튼콜을 유도했다.

전날과 달리 2부에서는 베토벤 5번교향곡이 연주되었다. 1층 네번째줄 오른쪽 자리여서 지휘봉을 잡은 오른손과 얼굴표정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나는 정명훈 지휘 공연을 가면 늘 손해를 본다. 지휘자에 너무 눈이 많이 가서 단원들과 음악 자체에 집중을 못하기 때문이다. 헤헤, 물론 농담. 

정명훈 연출의 5번교향곡을 들어보는 게 이번이 네번째인데 또한 느낌이 예전과 달랐다.
그동안 나는 푸가 형식을 특히 현악기들을 통해 짜릿하게 재현해내는 3악장이 단연 백미라고 여겨왔는데, 이번에는 2악장에서의 비올라 소리가 정말 달리 느껴졌다. 제1주제를 첼로와 함께 이끌어내면서 2악장 특유의 서정성을 드러내주는 일등공신이 비올라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못보던 정명훈의 새로운 모습도 보았다. 객석에 인사할 땐 너무도 인자한 모습의 그가 단원들에게 뭔가를 요구할 때면 가끔씩 서슬퍼런 엄격한 표정을 보인다는 것.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리더십에는 여러가지 모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긴 했는데, 그래도 나는 그의 웃는 모습이 제일 멋지다.

좋은 음악은 정신의 훌륭한 치유제다. 어떤 연유로 최근 가슴이 회색빛이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 또 화려하면서도 힘있는 음악을 만난 후에는 예당 광장을 나서며 겨울바람이 차게 느껴지기보다는, 좀 생뚱맞은 모습이긴 하지만 광장에 새로 생긴 시계탑이 마냥 귀엽게만 보였다.

그리고 한층 기분이 좋아진 또하나의 이유는, 몇차례의 커튼콜 후 정명훈의 주도 아래 서울시향 단원들 모두가 객석을 향해 'Happy New Year!'를 외쳤는데, 그 인사가 마음에 남아있어서인가 보다. 그들의 외침이 내게는 올해 어느누구에게서 들은 새해 인사보다 위안과 행복을 안겨주었다.

여러분 모두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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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

2013. 5. 23. 13:31 from music, film & literature

 

혼신의 힘을 다한 공연 후의 지친 얼굴.

 

드디어 그를 만난 나의 기쁜 얼굴.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나는 마냥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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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vs 일탈

2013. 4. 26. 09:11 from music, film & literature

 

로마를 처음 가본 건 2002년 가을이었다.

종착역으로 끊겨진 선로들이 인상적이었던 떼르미니역의 근처 호텔에서 묵었는데,

이틀간 도보로 여기저기를 돌아보면서 '로마시민들, 선조들로부터 훌륭한 유산을 받은 복받은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며 부러웠다.

자기집이라도 함부로 허물거나 개조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제할 정도로 건물이면 건물, 공공시설, 분수대, 기둥 하나도 어느 것 할 것 없이 멋들어진 유적들이었다.

특히 판테온 신전의 돔형 천정에 뚫린 지름 9미터의 구멍(거대한 눈)은 내게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날이 좋은 때는 햇살을 아름답게 들여와 신전이 비춰지고, 비오는 날에도 건물 내부 대류로 인해 빗물이 구멍으로 들이치지 않는 구조로 만들었다는..

 

이곳 로마에서 벌어진 4팀의 에피소드를 재치있게 다룬 '로마 위드 러브(To Rome with Love)'란 영화를 보았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도 느낀 바지만, 이번 영화에서도 우디앨런의 독특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더구나 이 영화에는 제시 아이젠버그(소셜 네트워트), 로베르토 베니니(인생은 아름다워) 등의 등장도 등장이지만,

메가폰을 잡은 우디앨런이 직접 연기를 선보여 관객들이 웃음을 쉴 새 없이 자아내게 해주었다.

 

로마에서 만난 커플중 장의사를 하고 있는 약혼녀의 아버지.

