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거슬러올라가 볼 수 있는 가장 오래전의 기억은 바닷가에서의 일이다.

가족들과 함께 간 북평(지금은 동해시)항 가까이의 해수욕장에서였는데,

엄마가 물로 한참을 들어가더니 '신현아!' 하고 부른 뒤 바닷물 속으로 쑥하고 자취를 감췄다.

물론 엄마는 장난삼아 그리 했겠지만, 당시 세살쯤 되었던 나는 엄마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공포로 다가왔다.

몇번을 물속으로 사라졌는데,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엄마가 없어졌네, 어떡하지?'하는 생각만 계속 하고 있었다.

 

50여년을 가까이 산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상당히 많지만

그중 으뜸은 큰애와의 첫만남이다.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갓난아이의 눈망울을 바라보며

'얘만큼은 구김살 없이 자라도록 해줘야지'하고 생각을 했다.

 

지난 월요일, 처음으로 내한하는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공연을 다녀왔다.

이 오케스트라의 경우 어릴적 엄마 손에 이끌려 이대 강당까지 와서 공연을 본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와 더불어 스위스 오케스트라의 양대산맥이란 평을 받고 있다.

레퍼터리는 베토벤 프로메테우스 서곡과 바이올린 협주곡, 그리고 브람스 교향곡 4번.

이번 공연에 꼭 가고싶었던 이유는 모험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 이름있는 지휘자들의 인정과 찬사를 받은 '기돈 크레머'의 베토벤 바이올린 콘체르토 연주를 들어보고 싶었기 때문.

 

팀파니의 다섯번째 울림을 관악기들이 받아 이어나가는 1악장의 아련한 멜로디가 시작되었다.

25분이 넘는 이 1악장은 원래 3분 이상이 지나고 나서야 협연자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

그런데 1악장 초반 대목부터 기돈 크레머는 파격을 선택했다.

다름아닌 제1바이올린군이 이끌어가게 되있는 부분에서 함께 활을 긋기 시작한 것.

뭐 이정도야 그럴 수도 있으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악장 후반부의 카덴짜 솔로가 시작되면서, 나는 내가 곡을 헷갈리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아니고, 협연자가 다른곡을 연주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멜로디를 약간 변형한 정도가 아닌 완전히 다른곡이었으며, 피날레 부분만 원래의 악보로 복귀하며 마무리 되었다.

3악장 역시 짧게나마 이같은 변형이 진행되었다.

 

나로서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새로운 시도라는 느낌보다는 불편하고 또 불안한 마음이 연주 내내 자리잡고 있었다.

'아니, 베토벤을 이렇게 바꿔도 되는 건가?' 하는.

 

기돈 크레머는 연주 스타일이 여느 바이올리니스트들과 비교시,

활을 누르는 것이 아닌 활로 현을 당기는 듯한 주법이 특이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음이 굵직함보다는 날카롭고 그윽하기보다는 현란함을 발산하고 있었다.

이것이 그가 지닌 특성이자 카라얀을 비롯한 음악가들의 인정을 받은 대목일 것이다.

따라서 전문가가 아닌 나는 그의 연주 자체에 대해서 가타부타 평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 주자가 그날 협연한 쮜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성향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오케스트라의 경우 나이든 단원들을 많이 보유하여 모범생같은 음색을 내고 있었는데,

전통적이면서도 반듯한 향을 풍기는 터라,

기돈 크레머같은 기교가 강하고 날렵한 연주자와는 어울리지 않는 매치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뮤지컬 맘마미아를 보고 나오면서 '아바 노래들을 퇴색시켜버린 것같아 실망이네' 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어 인터미션에 머리 좀 식히려고 바깥으로 나오는데, 아는 얼굴의 여자 한분이 얼굴과 말투에 불편한 기색을 잔뜩 담은 채 빠른 걸음으로 콘서트홀 중앙 유리문을 나오고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작년 가을 클라라 주미강 협연으로 진행된 같은 곡을 지휘하는 동생 정명훈의 공연을 언니 정명화와 함께 보러와 인터미션때 인사도 나누고 사진도 웃으면서 함께 찍어 주었던 그녀.

그녀는 런던심포니와의 협연 음반으로 내가 모든 바이올린협주곡 중에 베토벤곡을 가장 좋아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반가운 마음에 또 오늘 연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어 뛰어가 '선생님, 안녕하세요?'하였는데,

순간 나를 또렷이 보더니 - 사실 난 그녀를 잘 알지만, 그녀는 나를 전혀 모른다 - '안녕하지 못해요!' 하면서 또각또각 주차장쪽으로 사라졌다.

연주가 마음에 안 든 정도가 아니고, 같은 곡을 수행한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모멸감을 느낀 것 같다는 추측까지 들었다.

 

2부가 시작되 스위스 호반의 물결같은 브람스 1악장이 넘실거리며 흘러나오는 데도,

1부의 껄끄러운 기억이 지워지지 않아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잊어버려야지 하고 새로운 곡에 귀기울이려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1868년에 브람스곡 연주를 시작으로 창단된 이 오케스트라는, 초창기에 브람스가 지휘를 직접 맡아 더 유명해졌다 한다.

78세의 노장 데이빗 짐먼의 지휘봉 아래 톤할레 오케스트라는 브람스를 단아하고 깔끔하게 소화해냈다.

이들의 브람스 연주를 맛으로 표현하자면, 계피를 많이 첨가한 여름날 수정과 같다고나 할까?

150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지닌 오케스트라에서만 가능한 정제됨과 수려함이 흠뻑 베어있었다.

 

열시반이경임에도 완연한 봄기운으로 차유리를 내리고 집으로 달려오면서도, 줄곧 기돈 크레머의 연주에 대해 곱씹어보게 되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이틀이 지난 지금도 자꾸만 협주곡을 들을 때의 껄끄러웠던 감정이 자꾸만 되살아난다.

 

지난 기억에 얽매여 있으면 안되는데..

떨쳐버려야지 평온해지고 새로운 것들을 편히 받아들일 수 있는데..

 

지우고 싶은, 아니 지워야 하는 기억을 지우고 살 수 있을까?

기억이 지워지면 맘이 가벼워질까?

아니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굳이 지우려 해야하는 걸까?

 

살아가는데 있어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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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ne k. :