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개(강아지)를 왜 키울까?
어릴 때 동물을 무척 좋아했다.
내가 옆집 셰퍼드랑 맨날 붙어지내는 걸 보던 엄마가 초등 1학년에 하얀 치와와를 한놈 들여왔다. 사슴처럼 귀가 쫑긋하고 뽈록 튀어나온 눈동자를 하고 있던 그녀석(그녀)은 하루종일 나와 동생들의 장난감이었다.
내 손등에 뭍여놓은 우유를 혀로 핧을 때 그 기분좋은 깔깔함이란..
이 하얀 귀염둥이가 얼마간 자라 새끼를 가져 배가 불룩해진다. 어느날 아침 여느때처럼 잠이 덜 깨 누운채로 녀석의 집에 손을 넣었는데, 다리보다 굵고 이상한 느낌의 것이 손에 잡혀 벌떡 일어나 들여다 보니 작은 고구마 크기의 새끼 네마리가 비누방울 색깔의 비닐봉지 같은 것(태 ^^)에 싸여져 있었다. 흐, 징그러웠다.
어미가 새끼들의 태를 조심스레 다 먹는 것도, 눈도 못뜬 채로 꼬물딱거리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는 것도 그야말로 신기함 그자체였다. 아마도 밤톨만한 내 머리속이 여러가지 생각들을 했으리라.
출산 일주일도 안된 날, 어미가 차에 치어 죽어버렸다. 도대체 믿기지가 않았다. 어미젖을 공급받지 못하게 된 새끼들도 차례로 한마리씩 죽어나갔다.
유리알같던 그녀석의 눈망울을 잊을 수 없다. 엄마는 이듬해 짙은 밤색 치와와 한마리를 또 데리고 온다.
나는 강아지를 왜 키우는가?
큰애 민규가 4학년인 2002년 때였으니, 생후 2개월 된 민희(미니)가 우리식구가 된지도 이제 만 10년이 좀 넘었다. 집사람의 망설임에 개의치 않고 미니를 들인 이유는 우리집 두 남자녀석들 때문이었다.
당시 11살, 7살이던 욘석들은 그당시 그야말로 두개의 럭비공. 큰놈은 이제 뭐 좀 안다고, 작은놈은 뭐 좀 알아야겠다고 집안팎을 천방지축으로 설치며 쉴새없이 사건들을 일으키고 다녔다. 아이들은 활발히 움직이고 큰소리 지르고 졸라대고 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렇지 않은게 오히려 비정상. 하지만 아이들에게서 보이는 산만함만은 잡아주고 싶었다.
그래서 든 생각이 '저희들보다 더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놈을 눈앞에 갖다놓으면', 그걸 보고 무의식중에 '난 저러지 말아야지 하는 맘이 들지 않을까'하는 것이었다. ㅎ 유추의 정도가 심한가?
어쨌든 애들에게 또 내게도 좋은 친구가 생기는 것이니..
코카스패니얼이나 말티즈 같은 곱상한 품종들보다 '시추'를 선택한 건, 무엇보다 시추가 무척이나 선한 눈동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슈나우져에 비해 적당히 급성맞기도 한 종류이기도(슈나우져는 극성맞기가 거의 호떡집 불 난 수준) 해서였다.
새식구가 된 녀석(그녀)은 민규, 민성의 동생뻘이니 이름을 민희(미니)라고 지어주었다.
이제 미니가 11살이니 개 나이로는 어느덧 노파 수준. 3년 전부터 크고작은 병에 걸려, 큰애 대학 갈때까지라도 잘 버텨주면 하며 걱정했는데 다행이 요즘 오히려 혈색이 좋아지며 오히려 건강한 편이다.
미니는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해 준 또한명의 우리가족이다.
두번째 들어온 녀석도 시추.
아파트에 살던 5년전, 윗집에서 태어난 두마리중 한녀석을 아이들 성화에 못이겨 데려왔다.
3개월 된 놈이 통통통 뛰어다니길래 이름을 '망치'라고 짓자했더니 애들도 웃으며 맘에 들어했다.
시추는 중국황실에서 키우던 개라는데, 내가 포착한 가장 큰 특징은, 저희들이 사람인 줄 안다는 것이다. 거실에 깔아놓은 이불에 당연한 듯 올라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건 다반사고, 잘 때도 사람처럼 배를 하늘로 향한 채 네다리를 벌리고 삐이 하고 코를 골아대는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이다.
신기한 건 두 놈 다 이름을 따라가는 것같다.
미니는 적당히 재롱도 피우고 하는데, 6살이나 아래인 망치에 비해 몸집이 1/3 정도.
망치는 어릴때부터 줄곧 활력 그자체이다.
무슨 일에든 참견을 해야하는 인석의 꼬리는 앉아있건 누워있건 다닐 때건 쉴새없이 좌우로 살랑댄다.
급기야 망치는 잊지못할 사건을 일으키고 만다.
세살때인가, 어디든 파고들기를 좋아하던 이친구, 거실의 조그만 협탁 철제 다리의 지름 15센티정도의 원형모양에 머리를 쑤셔넣고 빠져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가족들.
마치 반지처럼 들어는 갔으나 도저히 빠지지는 않는 상태.
한데 이리저리 해봐도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는 모두 급 당황모드로 바뀐다.
집에 쇠톱이라도 있었으면 협탁 다리를 잘라낼텐데..
처음에 낑낑거리던 망치가 십여분이 지나자 우는 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옆에서 조바심 내며 지켜보고 있던 민성이는 급기야 꺽꺽 소리내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119를 눌렀다.
상황 설명하고 '사이렌 소리 없이 조용히 와달라'는 당부와 함께.
밤 아홉시경 부탁에 아랑곳하지 않고 삐뽀삐뽀 하는 요란한 소리가 나 문을 열고 내다 보았더니, 차량한대가 1층에 와 있었고 동네사람들은 대체 뭔일이 났나 하고들 내려다 보고있었다.
주황 파란색 제복의 요원 네명이 씩씩하게 현관문으로 들어와 상황 파악 후 전기쇠톱으로 잘라냈다.
간단히 상황 종료.
고마운데, 민망스러웠다.
지금도 여전히 두마리 시추는 아이들의 포근한 친구다.
부산에 내려가 있는 큰아이는 가끔 망치의 동영상을 보내달라고 한다.
살라마노 영감의 개처럼 여기저기 짓물러 냄새를 피우는 미니도 여전히 귀엽다.
이제 나이들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지만, 처음 온 애라고 미니에게 나는 더 정이 간다.
아마 아이들에게만이 아니라 내게도 이 두녀석은 많은 걸 가르쳐 주었을 것이다.
계단을 올라오는 내 발소리를 제일 먼저 알아채고 현관문 앞에서 꼬리짓하는 망치가 너무 귀엽다.
내 아이들도 커서는 개를 키우지 않을까?
엄마가 나를 위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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