일약 유명해진 평범한 직장인.

로마로 신혼여행 온 커플.

친구의 연인을 사랑하게 된 남녀.

 

네팀 모두 특이한 경험을 하며 새로운 세계로의 도전 또는 유혹을 경험하지만,

결국은 욕심을 부리지 않고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인간은 누구나 일상의 편안함에 안주하려는 한편,

낮설지만 또다른 세계의 매력을 의식적으로 또는 우연한 기회를 통해 찾고 느끼게 되, 

무채색으로 시작했던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색깔의 톤을 더해나가곤 한다.

 

새로운 세계를 더하는 일은 흔히 고통이 따르지만,

어쩌면 그동안 찾지못한 나의 본질을 깨닫게 하면서,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일상'을 벗어나는 것은 과연 '일탈'일까?

이 질문은 아마 죽을 때까지 뒤따르지 않을까 싶다.

 

평범하고 다수가 옳다하는 생활을 하는 것과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나의 또다른 영역에 매료되는 것.

두가지는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다.

또 누구도 어느 것이 옳다 옳지 않다 판결내릴 권리가 없을 것이다.

 

다만 어느 길을 걸어가든, 새로운 대상과 또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중요한 부분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자신에 대한 배려가 우선되어야 하는 걸까?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삶은 누구에게나 고통을 안겨준다'라는 운전기사의 대사가 질문에 대한 현명한 답을 주고 있는 듯하다.

 

샤워를 하며 유명 오페라곡들을 수려하게 부르는 장의사의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꾸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대목이다.

 

영화 '시작은 키스'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라면 강력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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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로린마젤이 이끄는 뮌헨 필하모닉을 만나고 왔다.
부서가 바뀌고 공연 접할 기회가 갑작스레 많아졌다. 나로서는 행복한 일. ^^
일요일이다보니 오후5시 시작이어서 점심 후 양재천 벗꽃 산책 후 가벼운 마음으로 예당으로 향했다.

레퍼터리는 베토벤의 '콜리오란 서곡, 4번, 7번 교향곡'

상업적인 녹음 거부, 돌발적 언행 등으로 유명한 첼리비다케의 지휘봉을 통해 수준급으로 연마된 뮌헤필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바이에른 국립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와 함께 뮌헨이 자랑하는 세계 수준급 악단으로 이날 연주에는 약 90여명의 단원이 자리잡았다.

사실 콜리오란 서곡은 내게 생소한지라 평하기가 어렵다. 뮌헨필의 교과서적인 정통성을 맛볼 수 있었을 정도.

이어진 4번 교향곡.
베토벤 교향곡들이야 아홉개 모두 우위를 따짐이 소용없는 일이지만, 3번(영웅), 5번, 6번, 7번, 9번(합창)이 대중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근데 4번도 참 좋은 곡이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1악장의 경우 다른곡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기분을 달뜨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오케스트라의 수준평가는 다른 것들도 있겠지만, 두가지 정도를 놓고 생각해보면 된다.
하나는 현악기와 관악기의 균형.
둘째는 음의 시작과 끝을 얼마나 정확히 맞추는가.
위의 두가지에 얹어 뮌헨필의 연주에서 내가 느끼기에 돋보이는 또다른 훌륭함은, 음이 끝난 직후의 울림이 특히 또렷이 전달된다는 것. 다음음으로 넘어가기 전 순간의 공백에 이전음표의 그림자를 확실하게 느끼며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악장이 끝나자 슈만이 이 4번교향곡을 '두명의 노르딕 거인(3번과 5번) 사이에 놓인 날씬한 그리이스 아가씨와 같다'고 해석한 이유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인터미션 후 이어진 7번 교향곡.
작년말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그리고 지난달 서울시향이 연주한 7번과는 또다른 느낌이었다.
어느 악단의 연주가 더 낫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얀손스의 바이에른과 비해 뮌헨은 비슷한 악기수이지만 소리의 크고작음의 폭을 보다 작게 가져가면서도 좋은 의미에서의 교과서적인 해석을 했다는 느낌. 단원 한사람한사람이 개인의 기량보기는 전체의 조화를 위해 엄격하게 훈련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이에른의 소리가 웅장함의 극치라면 뮌헨은 노장의 잘 가다듬어진 성숙함이라 하면 맞겠다.
템포를 조절하며 현악기들이 아름다운 소리를 표현할 때는 마치 색동 알사탕을 입안에 굴리는 듯한 달콤함을 경험했다.

