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와 함께 있었지.'

'간수가 축음기를 넣어주기라도 한거야?'

'내 마음에 영원히 있는거야.
그게 음악의 아름다움이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어.'

교도소 전체에 '편지의 이중창'을 틀어준 댓가로 2주간 독방 신세를 지고 초췌한 얼굴로 돌아온 앤디가 동료들의 질문에 답한 대사다.

음악을 듣고있던 죄수들은 교도소 벽이 무너지는 것 같은 자유를 느꼈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완벽한 '자유'를 경험한 건 바로 앤디 자신이다.

그래, 마음속에 음악이 만들어낸 감동은 누구도 뺏어갈 수 없고, 온전한, 그리고 유니크한 내 것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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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번역서 읽기

2014. 7. 14. 22:39 from music, film & literature


책을 읽다보면 전체중에 마음에 가장 와닿는 구절이 있게 마련이다.

'잘못 알고 행복해하기 보다, 제대로 알고 불행해하는 편이 낫다'

간만에 하루안에 읽은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나요?(Aimez-vous Brahms?)'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구절이다. 왜인지는 사실 나도 모르겠다. 아마도 최근 장기화되는 몇개의 복잡한 상황들에 대해 좋은 쪽으로 해석을 내리고 싶어하는 나의 무의식적인 바램 때문일수도 있겠다.

근데 분위기 좀 내 보겠다고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을 - 작품에서 언급되는 곡은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 틀어놓고여서인지 중간중간 쉽사리 읽혀지지 않는 곳들이 많았다.

물론 내용이 쏙쏙 들어오지 않는 첫번째 이유는 머리 나쁜 나의 집중력 부족.
한데 또다른 이유를 들자면 바로 '번역'의 문제다. 이 두번째 이유는 최근 몇개의 번역서들을 읽으며 새삼 든 생각이다.
심지어는 몇달 전 기존의 번역본인 김화영교수 번역의 '이방인'을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라고 비웃으며 새로운 번역의 '이방인'이 나오기까지 했을 정도니, 내 판단이 아주 잘못된 건 아닌 듯하다.
사실 이방인이나 어린왕자를 원서와 비교해 보면 권위있는 역자의 번역도 정말 매끄럽지 못하구나 하는 대목들이 참 많다.
외국어가 어렵기도 하지만 우리말이 어렵기도 하다.
예를들어 'sky'는 '하늘'로 번역하면 되지만,
'man'이란 단어의 경우 상황에 따라서 '남자, 사람, 인간, 놈, 녀석, 사내, 분, 자, 관, 새끼...'에서 가장 맞는 걸 선택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완벽한 의미전달을 못하기도 한다.

길지 않은 소설이었지만 사강이 24세의 젊은 나이에 쓴 이 작품은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또하나의 단상을 제공해 주었다.

진정한, 안주할 수 있는 사랑이 존재하는 건가?


프루스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자신의 필명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인 'Sagan'을 선택한 저자. 두번의 이혼을 하고 알콜중독 코카인 등 일탈을 겪은 그녀의 삶을 미리 투영한 것같은 작품을 오늘 다시 접해보니,
대학때 공부했던 것과는 또다른 느낌이 파고들어 왔다.

'잃어버린 시간..'도 읽어봐야겠다.
단, 음악은 소리를 아주 작게 틀어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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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

붉은 봉투

2014. 6. 21. 15:26 from story of others


중국인들은 성공을 불러오고 태양을 상징한다 하여 유난히 붉은색을 좋아한다.
자금성, 국기, 의상, 지갑 등 중국과 관련된 붉은색들의 예는 수도없이 많지만, 나에게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중국의 붉은색은 장이모우 감독, 공리 주연의 '붉은 수수밭'을 단연 꼽을 수 있다.

