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 소리

2015. 6. 2. 13:40 from music, film & literature


이사 온 후로, 도저히 못일어나는 경우가 아니면 새벽마다 둘째를 정자역까지 차로 데려다 준다.
학원이 있는 강남역까지 정자역에서 신분당선으로 18분이면 갈 수 있기 때문에, 아이한텐 강남 살 때에 비해 크게 나빠진 게 없다.
근데 나한텐 요 아침 일찍, 또 밤에 역으로 가 픽업해 오는 도합 30여분의 동승시간이 참으로 달콤할 수밖에 없다.
아이를 위해 눈에 보이는 뭔가를 할 수 있고, 또 아이와 함께 할 수 있기 때문. 뭐, 말을 많이 나누지 않아도 말이다.

근데 오늘 아침엔 FM에서 어떤 곡이 나오고 있는데, "아빠, 이거 클라리넷이지?" 했다. 내가 "응, 맞아. 대단하네" 했더니 "클라리넷 소리는 만화영화 같아"하고 혼잣말처럼 얘기했다.
내가 신이 나서 "응, 클라리넷 소리가 품격이 있지, 오보에 소리도 좋구!"하고 발동을 걸었더니 "품격 있는 소리는 플룻이지, 클라라넷은 장난치는 소리 같고"라고 응수했다.

사실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지만 난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나는 그 나이에 그냥 클래식음악이 좋아 듣기만 하는 수준이었는데, 둘째아이가 관악기군의 서너 가지 소리를 분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즐겁기만 하면서, 집에서 가능하면 93.1 들려주고, 음악회 일부러 데리고 가고 하길 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복잡한 것 같지만 관악기군은 조금만 신경 쓰면 그 종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목관악기중엔 앞에서 언급된 플룻의 왼쪽에 앉아 날아다니는 참새처럼 높고 가는 음을 내는 난장이 피콜로가 있고, 또 클라리넷 오른쪽에서 중후하게 낮은 소리를 선보이는 팥색깔의 파곳(바순)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금관악기로 달팽이처럼 생긴 감미로운 목소리의 호른, 사람 몸집만한 튜바. 그리고 세개의 버튼을 눌러대는 트럼펫과 관을 앞뒤로 움직이며 음을 맞추는 트럼본 등이 있다.

물론 이외에도 잉글리쉬 호른, 바셋 클라리넷 등 곡에 따라 특색 있게 등장하는 관악기들의 리스트들이 더 있긴 하지만, 앞에 언급한 목관 4종류, 금관 4종류 정도의 특징만 알고 있어도, 관악기들이 여러 대목에서 주로는 곡을 부채질해주는 역할, 또는 화음을 맡거나 그리고 적지않은 곳들에서 메인 멜로디를 이끌어가며 현악기들과 화답을 주고받는 이들의 역할과 매력이 얼마나 큰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존심 강한 소년 왕자같은 음색의 오보에 소리도 좋고, 아프리카의 한복판에서 낮잠을 자며 데니스가 축음기에 틀어놓은 클라리넷 소리도 잊을 수 없다. 마음에 선을 가느다랗게 그으며 지나가는 듯한.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중 '중국의 춤' 멜로디는 플룻 특유의 음색을 실컷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둘째아이가 플룻소리에서 '품격'을 떠올리는 이유는 뭘까. 풀내음 나는 듯한 상쾌함 때문일까?

뭐 이유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부디 수능 잘 마치고 좋은 음악들 많이 듣게 되, 다른 악기 소리에도 오늘 아침처럼 하나하나 본인 나름의 색깔을 부여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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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