베토벤은 곡의 멜로디를 바이올린이 아닌 다른 악기군에게 맡기면서도 그 완성도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성을 자주 보여준다.
5번 교향곡의 3악장이 그 대표적인 예이며, 이번 7번의 2악장에서도 그 진면목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초반부 관악기의 연주에서는 현악기들이 화음을 맡고, 이어 베이스, 첼로, 비올라의 주멜로디 연주에서는 오히려 바이올린이 하모니를 담당한다. 2악장 특유의 숙연함은 이같이 저음의 악기들이 대부분의 주된 악상을 이끌어가기에 그 밀도가 더욱 강해지는 것이 아닐까?

앵콜로 베토벤의 서곡 '에그몬트'가 선사되었다.
에그몬트는 5번 교향곡을 듣기 위해 내가 중학교때 최초로 구입한 LP판에 함께 수록되어 덤으로 친숙해진 곡이다.
곡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비장함이 흐르고 있어 듣는이들의 마음에 감동을 자아낸다.
현악기들의 연주가 절정에 달할 무렵 어린시절의 감동이 되살아나며, 그리고 음악이 최근의 내 심정을 대변해주는 듯 해, 눈물이 나왔다.

83세의 노장 로린마젤과 뮈헨필.
벗꽃이 한창인 봄날의 아름다움에 한없는 따사로움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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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오감자, 쿠키오, 오대감 등 '오'자가 붙은 과자 이름이 많지만 '오투잼'은 과자도 잼도 아닌 컴퓨터 게임명이다.

 

지난 일요일 모처럼 작은놈과 아침을 같이 먹다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교향악 축제 얘기를 꺼냈다.

첫째에 비해 클래식을 좋아하는 둘째이긴 하지만 공부에 대한 압박감으로 콘서트 가잔 소릴 해도 단칼에 거부하곤 해서,

한편으론 기특해 하면서도 내심 속상해 오던 차였다.

공부는 세시간 못하는 거지만 음악회의 감동은 평생을 가는 건데..

근데 이날 밥상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도 프로그램에 있다 하니, 선뜻 같이 가겠다고 결정했다.

오호, 이게 왠일!

 

사실 둘째가 피아노콘체르토 3번을 유달리 좋아하는 이유는

중학시절 한참을 빠져있던 '오투잼'이라는 게임의 배경음악으로 이곡 1악장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1년반만의 둘째와의 음악회 데이트라니.

남부터미널역에서 만나 가까운 식당을 찾아 저녁을 먹은 뒤,

봄날치곤 제법 바람이 차게 불어대는 예당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공연 시작전 작은애가 '아빠, 내가 중간에 눈 감고 있어도 절대로 자는 게 아니니 툭툭 치거나 하지마~'한다.

 

피아니스트 '데이빗 헬프갓'의 실화를 다룬 영화 'Shine'에서 빗속을 헤매다 카페로 들어온 주인공이 극적으로 연주하는 장면을 통애 더욱 유명해진 3번 협주곡은,

널리 연주되는 2번 협주곡의 연장선상에 있다할 만큼 러시아적인 정서가 잘 담겨져 있다.

1909년 작곡가 자신의 연주로 미국에서 초연된 이 곡은 몽환적이라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동시에,

'미치지 않으면 연주할 수 없는 곡'이라는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피아노라는 악기에서만 볼 수 있는 격렬한 건반터치도 한껏 경험할 수 있다.