엄마가 입원해 있다보니 가까운 친척들이 병문안을 가끔 오는데, 지난 주말에는 충주 사는 막내삼촌-결혼은 했지만 그는 우리에게 영원한 삼촌이다-이 찾아왔다.
나랑 나이가 여덟살밖에 차이 안나는 꼬마삼촌.
엄마는 삼촌 얘기를 할 때면 빼놓지 않는 레퍼터리가 있고 그날도 삼촌이 가고 나자 병원침대에 누워 기어이 오십년 전의 이야기를 읊어주었다.
엄마가 시집왔을때 7형제중 막내인 삼촌은 초등 1학년 여덟살. 까까머리에 키는 조그만해가지고 보였나 하면 없어지고 또 언제 나타났는지 장난을 쳐대기 일쑤였으며, 잔치집, 초상집이 있는 날이면 귀신같이 주워듣고 방문, 식사를 해결하곤 했다 한다. 할아버지에겐 막내아들이란 귀염덩어리였던 이 개구장이에게 갓시집온 둘째형수는 전혀 어려운 존재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엄마 얘기로는 시댁인 금산에 가면 일은 정말 많이 했는데, 배가 고파도 할머니가 밥을 챙겨주지도 않았음은 물론 밥을 먹을 시간도 주지 않았다 한다.
하지만 그러던 할머니가 며느리가 첫애를 임신하고 -그 첫애는 바로 길신현이다- 가자 닭을 한마리 잡아 삶아 부엌 한켠에 상위에 밥과 함께 차려주시더란다.
그런데 할머니가 나간 사이를 틈타 언제 나타났는지 문제의 막내도련님이 쪼르륵 들어와 닭을 얌냠 후루룩 해치우고 포르륵 사라져버렸다 한다. 허허.
고기 익는 냄새를 맡으며 기다리던 이 악동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간만에 시어머니에게 받은 엄마가 먹을 백숙을, 아니 그녀의 뱃속에서 이제 막 태동을 시작한 귀한 아기의 피와 살이 될 보양식을 홀라당 도둑질해 간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재밌고 우스울 수 있겠지만, 당시 엄마로선 삼촌이 얼마나 얄미웠을까.
그러니 그 일을 평생 못잊을 수밖에.

축구. 테니스. 씨름. 명절 고스톱에 이르기까지 삼촌은 잘하는 게 많았다. 딱한가지 못했던 건 공부. 아니 안 한 게 맞을 것이다.
성적상 고등학교 진학이 힘들자 우리 아버지는 당신이 재직하던 고등학교에 스무살 어린 막내동생을 편법으로 입학시키셨다. 3년간 나름 노력해 충남대학교를 졸업한 삼촌은 제대후 자리잡은 수자원공사를 지금까지 착실히 다니고 있다.
얼굴도 마음씨도 참한 -그래서 난 이 숙모가 젤로 맘에 든다 -아가씨를 만나서인지, 결혼 이후 삼촌은 몰라보게 성격이 달라진다. 말도 움직임도 차분해지고 또 칠형제 중에서 홀로된 노모를 제일 살뜰하게 챙기는 아들이 되었다. 어쩌면 숨어있던 본성이었을수도.

지금이야 덜해졌지만 십여년 전만 해도 다섯명의 작은 아버지들은 죄다 엄마를 못마땅해 했다.
특유의 성깔로 할머니를 막 대하고 자식들은 끔찍하게 생각하면서 남편에게는 그 십분의 일도 신경을 쓰지 않는 형수다보니 내가 생각해도 정이 갈 리 없다. 막내삼촌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하간 지난 토요일 엄마에게 와보니 막내삼촌이 문안을 와 있었고 '형수님 빨리 나으시라'고 몇번을 얘기한 뒤, '신현이 너 봤으니 이제 나는 가야겠다'며 병원을 나섰다.
서울에 일이 있어 올라온 거냐 물어보니 아침에 충주에서 출발해 왔고 이제 터미널 가서 충주로 갈 거라 했다. 오롯이 엄마 문안차 서울에 온 삼촌이 너무 고마웠다. 담배도 한대 필 겸 1층까지 배웅을 나갔더니, 할아버지도 폐암으로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 형제들도 대부분 폐상태가 안좋으니 너도 담배는 절대 피지 마라 한다. 본인도 작년에사 끊어놓구서는..

다시 병실로 올라왔는데 엄마가 환자복 주머니에서 삼촌이 줬다면서 봉투를 꺼내주길래 보니, 오만원짜리 네장이 들어있는 연한 붉은색 봉투였다.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봉투를 붉은색으로 고른 이유는 엄마까 빨리 낫기를 바라는 삼촌의 세심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단체로 산행을 갔던 작년 10월 21일 경기도 어느 병원에 아들들의 강제로 입원해 지금까지 침상 생활을 이어왔으니 엄마도 얼마나 힘들까.
이제 다음주 퇴원을 앞두고 있으니,
삼촌의 바램처럼, 또 웃통을 벗고 우뚝서 붉은 고량주에 대차게 소변을 갈겨내리던 붉은수수밭의 남자주인공처럼, 엄마도 하루빨리 일어나 훌훌 털고 가족들과 함께 성큼성큼 걸어다니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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