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스 얀손스가 이끄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베토벤 교향곡 6,7번을 만났다.
겨울의 문턱이지만 저녁 식사를 한 후의 예술의 전당은 그다지 춥지는 않았다.
6번의 경우 실황을 듣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초등 6학년 때 엄마의 손에 끌려 대전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와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볼프강 자발리쉬 지휘의 스위스 로망 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었는데,
아직도 지휘자와 악단명을 기억하는 것은, 어린 나의 귀에 실바람처럼 파고들었던 1악장의 선율을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새벽녘에 대전집에 도착했지만, 그날의 감동을 일기장에 차곡차곡 적어내렸던 기억이 난다.
두번째는 5년여전 정명훈의 서울시향 연주를 들었다.
격정적이라 말할 수 있는 5번과는 대조적으로 이 곡은 자연과 함께하는 작곡가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베토벤이 직접 '전원'이란 표제를 붙인 6번은 9개의 교향곡 중 유일하게 5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악장 역시 표제가 있는데,
초등학교 때 배운 것처럼
1악장 전원에 도착해 받은 유쾌한 감정
2악장 시냇가의 전경
3악장 시골사람들의 단란함
4악장 폭풍우의 내습, 구름, 천둥
4악장 양치기의 노래, 폭풍우 뒤의 기쁨과 감사
등이다.
곡을 들으며 베토벤이 관악기들을 교묘하면서도 완벽하게 잘 활용한 천재임을 확인했다.
곡중에 표현된 새소리의 경우, 클라리넷과 오보에가 엇박자로 섬세한 기교를 부리며 듣는이들의 마음을 자극한다.
극도로 약화된 청력으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로 요양차 찾은 하일리겐슈타트 지방을 거닐며, 나무, 산, 시냇물, 계곡과의 교감을 나누면서 받은 작곡가의 영감이 전악장에 걸쳐 수려하게 나타나고 있다.
매우 서정적인 풍의 2악장은 명망있는 오케스트라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는 대목이다.
성악이나 합창과 마찬가지로, 큰소리를 잘내는 것도 실력이지만 2악장같은 곳에서 아주 작은 소리를 얼마나 세밀하게 만들 수 있는가가 오케스트라의 수준을 가름하는 척도 중 하나다.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경우 소리의 강약을 어떻게 저렇게까지 세분화할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악쌍의 표현을 극도로 정밀하게 나눌 줄 안다는 생각이 들었다.
9개의 교향곡 작곡 시기중 6번과 7번 사이의 텀이 가장 긴 이유는
6번 이후 작곡가가 청력을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신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사명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이 불멸의 천재가 귀가 완전히 멀었을 때 겪었을 고뇌는 가히 짐작할 만 하다. 유서까지 작성을 해놓았으니.
따라서 7번 교향곡은 청력상실의 고뇌와 극복과정, 또 다시 음악을 재개하면서 느낀 환희와 행복의 단계들이 각 악장에 차례대로 고스란히 그리고 완벽하게 담겨져 있다.
사실 이번 공연을 꼭 가고 싶었던 이유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7번을 만나고 싶어서 였다.
고뇌와 상심으로 가득찬 2악장의 경우 영화 'King's Speech'에서 말더듬이 영국왕이 처음으로 대중들 앞에서 성공리에 행하는 8분짜리의 연설 대목에 고스란히 사용되, 그 진가가 발휘되기도 하였다.
7번 역시 관악기들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특히 고뇌의 극복을 외치고 있는 3악장에서 오보에와 클라리넷, 바순이 각각 멜로디를 풀어가는 대목의 경우, 악장 자체가 이 관악기 주자들를 위해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특유의 독특함과 오묘함이 묻어난다.
4악장의 빠른 템포와 박진감 넘치는 운율은 청중들이 앉은 자리에서 몸을 들썩들썩하고 싶을 정도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객석의 많은 이들이 카덴짜를 지나 지휘자의 손이 멎었을 때 기립해 박수를 보낸 것은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바이에른 교향악단은 악기배열의 생소하다.
흔히 볼 수 있는 미국식이나 유럽식의 경우,
미국식은 왼쪽부터 제1, 제2바이올린 - 비올라 - 첼로 이며
유럽식은 제1,2 바이올린 - 첼로 - 비올라 인데
이 악단은 제1바이올린 - 첼로 - 제2바이올린 - 비올라 의 순서 였다.
이 구성에 대해 좀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 출신 노장 마리스 얀손스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크거나 화려한 동작을 많이 구사하지 않으면서도, 단원들과의 교감을 훌륭하게 해낸다.
그가 단원들에게 기를 불어넣으면 단원들은 소리로 화답하고, 또 이 소리는 다시 지휘자에게 기를 불어넣고 하는 게 반복되 급기야 그 효과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는 오케스트라가 엄청난 힘을 뿜어낸다.
그는 70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느 틈엔가 지휘봉을 왼손으로 또다시 오른손으로 옮기며 마치 춤을 추는 듯한 지휘로 주자들 전원을 술렁이게 만든다. 가끔 볼 수 있는 직선의 수평 팔동작은 여느 지휘자에서 볼 수 없는 매력적인 포인트.
앵콜곡 까지 듣고 콘서트홀을 뒤로 하고 나오면서
'가을의 마지막 자락을 보내는 것이 아쉬워, 정말 가을처럼 꽉 찬 감동을 선물받은 밤'이라는 행복함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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