 

이날 오케스트라는 백발의 금노상씨가 지휘봉을 잡은 대전시향, 피아노는 차세대 피아니스트라 일컬어지는 김태형.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이 끝나고 피아노가 옮겨지자, 작은애는 설레인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3번 협주곡을 실황으로 듣기는 나도 처음.

1악장 후반부와 3악장 전반에 흐르는 '미친듯한' 대목을 들으면서,

라흐마니노프 연주때 피아노 강선이 가장 많이 끊어진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섬세한 터치이면서도 극도의 빠른 템포로 연주되는 부분들도 카타르시스를 안겨다 주곤 했다.

마치 주자가 건반이 아닌 잔잔한 물의 표면을 바람개비 돌아가듯 손가락으로 어루만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반면 김태형의 몸이 들썩거릴만큼 임팩트 강한 부분에서는,

피아노는 피아니스트에게 강렬하게 지배당한다.

그리고 피아니스트는 다시 피아노에 지배 당한다.

 

인터미션때 아무래도 학원 가는 게 마음이 편하겠다고 해,

아쉽지만 2부의 차이콥스키 5번 교향곡을 뒤로하고 나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둘째가 '군데군데 울컥하고 눈물이 나왔다, 연주회가 주는 감동이 참 큰 것 같다'고 해서

난 너무너무 행복하고 또 뿌듯했다.

 

고마워, '오투잼'

 

영화 'Shine' DVD를 구매해 함께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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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2013. 4. 3. 08:12 from music, film & literature

올해 들어 사내 클래식 강의가 잦아졌다.
지금도 연수원으로 가는 길인데, 분당수서간 도로변에 지난 주말에 비해 개나리 색깔이 더욱 풍성해졌다.

얼마전 구입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2번 CD를 기사아저씨께 건네드려 듣고 있는데, 에밀 길렐스의 건반 터치는 또박또박 힘이 넘친다.
이곡은 지난주 금요일 손열음이 서울시향과 협연한 레퍼터리로, 티켓을 구입해놓았다가 더 중요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연주회를 포기하게 되었다.

그 중요한 일이란, 연주회날인 사순절 성금요일 밤 내가 다니는 성당에서 '수난복음(예수님이 잡혀 돌아가시기까지의 성서 내용)'을 신부님과 함께 노래로 연주하는 것.
30분정도 세사람이 노래를 주고받아야 하는데다, 내가 맡은 부분들이 극도로 높은 음역대인지라 소화하기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많은 신자들 앞에서 그것도 신부님과 함께 예수님의 돌아가심을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이 나로서는 크기를 잴 수 없고, 그래서 놓칠 수 없는 소중한 영광이었다.

손열음의 차이콥스키 연주도 소중했지만 이에 비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금요일밤 내가 노래한 중에
'진리가 무엇인가?'하고 빌라도가 질문하는 대목이 있다.

진리가 무엇일까?

변하지 않는 것?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
모두가 옳다고 하는 것?

진리가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옳은 것의 선택이 내가 공연을 포기한 결정처럼 쉬운 것이라면 좋겠다.

하지만 알다시피 늘 그렇지만은 않다는 게 문제다.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할 때가, 또 그리하는 게 옳다고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으는 경우가 있지만, 정작 나는 다른 하나를 놓아야하는 기로에서 다리에 힘이 풀려, 또 머리속이 하얗게 되 아무 생각을 못하며, 방황하게 될 때가 있는 것이다.

진리가 무엇인가.

음반이 그새 곡을 바꿔 귀에 익은 1번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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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의 행복

2013. 2. 18. 11:31 from music, film & literature

 

콘서트에서 자리는 참 중요하다.

 

오랜만에 토요콘서트에 다녀왔다.

 

손꼽히는 바이올린 협주곡들이 여럿이지만

차이콥스키 D장조는 내게 아주 특별하다.

감성이 무성하게 자라던 시기에 듣고 반하게 되, 전곡을 외워버린 첫번째 협주곡인 까닭이다.

이곡은 1,3악장의 여러 대목에서 극도의 기교와 힘이 요구되기 때문에

완성 당시 한 평론가가 '연주자가 소화할 수 없는 난해한 곡'이라는 일침을 가했고,

내성적인 성격의 차이콥스키는 곡의 발표를 3년동안이나 못하게 된다.

 

사실 대중적인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먼저 알게 되었지만,

브루흐 협주곡과 차이콥스키 협주곡이 함께 실린 고등학교 때 산 정경화의 런던심포니 협연 LP는

한동안 가장 애호하는 앨범이 되었다.

옅은 분홍색 원피스 차림의 앳띤 모습이 담긴 자켓으로 아주 인상적인 음반이다.

그녀가 젊었을 시절의 연주지만,

당시 나는 세상에 '정경화처럼 이곡을 섬세하고 박진감 있게 소화해 낼 주자는 없다'고 못박았다.

지금도 이 생각은 마찬가지.

 

한참 뒤 정경화의 4개 협연이 실린 CD가 DECCA에서 발매된다.

멘델스존, 베토벤, 차이콥스키, 시벨리우스 4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함께 담긴.

당연히 이 음반은 내게 지고의 행복이 아닐 수 없었다. ^^

수록된 4곡중 이제는 베토벤 곡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지만,

차이콥스키는 협주곡이란 형식이 이러이런 묘미가 있는 거야라고 내게 가르쳐주면서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기쁨을 선사해주었다.

 

이번 콘서트는 예술의 전당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그리고 협연은 박지윤.

빨간 어깨드레스 차림으로 등장한 그녀을 처음 보았을 때,

저리 왜소한 체격으로 이 곡을 소화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기우였다.

 

30년전 인켈 오디오 광고에 클라이막스가 삽입되 널리 알려진 1악장은

평온함과 경쾌함,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박진감을 모두 맛볼 수 있다.

나는 그녀와 오케스트라가 한눈에 들어오는 1층 8번째줄에 앉게 되었는데,

군더더기 없는 팔놀림과 몸짓으로 완벽하게 곡을 해석하고 있었다.

바이올린이 그녀와 하나되었다는 표현보다는

그녀가 바이올린 속으로 들어가 하나가 되고 있다는 말이 더 적절할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고,

연주를 하는 그녀 정면에 앉아 있자니, '학' 한마리가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당일 2관 편성된 관악기들중 플룻의 연주로 시작되는 2악장은, 영화 'fame'에서 바이올린의 분위기 있는 독주로 유명하기도 하다.

차이콥스키의 많은 곡들이 그러하듯,

2악장을 듣고 있으면 음악이 아닌 아름다운 색깔의 꽃들로 가득찬 밭을 거닐고 있는 듯한 향기를 느낄 수 있다.

그야말로 현악과 관악의 화려한 향연.

예술의 전당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창단시와 비교시 수준이 매우 향상되었다.

점점 절제를 바탕으로 한 정제된 음을 내고 있다는 판단이다.

이는 김대진의 힘일까?

곡 설명시의 잔잔함과는 대조적으로 이번 협연에서도 너무 커다란 몸짓으로

'저러다 바이올린 주자와 부딪히겠다'라는 걱정까지 여러번 하게 만들었는데,

협주곡 지휘때는 조금만 자제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

 

평론가가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불가능한 곡이라고 말한 이유는 필경 3악장 카덴짜 부분 때문일 것이다.

2초 간격으로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린이 서로 주고받으며 숨막히는 짧은 음표들을 소화해내야 하는 마지막 부분은,

뒷쪽으로 치달을수록 전율감을 더해주며, 그 평론가의 단언이 결코 허사가 아님을 알게 해준다.

하지만 박지윤은 티끌만큼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고 완벽하게 곡을 마무리했다.

 

인터미션에 예당을 뒤로 하고 나오면서,

달콤한 토요일 아침의 휴식을 포기하고 나온 나의 선택에 기특하단 박수를 보냈다. ^^

 

앞으로 기회가 될 때마다 박지윤을 만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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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5 vs 5

2013. 1. 21. 14:48 from music, film & literature

 

낯익은 곡은

귀에 쏙쏙 들어오는 반면,

그만큼 놓치는 부분이 많기도 하다.

 

베토벤의 교향곡 5번과 피아노협주곡 5번의 경우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엄마에게 조르고 졸라 - 고등 1학년놈이 단식투쟁까지 했으니 내 성격도 참 지랄맞다 - 오디오를 내 방으로 사들인 후,

제일 먼저 산 음반이 교향곡 5번이었다.

데카에서 출시된 이 음반은 하얀색 자켓 하단에 이름모를 명화같은 것이 그려져 있었고, '에그몬트 서곡'도 함께 수록되 있었다.

 

피아노 콘체르토 5번을 언제부터 들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피아노 솔로로 곡이 열리고 1분30여초 뒤에 오케스트라의 화려한 연주가 이어지는 1악장의 멜로디가 워낙 귀에 익은 터.

몇년전 폴리니의 연주 음반을 구입했는데, 이 CD를 통해 곡 전체와 친해지게 되었다.

 

서론이 길었다.

 

서울시향 정기공연 첫회에 위의 두곡이 무대에 올랐다.

 

협연자는 김선욱.

 

그가 리즈콩쿨 이후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던 5년여 전, 자신이 롤모델로 삼은 정명훈과의 협연을 보았을 당시의 기억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어 이번 공연도 많은 기대를 했다.

 

마지막 협주곡인 5번은 작곡자 자신이 직접 초연을 맡은 1-4번과 달리, 극도의 청력 악화로 제자인 체르니가 연주를 맡았다 한다.

완성도가 정점을 넘어선 곡을 직접 연주하지 못한 베토벤의 심경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2악장의 경우, 설탕을 녹여놓은 듯한 감미로움으로 베토벤 모든 곡을 통틀어 내가 가장 좋하하는 곡이다.

 

5년 전과 비교해도 김선욱은 여전히 훌륭하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어느 곡이든 때와 장소를 막론하고 자신있게 연주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게 전혀 밉상스럽지 않을 정도로 정확하고 힘있는 연주를 선사했다.

피아노가 쉬는 소절에 가끔 오케스트라나 정명훈을 응시하곤 하는 그의 모습에서 젊은 나이임에도 성숙미가 느껴졌다.

하지만 자신감이 넘쳐서였을까? 이번 연주에서는 뭔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섬세함 or 부드러운 터치'의 모자람 이랄까?

잘 아는 곡이어서 그런지 혼신의 힘을 다해 곡을 다루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달리 말하자면 곡을 매력적으로 소화해내지 못했다는 생각. 98점 ^ ^

게다가 이번 연주에선 간간히 피아노 향판과 강선이 부딪힐 때 나는 서걱서걱 소리가 들려 흠이라면 흠이였다.

피아노의 문제인지 아니면 예당 울림의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서울시향은 공연을 거듭할수록 발전하는 모습을 보인다.

서울시향의 매력은 두가지.

하나는 현악기들의 따뜻한 어울림.

또하나는 극도로 짧은 음표의 완벽한 수행.

이번 곡 3악장에서도 32분음표들이 등장하는 대목을 한악기가 내는 것처럼 완벽하게 소화해 내, 난 입이 딲 벌어지고 말았다.

3악장의 재발견.

물론 이런한 모습은 '정명훈'이 있기에 가능하다.

이제 서울시향은 세계 어느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만 하다.

 

 

인터미션 후 교향곡이 연주되었다.

 

9개 교향곡의 한중간(5번)에 위치해 있으면서 가장 세상에 널리 알려진 곡.

물론 1악장도 좋지만, 현악기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특히 첼로의 리드가 돋보이는 2악장과 3악장의 경우도 결코 뒤질 수 없다.

떼를 지어 달리는 말 위에서 음악을 듣는 듯한 기분이 드는 3악장의  경우,

현악기들이 '베이스/첼로 → 비올라 → 제2바이올린 → 제1바이올린' 순으로 굽이치는 물결처럼 멜로디를 연주하며 청중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든다.

약간씩 변형된 4개정도의 각기 다른 소절들을 연속해서 소화하는데,

잘 듣고 있자면, 마치 고르고 일정한 거대한 첫번째 파도가 밀려오고 그 파도가 채 사라지기 전에 두번째 또 세번째 파도가 앞서간 파도의 뒷편을 물고 들어오는데, 그 위용은 앞선 파도들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4악장은 그야말로 작곡가가 모든 악기 특히 관악기들을 동원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웅변 연사처럼 뿜어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마직막 카덴짜 부분의 현악기들의 연주모습을 보고 있자면, 주자들 한명한명이 활을 열심히 켜대는 모습이 마치 작곡가의 맺힌 한을 풀어 승화시키려는 듯이 너무도 열심히 좌우로 흔들어, 악기에 불이 붙지 않을까 하는 염려마저 들 정도였다.

 

교향곡을 지휘하는 정명훈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제 정명훈과 서울시향은 뗄 수 없는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곡을 완벽하게 알고 악기군 하나하나와 정성과 관심을 주고받는 지휘자를 따르는 오케스트라는 함께 성장할 수밖에 없다.

5번 교향곡을 들으며 시향의 연주가 완벽을 넘어섰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마침 이날은 정명훈의 생일, 그것도 환갑 맞이 날이었다.

나랑 띠동갑이시네. ^^

 

축가와 동영상 메시지를 보고난 후 마지못해 마이크를 잡은 그가

'힘들어 말 할 힘이 없다'고 했을 때 오늘의 공연에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했는가를 알 수 있었다.

 

그의 생일을, 성공적인 첫 공연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누군가 한 얘기처럼 정명훈은 영원히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4월에 DG에서 발매될 이번공연 음반은 꼭 사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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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 악기들의 배열 구분을 살펴본다.

언젠가는 한번 정리해보고 싶은 내용이었다.

 

60~120명의 단원으로 운영되는 오케스트라의 경우 2차대전 이전까지는 특별한 배열체계가 없었다.

 

언뜻 생각하면 오케스트라 악기종류가 아주 많고 복잡한 듯 하지만 알고 보면 아주 간단하다.

 

악기군으로 보자면, 현악기, 목관악기, 금관악기, 타악기의 4가지 구성이며

제일 앞선에 현악기, 중간에 목/금관, 그리고 제일 뒤에 타악기 순으로 배치되는 건 주지의 사실.

 

우선 가장 많은 수가 운영되며 무대의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현악기'는,

1,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의 4개 종류.

이중 가장 높은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에게 곡중 메인 멜로디를 맡아 리드해 가는 역할이 제일 많이 주어지며, 

1바이올린이 더 높은 음역을 연주한다.

비올라나 첼로의 경우 각각 6~8대 정도로 포진되며, 저음부에서 표현되는 멜로디를 이들중 한파트 또는 동시에 두파트가 함께 치고 나갈 때, 나머지 악기들은 화음으로 받쳐준다.

가장 낮은 음을 내는 콘트라베이스는 무대의 맨오른쪽이 붙박이 위치로, 주로 다른 악기들의 소리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목관악기'의 경우 가장 높은음을 내는 순부터 보자면 피콜로, 플룻, 클라리넷, 오보에, 바순(파곳), 잉글리쉬 호른이 있다.

이중 가로로 불어대는 플룻은 현재는 주로 스틸 제질이지만 원래 나무로 제작된 악기이기에 여전히 목관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곡의 성격에 따라서 각각 한대 또는 많아야 네대로 운영되며, 곡에 따라 악기가 아예 등장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예로 마지막 교향곡인 41번 주피터에서 모차르트는 클라리넷을 사용하지 않는다.

새소리처럼 가냘프면서 아름다운 피치의 피콜로 역시 구성에서 빠지는 경우가 가장 많은 악기지만,

베토벤 9번 교향곡 4악장의 경우 중반부부터 멜로디를 차고 나가며 톡톡한 역할을 해내기도 한다.

 

금관악기는 간단하다. 트럼펫, 트럼본, 튜바 세가지.

철제관을 통해 나오기에 목소리가 큰 이들은 다른 악기들과의 소리를 가리지 않도록 현악군과 목관악기군 뒷쪽에 위치한다.

히틀러가 사람을 선동하는 힘을 지닌 금관악기를 많이 사용한 바그너의 곡들을 매우 좋아한 건 당연한 일이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네이팜탄을 쏘아대는 아파치 헬기들이 출격할 때 배경음악으로 쓰이는 '발퀴레의 기행'이 금관악기의 선동성을 드러내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오케스트라 구성이 2관 편성이라 함은, 모든 목관과 금관악기들이 두대씩, 3관편성은 세대씩임을 의미한다.

 

마지막 군이며 곡전체로 볼 때 참여하는 비율이 가장 적은 '타악기'의 경우 오히려 그 종류가 가장 많다.

음높이를 가지고 있는 팀파니, 벨, 실로폰등은 베이스 음이나 멜로디를 연주하고,

그렇지 않은 심벌즈, 큰북, 작은북, 트라이앵글은 특유의 소리로 곡에 액센트를 더해준다.

 

 

곡의 성격에 따라, 지휘자에 따라 그리고 무대의 상황에 따라 오케스트라의 구성은 각각 달라지긴 하나,

보편적으로 유럽식, 미국식 그리고 절충식의 삼분화 구성이 주를 이룬다.

 

 

[  미국식 ]

 

 

 

가장 일반적인 배치법인 미국식의 경우 지휘자 왼손 쪽에 바이올린이 오른쪽에 첼로와 베이스가 위치한다.

고음을 왼쪽 저음을 오른쪽에 둔 이 구성은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에 의해 널리 보급되었다.

 

예) 로얄 콘세르트어바우 오케스트라, 런던심포니, 필라델피아 필하모닉,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우리나라 대부분 오케스트라

 

 

[ 유럽식 ]

 

 

 

미국식과 비교하면 제1바이올린과 콘트라베이스를 제외한 나머지 현악기들의 구성이 다르다.

즉 지휘자 왼손 쪽에 제1바이올린과 비올라(또는 첼로) 오른쪽에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또는 첼로)를 배치하는 것.

이는 무엇보다도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이 양쪽에서 동등한 힘을 구사하는 것에 중점을 둔 것이다.

 

예) 쌍 페테르부르그 필하모닉, 파리 오케스트라, 라이프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이밖에도 유럽식과 미국식의 장점을 결합시켜 제1바이올린, 제2바이올린, 첼로, 비올라의 순으로 구성하는 절충식 배열도 최근에는 널리 사용되고 있어, 빈 필하모닉, 베를린 필, 뉴욕 필하모닉 등이 채택하고 있다.

 

 

여러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현재의 구성에 이르렀겠지만,

이러한 오케스트라가 자아내는 음악은 듣는 우리들에게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하기 힘든 행복을 안겨준다.

내 경우,

많은수의 현악기들이 잘 가듬어진 소리를 내줄 때, 정말 진한 '따스함'을 선사받는 기분이 든다.

울적한 심정일 경우는, 금관악기들의 울림이 마음을 반전시켜 주곤 한다.

악기들이 서로 완벽하게 멜로디와 화음을 주고 받음을 소화해낼 때면, 경이로움을 느낀다.

오케스트라가 주는 훌륭한 음악은 신비로움 그 자체이다.

 

현악기의 구성에 따라 세가지로 달리 운영되는 오케스트라 형태와 특성을 미리 알고 음악을 만난다면,

보다 재미있는 감상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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